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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제이스 Oct 04. 2022

이어령의 마지막 수업 | 김지수

그의 죽음을 기억하며


사실 책을 읽기 전까지는 이어령 선생님에 대해서 잘 알지 못했고 관심이 없었다. 노쇠한 석학이 죽음을 앞두고도 여전히 왕성한 활동을 이어가는 것이 생경하게 느껴졌을 뿐이다.


2022년 2월 26일 많은 사람들의 애도 속에 그가 태어난 곳으로 돌아갔다. 향년 88세의 일이었다. 여기서 말하는 ‘돌아갔다’의 표현은 책에서도 언급되어 있지만 정신과 영령은 온전히 이 세상에 없지만 물질을 구성하는 원자로 빅뱅에서 생성된 우주의 별로 다시 돌아갔음을 의미한다.


죽음을 앞둔 이 시대의 석학이 인생을 정리하는 지혜는 무엇인지, 제자를 자처하며 긴 시간 곁에서 문답을 주고받은 김지수 기자가 어떻게 그의 삶을 정리하는지 궁금했다. 인터뷰는 보통 토씨 하나 틀리지 않고 받아 적는 방식이 있고, 인터뷰어의 관점을 통해서 재해석되고 각색되는 형태가 있는데 이어령의 마지막 수업은 후자에 가깝다고 느껴졌다.


메멘토 모리 (Memento mori) - “죽음을 기억하라.” 책을 관통하고 있는 메시지가 책을 읽는 내내  마음에 박혔다. 메멘토 모리는 사실 박웅현 작가의 ‘여덟 단어’라는 책에서 먼저 접했다. 워낙 유명한 문구이기도 한 이 말은 유한한 삶에서 누구나 죽음을 맞이할 수밖에 없고 현재 우리에게 주어진 삶에 충실해야 한다는 역설을 담고 있다.  


치열하게 불꽃처럼 한 시대를 살다 간 이어령 선생님은 이 말을 가장 잘 실천한 분이 아닌가 싶다. 딸과 손주와 먼저 사별하고 본인의 암투병 과정에서도 죽음을 피하거나 연명하는 것이 아니라 그 자체로 받아들여야 하는 운명으로 곁에 두는 모습이 모든 것을 초연한 선지자처럼 다가왔다.


스며든다는 표현이 더 적합할지 모르겠다. 오랜 시간 응축된 각 분야의 지식이 건드리면 툭 터져서 누구에게나 스며들 수 있는 사람. 그 지론 하나하나가 허투루 쌓인 게 아닌 단단한 내공처럼 느껴지는 사람. 그걸 전달함에 있어서 공감할 수 있는 스토리를 엮어 내어 마치 좋아하는 음악의 레코드판을 턴테이블에 올리는 것처럼 몰입하고 감상하게 만드는 사람이 이어령 선생님이라는 것을 깨닫는다.


문학평론가이면서 트렌드 세터이고 기술과 인문학에 늘 관심을 놓지 않았던 이어령 선생님에게 나이는 단지 물리적으로 생물학적 상태를 구분하기 위한 숫자에 불과함을 보여준다. 얼마나 많은 책을 읽고 사유하고 정리해야 이러한 경지에 오를 수 있을까. 마지막 삶을 대하는 자세가 딱 그의 행동과 말처럼 한결같을 수 있기를 바란다. 그리스인 조르바처럼 생의 마지막 순간에도 결연함을 잃지 않고 온전히 내 삶의 주체가 될 수 있었으면 좋겠다.


마지막 죽음의 모습까지 누군가에게 울림을 주는 삶이 부럽다. 이 모든 과정을 가파른 산 정상에 함께 오르고 신선한 공기를 함께 호흡하는 동행자처럼 느끼게 만드는 김지수 기자에게도 박수를 보내고 싶다. 인생의 반환점에 막 접어든 나에게 앞으로 인생 후반기를 어떻게 보내야 할지 고민의 단초가 되었다.  


그의 죽음을 뒤늦게 기억하기로 한다. 언젠가 맞이할 생의 끝에서도 이처럼 초연할 수 있도록, 단 하나의 경험과 지혜라도 풀어낼 수 있도록 남은 삶을 살아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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