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전자전
열아홉 살 아들이 알래스카로 대학을 갈 때 딱 하나 걱정한 것이 바로 요리였다. 따로 가르친 적이 없었다. 여자건 남자건 필수적으로 기본적인 요리를 할 줄 알아야 한다고 생각한다. 생활의 질과 더불어 생존과 직결되는 문제니까.
세계여행에서 돌아오자마자 나는 유방암 진단을 받았다. 치료를 받느라 정신없었다. 아들은 아들대로 미국 검정고시와 대학입시 준비를 하느라 바빴다. 한가하게 요리를 가르치거나 배우는 건 꿈도 꾸지 못할 상황. 요리에 관해선 시절 운이 맞지 않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들은 요리를 곧잘 한다. 아이가 어릴 때부터 한살림과 생협의 회원으로 가입해서 좋은 재료로 정성껏 음식을 해 먹였다. 유방암 환자가 되기 전까지 직접 김장을 했고 겨울방학 때마다 김치만두를 빚어 냉동실에 쟁여놓았다. 아들이 김치를 엄청 좋아하기에 힘들어도 즐거웠다. 초등학교 중학교를 다녔던 8년 동안 새벽에 일어나 새 밥과 반찬을 만들어 도시락 2개를 싸주었다(급식이 없는 학교 출신임).
별다른 신념이 있었던 게 아니다. 그냥 내 자식을 건강하게 키우고자 한 일이었다. 아이가 워낙 먹는 걸 좋아하고 또 엄마 음식이라면 맛있게 먹어주니까 신이 나서 요리를 했다. 그런 엄마를 어깨너머로 본 덕분일까? 아들은 레시피만 있으면 그럴듯하게 만들어낸다. 특히 자주 먹어본 음식은 능숙하게 맛을 낸다.
아기를 봐주러 온 7월, 대부분 내가 한식을 만들어 주었지만 가끔 아들도 요리를 했다. 엄마가 한식 담당이므로 아들은 간단한 양식을 맡았다.
알래스카에 왔으면 연어는 한번 먹어봐야 하지 않겠냐며 구워 주었다. 친구들이 직접 잡은 연어를 자주 나누어 준단다. 냉동실에 얼려놓고 생각나면 해 먹는다고 한다. 곁들인 볶음밥도 아들의 솜씨.
참치 샐러드와 테라스 화단에서 꺾어온 아스파라거스. 냉동실의 치킨을 에어프라이어에 구웠다. 저 참치 샐러드가 일품이었다. 마요네즈가 들어간 소스는 좋아하지 않는데 이건 느끼하지 않고 담백했다.
흰 살 생선 구이. 알래스카에서 나는 고급생선이란다. 깔끔하면서 순한 맛이다. 간장에 파를 졸인 소스가 입에 쫙쫙 붙었다. 한국에 가서 나도 한번 만들어봐야겠다.
아들과 미얀마에 갔을 때 먹었던 생선구이가 생각났다. 인레호수에서 잡은 물고기였다. 배를 갈라 내장을 꺼내 갖은양념을 채우고 숯불에 구운 것이었다. 내가 평생 먹어본 생선 요리 중 최고였다. 어찌나 맛있던지 비싼 가격에도 불구하고 두 번이나 먹었다.
이건 사돈댁에서 얻어온 소시지와 무스고기 패티로 만든 버거. 위에다 양배추 볶음을 얹었다. 이미 바비큐로 구웠던 고기라 다시 먹어도 맛은 굿!
아침밥으로 만들어준 파 크림치즈 베이글. 파 향이 그윽한 게 커피와 곁들이기에 안성맞춤.
아들은 파 기름 라면도 끝내주게 끓인다. 파로 하는 건 다 잘해. 크크크.
이건 오늘 낮에 오랜만에 라면이 먹고 싶다고 만들었다.
한식만 먹는 와중에 특별식으로 만들어준 안심스테이크. 미국인들은 소고기를 제일 좋아한다고 한다. 작년 결혼식을 하러 온 며느리와 사돈께 갖가지 한국 요리를 사드렸지만. 가장 맛있게 드셨던 음식은 결국 스테이크였다는 전설. 흐흐흐.
코스트코에서 안심을 샀는데 고기 질은 그럭저럭 중급 정도. 놀라웠던 건 바로 고기의 두께였다. 한국에선 절대 볼 수 없는 극강의 두툼함! 이것이 미국 고기인가.
나는 미디엄 레어로 주문을 넣었다. 유일하게 며느리가 자신 있게 요리를 도왔는데 딱 알맞은 굽기 완성. 역시 스테이크를 즐기는 미국인의 솜씨.
오늘이 알래스카 시간으로 금요일, 한국시간으론 토요일이다. 담 주 수요일 새벽 2시 비행기라 실제론 화요일 밤에 아들 집을 떠난다. 그동안 얼마나 더 아들이 해준 음식을 먹을 수 있으려나 모르겠다.
늘 하는 생각. 가까이 살면 얼마나 좋아! 대여섯 시간만 비행기를 타도 감사합니다, 노래를 부르겠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