쟝봉 뵈르(Jambon buerre)는 프랑스 국민 샌드위치다. 쟝봉은 햄, 뵈르는 버터이니, 버터 바른 빵에 햄 하나 끼워 먹는 간단한 것이다. 빼빼 마른 빵인 피셀(ficell)로 만들어야 제 맛이 난다. 피셀에 차가운 버터를 깔고, 역시 차가운 햄인 짭짤한 쟝봉 몇 장 올려 먹는다. 프랑스 사람들은 쟝봉도 보기 좋게 예술적으로 말아 넣지만, 어쨌든 미식의 음식도 아니며, 몇 시간 대화를 이어가며 즐기는 만찬의 일부는 더욱 아니다.
쟝봉 뵈르를 생각하면, 비가 내리던 파리의 골목길을 지나 찾아가던 새벽 빵집이 떠오른다. 어두운 도시의 한편에 따뜻하게 불 밝힌 빵집 문을 열면, 이미 줄지어 선 사람들에게 "Ensuite!" (다음!)을 외치던 흰 앞치마의 백발 쌍둥이 할머니도 선명하다. 딱히 기계적이지도 않고, 그렇다고 딱히 공손하지도 않은 적절한 쌀쌀맞음......
공간을 아우라처럼 감싸던 갓 구워낸 빵의 향기가 기억의 날개를 물고 오늘의 콧가를 머문다. 비가 그치면 바게트를 우산에 대충 쑤셔 넣고 집으로 돌아오던 길, 어깨끈 달린 우산 안에 빵 하나씩 넣고 지나가던 사람들...... 빵을 좋아하지 않는 내가 매일 빵집에 들렀던 것도 돌아보니 의외다. 가까이 있는 빵집을 두고, 굳이 10분 거리의 두 할머니 빵집으로 걸어간 것도 그렇고.
당시 학생이었던 나는 매일 아침 사온 두 개의 빵으로 하루 밥을 해결했다. 돈을 아낀다고 반으로 자른 드미(demi)로 샀다. 쌍둥이 할머니 빵집은 바게트(buguette)와 피셀(ficelle) 둘 다 살 수 있었다. 피셀은 바게트보다 작고 가느다란 바게트로, 이것으로 장봉 뵈르를 만들면 맛이 그만이었다. 진한 커피를 내려서, 1/3쯤 샌드위치로 그대로 먹고, 1/3쯤 장봉을 걷어 그대로 커피에 담가 먹고, 남은 빵은 수업 사이사이 조금씩 베어 먹었다.
돌아와 저녁으로는 작은 발코니에 앉아 통통한 드미 바게트를 양파 수프에 넣어 먹었다. 두 개의 빵을 다 먹고 나면, 하루가 지난 것이었다. 지금 생각하면 무슨 맛이었을까 싶지만, 마르고 딱딱한 것으로 아침을 시작하고, 통통하고 부드러운 것으로 잠드는 날들 나를 지탱한 것은 밥심 대신 빵심이었을까.
쟝봉 뵈르를 만드는 피셀은 일반 바게트보다 훨씬 가늘고 작은 바게트지만, 딱딱한 피셀의 껍데기를 지나면 부드러운 속살이 나온다. 씹을수록 고소하다. 오래 씹으니 금세 배가 부르다. 옆을 갈라 만든 빵은 아무리 마른 빵이어도 한 입에 먹으려면 있는 대로 입을 크게 벌려 베어 물어야 한다. 풍성한 한입은 허기를 잠재운다.
쟝봉 뵈르는 1900년대 초 파리의 도시 공사 현장의 노동자들이 끼니를 때우던 샌드위치다. 이탈리아의 까르보나라(carbonara)의 어원은 카본(carbon). 탄광촌 광부들의 허름하게 대충 때운 한 끼에서 온 것처럼, 쟝봉 뵈르도 데울 새 없이 허겁지겁 먹던 차가운 음식이다.
각각의 음식에 가치를 부여하는 프랑스인들은 차가운 음식도 뷔페 프라(buffet froid)라는 정당한 카테고리를 부여하며 사연과 전통을 아껴 이어간다. 어떻게 하면 원래 샤틀레 공사장의 노동자들이 먹던 쟝봉 뵈르, 그 찬 끼니 그 본연의 맛을 지키고 유지할까 고민하는 셰프도 있다. 쟝봉 뵈르 오땅띠크(jambon buerre authentique)라고 부르는 원조 레시피는 '버터를 절대 녹이지 말 것', '무염 버터를 쓸 것', '쟝봉은 샤틀레 부근 00 상점의 것을 쓸 것', 무엇보다 '바게트 대신 피셀을 쓸 것'을 움베르토 에코의 문장처럼 엄중하게 적어 두기도 한다.
셀 수 없이 씹어야 겨우 목을 지나는 딱딱한 빵과 차가운 버터에 위로의 햄 한 조각을 올려 만든 쟝봉 뵈르는, 식사가 유일한 휴식 시간인 사람들의 밥이다. 단풍을 지나 겨울로 가는 11월, 우리 보통 사람들 한 끼와 비슷한, 이내 사라질 한 입의 포만감...... 그래서 이 샌드위치가 한국의 우리 동네 빵집에도 등장하고, 친절하게 오븐에 데워 주기도 하는 풍요로운 음식이 되고 나니, 그 끼니의 본성인 차가움이 사라지는 것이 아쉬운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