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atatouille
우리나라 섞어찌개에 가깝다. 집집이 냉장고 자투리 채소들이 으레 그렇듯 꽁다리나 자르고 남은 것들을 넣어 급히 쉽게 만드는 음식이다. 모양이 특별할 리 없다. 이름도 ‘섞어주며 끓인다’라는 뜻을 가진 ‘뚜이에(touiller)’에서 왔다. 음식을 성배처럼 모시는 프랑스 사람들이 ‘대충 있는 것 요래 섞어 먹는 조잡한 음식’을 라따뚜이로 통칭했던 것을 보면, 이 음식은 태생이 허름한 음식임에 틀림없다.
일찍이 고기와 채소를 섞어 라구(Ragout)로 뭉근하게 끓여 먹었던 아랍인이 처음 만들어 먹었다. 먹긴 먹지만 채소만 넣어 끓인 이것을 ‘쥐나 먹는 수프’라 불렀다고 한다. 생각보다 고증이 철저한 디즈니의 애니메이션 ‘라따뚜이’ 주인공이 요리 천재 생쥐인 것은 우연이 아니다. 음식 평론가 이고르가 라따뚜이를 얕잡아 보았다가, 어린 시절 엄마 밥의 기억으로 순간 이동하며 묵직한 만년필을 천천히 수직으로 떨어뜨리는 영화의 전파력은 대단한 것이어서 이제 우리 집 식탁에도 겨울이 왔다 싶으면 따뜻한 라따뚜이가 오른다.
‘쥐의 음식’을 그래도 하나의 가정식으로 격상시킨 이들은 프랑스의 셰프도 아니고, 가정식의 역사를 일궈온 프랑스의 여인들도 아니다. 라따뚜이는 농부의 음식이다. 꿈의 휴양지, 지중해의 꼬뜨 다주르(cote d’azure)의 니스(Nice)에서 밭의 채소로 간단히 끓여 먹은 새참 수프……. 툭 꺾으면 물이 튀어 오르는 신선한 색색의 채소로 색감을 더하여 풍미 가득한 토속 음식으로 완성한 것이다. 라따뚜이를 제대로 만들어 먹으려면 보라색 가지, 녹색 호박, 삼색 피망, 붉은 토마토, 흰 양파와 마늘, 올리브유, 남국의 허브를 넣는다.
다채로운 색의 향연을 이루는 채소 가운데 정작 본래 이 고장 지중해에서 난 것은 없다. 하나 같이 긴 여정을 거쳐 지중해 바닷가에 도착한 이국의 식재료이다. 정복한 땅에서 가져온 것에는 식재료와 향료가 빠지지 않았으니, 사실 식재료의 역사, 음식의 사회학은 제국주의의 침략과 정복의 역사를 거슬러 올라가는 것이 족보......
프랑스인들이 먹는 보라색 가지는 스페인에서 왔고, 스페인은 아랍에서 받았다. 아랍은 페르시아에서 받았고, 페르시아는 산스크리트에서 받았다. 가지를 처음 식용으로 먹은 이들은 인도에 살던 아프리카의 빈민들이었다고 한다. 음식의 여행을 거슬러 올라가면, 차마 먹지 못하던 음식을 먹어야 했던 종족에 도달하는 것이다. 프랑스인들은 오랫동안 이 보랏빛 채소를 못 먹을 음식으로 여겨, 빛깔이 고우니 장식용으로 집을 꾸미는 데 사용했다는 기록이 있다.
다른 채소인 토마토, 호박, 피망은 모두 신대륙 미국에서 온 것이다. 신대륙을 정복한 콜럼버스가 짐 꾸러미에 넣어 스페인으로 가져온 것이, 오늘날 세상의 모든 냉장고를 채운다. 올리브유도 레바논에서 온 것이니 이것 역시 이국의 식재료다. 90가지가 넘는 허브의 기원은 마로크, 알바니아, 폴란드이다. 그런데 프랑스 허브는 2003년부터는 프로방스 허브(Herbes de Provence)라고 딱 붉은 라벨을 붙여 프랑스의 것이 제대로 진품 허브임을 내놓고 자랑한다.
프랑스의 손을 거쳐야 진품이 된다는 억지, 공개된 비밀에도 불구하고, 거칠고 허름한 것을 세련된 미적 취향의 반열에 올려놓고야 마는 메이드 인 프랑스의 실력은 부정하기 어렵다. 원산지가 어디에서 왔든, 어떻게 조합하여 어떻게 새것을 만들어 내며 그 품질을 유지하는가에도 노력과 안목과 재능이 필요할 것이고. 그래서 내 것이 없는 따라쟁이 손민수가 제 손으로 붙인 붉은 라벨이 이내 떨어져 버리는지도...... 라따뚜이에서 난데없는 논리의 비약 한번 해보는 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