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루 세끼 밥을 먹는다. 아니, 시간에 쫓기는 바쁜 일상의 현대인들은 대충 두끼 먹는다. 그러니 하루 두 번 맛에 몰입하는 것에 죄를 물을 수 없다. 하루 딱 두 번인 것이다. 10시 반쯤 지나면 점심으로 무엇을 먹을지, 오후 4시 반쯤 되면 어김 없이 오늘 저녁은 무엇으로 하루 대미를 장식할지 마음이 웅장해진다.
구한말 조선에 머물렀던 외국인들의 기록을 보면 한국인이 1리터의 보리를 지어 고봉밥으로 몇 그릇을 해치우고 배가 불러 숨도 쉬지 못하는 모습에 놀랐다고 한다. 온 종일 몸의 노동으로 살아야 했던 일상이라 돌아서면 허기와 마주했을 것이다. 언제 또 보릿고개가 덮칠지 모르니 그나마 곡식이 있을 때 있는대로 탄수화물로 비축하여 에너지원으로 써야 했다는 설명을 듣고나면 대식의 역사는 서글프다.
이제 21세기의 대한민국은 먹방, 미식의 상차림 앞에서 너무나 맛난 것이 많다. 이제는 애써 굶어야하는 역설의 삶을 산다. 이것도 맛있고, 저것도 맛있고, 이것에 저것을 얹어 먹으면 더 맛있고, 그 맛이 비록 아는 맛이라해도 저항할 수 없다. 겨우 참고 잠이 들만하면 야식 배달 앱 알람이 뜨니, 먹느냐 굶느냐 그것이 문제이다.
프랑스 어린이들이 7살경부터 배에 고무 밴드를 감고 식사를 하고, 16살경부터 가족 식탁에서 와인을 마실 수 있다는 이야기를 처음 들었을 때 그들의 엄격한 식사 예절 만큼이나 놀라웠었다. 물론 모든 프랑스 (특히) 소녀들이 적당한 포만감이 느껴질 때 바로 포크를 내려 놓지는 않겠으나 적어도 그들이 대식, 과식을 권장하지 않는 것은 사실인 것 같다.
초대 받아 방문했던 프랑스 가정식은 공통적으로 식사량이 적었다. 접시를 빙 돌려 각자 먹을 만큼 접시에 담고, 그 대신 제 접시에 담은 것은 소스까지 빵으로 닦아 먹었다. 그러니 처음부터 내가 얼만큼 먹을 것인지를 생각해서 담지 않으면 배가 터지든 주인에게 결례가 되는 것이다. 가정 마다 상황이 다르니 일반화 할 수는 없다. 그냥 내가 직접 만나본 몇 집들이 그랬다는 것이다. 그런데 한남동 하얏트 호텔 앞에서 프렌치 레스토랑을 운영했던 사촌 언니가 "프랑스 손님들은 빵으로 소스까지 다 닦아 새 접시처럼 놓고 가더라"고 말한 것으로 볼 때, 빵으로 접시 닦는 프랑스인들이 지구에 존재하는 것은 사실인 것 같다.
프랑스인들의 외식 방식은 크게 두가지로 나뉜다. 식당이 조합해둔 메뉴를 선택하거나, 메뉴판에 있는 음식을 내가 조합하여 식사하는 방식이다. 후자를 아라까르뜨(A la carte)라고 부른다. ‘메뉴판(carte)에 있는’이라는 뜻이니, 메뉴에 있는 것이면 모두 주문할 수 있다. 물론, 아라까르뜨에서 선택, 조합하는 것 보다는 정해진 몇 개의 메뉴 가운데 선택하는 것이 안전하고 무엇보다 가격도 경제적이다. 식당이 추천하는 메뉴를 고르면, 식자재도 그에 맞춰 구입하였을 것이니 식당 입장에서는 단가도 낮출 수 있다. 그럼에도 기어코 아라까르트로 주문하는 사람은 내가 먹고 싶은 것을 직접 고르는 자유를 비용을 더 치르고 행사하는 것과 같다.
메뉴판에 있는 것이니, 제대로 요리해 오라는 준엄한 명령이다. 셰프의 입장에서는 메뉴판에 적었으니 그에 맞는 신선하고 숙성한 식재료를 준비해두어야 한다. 전설적인 미국 광고인 데이빗 오길비의 회고록에 그가 프랑스에서 막내 요리사로 일하던 시절 에피소드가 있다. 말단 주제에 신선도가 떨어지는 식재료를 그대로 사용하게 한 중간급 수셰프(sous-chef)의 명(!)을 따르지 않은 것이다. 총괄 셰프는 수셰프를 그 자리에서 해고했다. 수셰프의 해고 사유는, "주문이 거의 들어오지 않는 식재료여서 냉동실 것을 그냥 쓰려 했다"는 말이었다.
오길비의 에피소드로 볼 때, 아라까르뜨 고객은 적어도 셰프에게는 애증의 대상일 수 밖에 없다. 까다로운 미식가들에게 미각의 향연을 제공하면서도, 뒤에서는 주판을 두드려 식당의 이윤을 내야 하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오늘의 메뉴'로 하루를 마감하고 싶지 않은 미식가가 아라까르뜨의 자유를 위하여 부슬부슬 겨울비를 맞으며 식당에 들어오는 순간, 칼잡이 셰프는 비로소 존재하는지도 모른다.
오늘도 유구한 대식 한민족의 슬픔에서 프랑스 미식으로 논리의 비약을 이루었다. 아, 배고프다. 참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