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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들, 알래스카 돌쇠가 되었구나!

돌쇠라도 니가 좋으면 됐다

by 소율

아들이 결혼해서 어떻게 살고 있는지 직접 본 건 이번이 처음이다. 대략 짐작은 했지만 역시. 아들은 하루 종일 눈코 뜰 새 없이 바쁘다.

밤에 아기가 세 번 정도 깨기 때문에 아들도 밤새도록 자다 깨다 하는 상태. 7시 반 아침 일찍 며느리가 출근해서 2시경에 퇴근한다. 그때까지 아들은 아기 보랴 살림하랴 쉴 틈이 없다. 젖병 닦고 분유 먹이고 놀아주고 재우고. 아기가 잠든 사이 틈틈이 세탁기와 식기세척기를 돌리고 청소하고.

아기 엄마가 돌아오면 점심밥을 만들어 같이 먹는다. 그 이후에야 자기 일을 할 수 있다. 아들은 한국 회사 소속으로 재택근무를 하는 중. 오후 늦게야 일을 시작하므로 밤 12시나 1시까지 근무한다. 중간에 저녁밥도 해서 먹고 치우기까지 모두 아들 일이다. 개 한 마리 고양이 한 마리를 돌보는 것도 추가요.

아기가 생기기 전까진 그나마 여유가 있었다. 육아가 가장 큰 부분을 차지하게 되자 운동할 시간이 아예 없어졌다. 따라서 전보다 살이 많이 쪘다. 며느리는 퇴근하고 나서 아기 보는 일만 하고 있었다.

나는 대부분의 집안일을 아들이 도맡아 하는 게 의아했다. 며느리와 더 나누면 훨씬 수월해질 텐데. 이를테면 요리라도 며느리가 하면 좋을 것을. 실은 결혼하고 한 달이 됐을 즈음 며느리가 큰 수술을 받았다. 결혼하자마자 닥친 날벼락에 두 사람은 물론이고 사돈과 우리 부부도 충격을 받았다.

수술 후 약을 먹고 치료하던 중에 임신을 했다. 사정이 그러하니 아마 아들이 처음부터 집안일을 전담했을 것이다. 게다가 며느리는 요리와 살림에 통 소질이 없다고 한다. 뒷마무리가 엉성해서 결국 아들 손이 가야 한다고 한다. 아들이 스스로 하는 게 오히려 속 편해지는 상황이었다.

대신 그녀는 집 안팎의 화단과 화초들을 관리하고 화장실 청소를 한다. 싱크대, 변기 등도 고친다. 허나 그건 매일의 일상이 아니라 주말에나 가끔 하는 일이지. 평일엔 정말 해주는 밥을 먹고 아기만 돌본다.

며느리는 출산 후 '워킹맘'이란 타이틀까지 달았고 아들은 재택근무를 하므로 집에 붙어 있다. 이래저래 아들은 살림꾼이 되었다. 아이구, 니가 결혼해서 알래스카 돌쇠가 되었구나!

900_20250710_201205.jpg 아들이 좋아하는 삼겹살, 파김치, 명이나물


처음엔 동동거리는 아들이 무척이나 안쓰러웠다. 일주일 간 지켜보다가 넌지시 말을 꺼냈다. 집안일을 좀 나누라고, 너 혼자 너무 애를 쓴다고. 아들은 며느리가 퇴근한 후 아기만 보는 게 오히려 도와주는 거란다. 며느리가 오후에 집안일을 하면 또 자기가 아기를 돌보아야 하는데 그게 더 힘들단다.

본인이 그게 낫다는데야 어찌하리. 남편으로서 아빠로서의 아들은 자기 아버지를 전혀 닮지 않았다. 내 남편은 집안에서 오로지 먹고 자고 쉬는 것만 해야 하는 줄 아는 사람이다. 육아는 당연히 아내만 해야 하는 줄 아는 사람이다. 요즘 재활용 쓰레기 정도는 내다 버릴 줄 알게 되어 다행이랄까.

딸도 아닌 아들이 반대로 엄마를 닮았다. "그럼 내가 아빠같이 하면 좋겠어?"라고 아들은 묻는다. 그건 아니다. 아빠같이 굴다간 요즘 세상에 결혼이 다 뭐니, 연애도 못 했겠지. 니가 좋아서 한 선택이니 내 할 말이 없다.

며느리 입장에서 보면 이해 못할 것도 없다. 큰 수술을 받고 와중에 임신과 출산을 했고 또 직장에 다니고 있다. 그녀로선 더 이상 아프지 않고 일상을 유지하는 것만도 천만다행 아니겠나. 믿음직스러운 남편이 아내와 자식이 중하고 귀해서 최선을 다하겠다는데에야.

아버지와는 다른 길을 가는 아들. 애쓰는 만큼 아내와 딸의 존경과 사랑을 듬뿍 받으리라. 그건 무엇으로도 살 수 없는 인생의 큰 자산이다. 조금 자랑하자면, 내가 아들 하나 잘 키워서 손녀와 며느리까지 세 식구가 행복한 것 아니겠냐고요.

나는 그저 맛난 밥을 해서 아들 며느리를 먹이고 집안을 깨끗이 청소하고 아들이 조금이라도 쉴 수 있게 아기를 재우고 놀아준다. 그게 내가 여기에 온 이유니까. 또한 며느리에게 서운함을 품지 않는 나 자신을 칭찬해도 되겠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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