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 슬픈 사연
순진해 보이는 그 친구는 겁에 질려있었다.
옆에 변호사가 있지만
마음이 편치 않아 보였다.
나는 그 친구에게 말했다
"제가 있으니까 겁 먹지 마요."
사실 입회조사는 그 때가 처음이었다.
절차를 잘 모르기에 나도 겁을 먹고 있었다.
그래도 강한척 의뢰인한테 말했다.
"사실은 조사보다 더 무서운게 있어요"
내가 짐작한 게 사실이었다.
온라인 도박 사이트에서 베팅, 대포통장 개설 등을 맡고 있는
의뢰인은 조사 이후의
상황에 겁에 질려있었다.
행여나 조사과정 중 두목에 해가 되는 이야기를 했다가는
두목의 괴롭힘을 당할게 분명했다.
나는 차마 입밖으로 내놓지는 못했지만
괴로워하는 의뢰인을 보고 속으로 되뇌였다.
"솔직하게 말하는 것이 니가 사는 길이야"
"그러니까 니 이야기를 해. 그러면 구속도 면하고 집행유예라 나갈 수 있어"
그러나 쉽게 입 밖으러 그 소리를 낼 수 없었다.
그 똘마니처럼
나도 우리 사무실의 두목이 무서웠다.
나와 그 똘마니의 처지는 참 비슷했다.
생각보다 조사는 순차롭게 진행되었다.
대표로부터 청탁을 받은 담당수사관은
내 똘마니 의뢰인의 말은 반박하지 않고 다 조서에 남겼다.
담당수사관은 절대로 모를리가 없었다.
그런데 똘마니의 이야기에 반박하지 않았다.
쉬는 시간 나는 산더미처럼 쌓인 자료를 보았다.
그 자료 속에서 똘마니, 보스, 중간보스 등이 나눈 텔레그램 자료가 복원되어 있었다.
담당수사관은 똘마니가 거짓말을 하고 있다는 사실
두목을 보호하고 있다는 점
그 뒤에 대표가 진술 등을 조작하고 있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그런데 비판없이 조서를 적었다.
두 가지 사실을 추정할 수 있었다.
하나는 증거인멸로 구속해 정의를 실현하거나
둘째는 대표의 청탁을 받고 유무형의 대가를 받은 것이다.
아직까지는 정의를 믿기에
전자이기를 바라면 조사를 마쳤다.
조서를 다시 읽는 과정에서 똘마니 의뢰인은 두목의 이름만 찾았다.
그리고 잘못된 점이 없는지를 수정했고
두목과 연관된 부분은 진술을 번복하거나 삭제를 요청했다.
이그 저 병신.......
그리고 경찰서 앞을 나서는데
고급 벤틀리가 내 앞에 섰다.
두목이었다.
사무실에서 봤던 순진한 표정을 짓던 두목과
벤틀리에서 똘마니를 바라보던 두목의 표정은 사뭇 달랐다.
뭔지 모를 살기가 느껴진다고 할까
똘마니는 뭐가 좋다고 웃으면서
복사한 조서를 갖고 벤틀리에 탔다.
두목은 나에게도 한 마디 했다.
"00 변호사 수고했어요. 앞으로도 수고해주세요."
"네"
앞으로 몇 회의 입회가 더 있다.
그리고 마지막에 끝판 왕 두목이 있다.
나는 두목을 위해 똘마니들을 감시해야 한다.
두목의 수고란
아마 그런거 아니었을까.
오늘 그 똘마니는 두목에게 조서를 첨삭받을 것이다.
그리고 그 내용을 대표에게 공유할 것이다.
부족한 점을 보완하고 알리바이를 만들 것이다.
물론 나는 그들의 알리바이 맞추기가 실패할 것이라고 생각한다.
김앤장이 와도 펙트를 바꾸지는 못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대표 포함 그들은 머리가 그리 좋지 않다.
KTX에 올라탄다.
그리고 오늘 조사에서 특이사항을 대표에 보고한다.
법률 용어를 쓰는 나를 보고 옆에 여자기 힐끗한다.
멋있었나.
아니다.
KTX 안에서는 조용히 해야하는데
나는 KTX 직원의 요청에 밖으로 쫓겨난다.
그리고 다시 대표에게 조사사항을 보고한다.
보고한 조사 내용의 대부분은
똘마니가 아닌 두목관련 이야기이다.
그 똘마니랑 나는 도대체 뭐가 다른가?
조사보고 마무리에 내 의견을 전한다.
"대표님, 그래도 결국은 구속되지 않을까요"
대표는
"뭐라고. 그건 변호사가 할 말이 아니지. 일단 지켜보게. 함 연락해봐야지"
미친놈
니가 하는 짓이 변호사가 하는 짓이 아니다.
덜컹커리는 KTX 안
내 멀미의 원인은
바로 대표이다.
다음편에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