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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제이스 Oct 03. 2022

장면들 | 손석희

우리 시대, 계속하는 힘의 소중함



세월호가 침몰하던 당시 나는 회사 근처 한 식당에서 저녁식사 중이었다. 침몰이라는 급박한 상황을 알리는 자막이 돌연 전원 구출로 바뀌는 순간, 그냥 해양 선박 사고가 있었구나라며 아무 일 없이 일상으로 돌아왔다. 훗날 이날의 비극은 리더십의 부재가 어떤 결과로 이어지는지 인간이라는 작은 존재의 무기력함이 얼마나 허무함을 전해줄 수 있는지 각인시키는 계기가 되었다. 


모든 것이 비정상이라고 생각될 때 그래도 어떤 방송이, 어떤 사람들이 있어서 다행이라고 생각하게 만든 것이 JTBC와 손석희 앵커였다. 그들이 팽목항에서 발생한 그리고 현재 진행형으로 이어진 비극을 전하는데 사력을 다하지 않았다면 우리는 침몰하는 진실을 팩트인 것 마냥 받아들였을지도 모르겠다.  


처음 그가 공영방송 MBC를 떠나 종편으로 자리를 옮긴다는 소식에 의아한 사람은 나 혼자만이 아니었을 것이다. 책에서도 그 순간을 회상하고 있는데 과거보다는 앞으로의 모습으로 스스로를 증명하면 된다는 생각이었다. 물론 훗날 그의 행보는 세간의 걱정이 기우였음을 증명하고도 남는다. 


어떤 분야에서 성취를 이룬 사람의 발자취를 글로 따라가는 것은 즐거운 일이다. 손석희의 저널리즘 에세이 ‘장면들’은 타이틀에서 이미 부연하고 있듯이 손석희 개인의 소회와 생각들을 담백하게 담아낸다. 하지만 그 안의 사건 사고와 뉴스거리들은 그가 일선에서 활약했던 6년 여의 시간들이 결코 가볍지 않음을 보여준다. 원칙을 세우고  고뇌에 찬 결단을 하고 때로는 어쩔 수 없이 원칙을 거스르는 결정을 용납할 수밖에 없었던 한계를 공감하게 만든다.


JTBC 뉴스룸의 <비하인드 뉴스>는 뉴스를 준비하는 사람들의 이면에는 이런 고민과 스토리가 있구나를 색다른 경험으로 전한다. 동시에 저널리즘에 있어서 아젠다 설정뿐만 아니라 계속하는 힘인 아젠다 키핑이 얼마나 중요한 가치인지를 세월호 보도를 통해 깨닫게 해 준다. 


지루하지 않게 매 챕터 책장을 넘겼다. 뉴스룸이 저널리즘의 새로운 실험으로 어떻게 기획되고 실행에 옮겨졌는지 따라가는 동안 그 시기 현장에 있는 듯한 느낌을 받았다.  팩트체크, 비하인드 뉴스(Behind The News), 앵커 브리핑, 문화초대석, 엔딩곡까지 새로운 시도에 얽힌 스토리들이 척박한 언론환경 속에서 어떻게 빛날 수 있었는지 이유를 제시하는 것 같았다. 


특히 앵커 브리핑을 소개하는 챕터에서 고 노회찬 의원과의 작별을 다루는 대목은 그날의 손석희 앵커가 또렷하게 떠올라서 나도 모르게 감정이 북받쳐 오름을 느꼈다. 또 하나의 인상적인 대목은 손석희 앵커가 일선에서 물러나고 조국 장관 사태가 붉어졌을 때 서초동에 모인 수많은 촛불의 배경을 뒤로하고 JTBC 기자가 현장 분위기를 전달할 때였다.  ‘돌아와라 손석희’ 푯말을 든 한 시민이 카메라 앵글에 잡혔는데 앵글에서 배제하거나 특별한 조치를 취하지 않고 그대로 방송에 내보낸 일화를 통해 당시에도 본인이 뉴스의 총책임자였음을 명확히 밝혔다. 그가 저널리즘의 본령이라고 내세운 4가지인 팩트, 공정, 균형, 품위가 발현되기 위해서 스스로 어떤 노력을 기울이고 있었는지를 체감할 수 있었다.


아젠다 키핑. 손석희 앵커의 계속하는 힘의 소중함을 생각한다. 편향적인 언론환경에서 팩트에 기반해서 공정하고 균형 있는 보도. 그것이 이 시대의 마지막 남은 품위임을 증명한 사람. 한 사람의 인생에서 한눈팔지 않고 이렇게 큰 족적을 남길 수 있고, 책으로 정리해서 전달할 수 있다는 것 자체가 경이롭다. 묵묵히 저널리즘은 어떠해야 하고 어떤 방향을 제시해야 한다는 것을 행동으로, 가치로 보여준 그의 발자국은 책에서 뿐만 아니라 많은 사람들의 기억 속에 살아 숨 쉬리라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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