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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J Mar 20. 2020

피아노가 나에게 주는 의미

나에게는 작지만 확실한 행복을 안겨주는 몇 가지의 취미가 있다. 예전부터 손으로 만드는 것을 좋아해서 시작하게 된 코바늘 뜨기와 구슬로 열쇠고리나 팔찌 등 액세서리를 만드는 것이다. 또 피아노 연주와 독서를 좋아하고 요즘에는 글쓰기에도 빠져 사는 중이다. 이러한 작은 취미들이 모여 나의 일상이 되고, 이 일상들이 어느덧 나라는 사람의 일부가 되어버렸다.   


이중 오늘 말하고 싶은 취미는 피아노이다. 대부분의 어린이가 그렇듯 나 역시 초등학생 때 엄마 손에 이끌려 처음 피아노 학원에 갔었다. 잘 기억은 나지 않지만 1년여 정도 바이엘만 배우다 그렇게 피아노와의 인연은 끝이 났다. 그러다 성인이 되고 문득 나도 악기 하나쯤은 연주해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동안 일하느라 시간이 없다는 핑계로 미루다 33살, 임신을 기점으로 일을 줄이게 되면서 시간적 여유가 생겨 그렇게 나는 태교로 피아노를 다시 배우게 되었다.

           

동네 피아노 학원 몇 군데 비교 끝에 수업시간과 수강비가 적당하다고 생각한 곳에 등록을 했다. 어렸을 적에 다녀본 피아노 학원을 33살이 되어 다시 다니게 되니 무척이나 설레면서도 쑥스러웠다. 그것도 잠시 다시 건반 위에 손을 올려 연주를 시작해보니 너무나 재미있는 것이었다. 분명 초등학생 때는 지루한 시간이었고 못한다고 생각했던 피아노가 어찌 된 영문인지 재미있고 한 곡 한 곡 완성할 때마다 소질이 좀 있는 것 같다는 착각마저 드는 것이다. 그렇게 만삭 때까지 7개월 정도 다닌 것 같다. 임산부라는 핑계로 쉬엄쉬엄 다니다 보니 실력은 눈에 띄게 늘진 않았지만 연주할 수 있는 곡이 몇 곡 될 정도가 되었다.     

      

출산 후에는 신생아를 키우느라 잠도 제대로 못 자고 밥도 잘 못 챙겨 먹는 말 그대로 피폐한 하루하루를 보내게 되다 보니 피아노도 잊고 지냈다. 그러다 아기가 백일쯤 지나면서 나에게도 백일의 기적이란 게 찾아왔다. 아기가 잠을 좀 길게 자게 되면서 나도 잠을 길게 잘 수 있게 되었고 그렇게 몸을 추스를 수 있게 되면서 피아노가 다시 생각났다. 나는 인터넷으로 고르고 골라 앞으로 10년, 아이까지 함께 칠 생각으로 내 기준에서 좋은 디지털피아노를 샀다. 그렇게 처음 나의 피아노가 생긴 것이다.     

                 

허나 인터넷으로 사서 그런지 건반 터치감이 뻑뻑하다고 해야 하나, 학원의 피아노처럼 부드럽게 잘 안 눌러지는 것이다. ‘아 직접 보고 샀어야 했는데, 잘 못 샀나 보다’ 하고 생각했는데 시간이 흐른 후에 보니 그게 아니라 그 당시 출산 한지 얼마 되지 않은 터라 뼈마디가 아직 아물지 않아 손가락 관절에도 힘이 덜 들어가면서 피아노 건반 누르는 것도 힘들었던 것이었다. 지금은 그때 생각이 무색할 정도로 당연히 아주 부드럽게 잘 눌러진다.      


그렇게 4개월 정도를 혼자서 피아노를 치면서 보냈다. 아이가 자는 낮잠시간에 한 곡, 저녁에 자기 전에 한 곡 이런 식으로 조금씩 쳐보면서 나의 첫 피아노와 친해지는 시간을 가졌다. 그러다 아이가 7개월쯤 되니 완전히 통잠을 자게 되면서 나에게도 삶의 활력이란 게 생겨났다. 잠을 푹 잘 수 있게 되면서 이제는 피아노를 다시 배울 수 있는 때가 된 것이었다. 그 즉시 지역맘 카페에 피아노 선생님 구인 글을 올렸고 여러 선생님 중 한 분을 만나게 되었다. 선생님은 대학원에 다니면서 학원일도 하고, 방문레슨도 한다고 하셨다. 여러 선생님 중 이분께 연락드린 이유는 오랫동안 트러블 없이 수업하고 있다는 문구가 마음에 들었기 때문이다. 내가 콩쿠르나 입시를 준비하는 것도 아니고 집에서 아이 키우며 취미로 배우려고 하는데 어떤 문제도 만들고 싶지 않았기 때문에 저 문구가 눈에 들어왔다. 생각해보면 한번 레슨 하는데 길어봤자 30~40분 수업에 무슨 문제가 생길까 싶기도 한데 그 당시 나는 저 문구가 마음에 들었다.     


그렇게 작년 4월부터 레슨을 시작해서 지금까지 주 2회, 30분씩 꾸준히 피아노를 배우고 있다. 지금은 코로나바이러스로 인해 잠시 쉬고 있지만 종식되면 바로 수업을 시작하고 싶을 정도로 나는 아직 피아노에 대한 열정이 가득하다. 수업시간이 운 좋게 아이 낮잠시간과 맞아떨어지면 30분 동안 편안히 수업을 했지만 시간이 맞지 않으면 아이가 안아달라고 울고불고 보챌 때가 많아 선생님이 안아주면서 그렇게 말도 안 되는 수업을 해나갔다.  

         

이렇게까지 피아노를 배우려는 이유는 피아노는 그 당시 나의 소통창구였다. 선생님이 집에 오면서 성인 누군가와 말을 할 수 있었고, 사람과 사람의 만남을 통해 이루어지는 조금은 웃기지만 사회 소통 시간이었던 것이다. 그러면서 나도 누군가와 사회생활을 하고 있구나 하는 사회 일원으로서의 안도감이랄까 뭐 그런 기분이 들었던 것 같다. 그리고 피아노를 배우기 전에는 으레 음악은 듣는 것, 노래를 부르는 것에만 그치는 존재였었다.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 였던 음악이 피아노를 배우면서 내가 직접 참여할 수 있는 주최자가 된 기분이 드는 것이다. 내가 직접 음악을 연주하며 내 손가락 끝으로 내 감정을 넣었다 뺐다 하면서 재창조하는 느낌이 드는데 이 느낌이 꽤 만족스러운 것이다. 이러한 감정은 육아로 인해 지쳤던 메마른 나의 감정을 촉촉이 적셔주는데 충분했고 때론 밑바닥까지 떨어진 나의 자존감을 채워주는 따뜻한 위로가 되어주기도 했다.      

     

이렇게 말하면 연주 실력이 수준급 아니냐고 오해할 수도 있겠지만 남편은 종종 내 피아노 연주를 듣고 이렇게 말하곤 한다.

“틀리지 말고 부드럽게 연주 좀 해줘."

성인이 천재가 아니고서야 몇 개월 배웠다고 일취월장할 수 있겠는가. 그래도 나는 서툴지만 악보를 볼 수 있게 되어서 쉬운 버전이지만 내가 좋아하는 곡을 연주할 수 있게 되어서 행복하다. 아직은 미흡하지만 10년 후에는 내가 좋아하는 재즈곡을 멋지게 연주하는 멋진 아줌마를 꿈꾸면서 오늘도 나는 흑백 건반에 서툰 나의 연주를 더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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