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사랑을 주면서 사랑을 받던 그 시절

인생 그림책: 제즈 앨버로우의 <안아 줘!>를 소개합니다.

by 둥리지


이 책을 처음 만난 시기로 거슬러 올라가 봅니다.


첫째 아이 두 돌 즈음, 서울대공원에서 고릴라를 처음 보고는 눈을 떼지 못하는 아이를 위해 고릴라가 등장하는 책을 사 모으기 시작했습니다. 에릭 칼의 <From head to toe>를 읽고 고릴라처럼 양 가슴을 두드리는 시늉을 시작한 것도, 김진완 작가의 <고릴라 코딱지>에 등장하는 고릴라가 코 파는 모습을 보며 깔깔거렸던 것도 모두 이 시기였어요. 그리고 오늘 소개할 재즈 앨버로우의 <안아 줘!> 역시 이 시기에 만나게 됩니다. (나중에야 안 사실이지만, 사실 이 책의 주인공은 원숭이였어요. 언뜻 보면 고릴라 같기도 해서 아이에게는 고릴라가 나오는 책이라고 소개했어요.)



이 책의 표지입니다. 엄마 원숭이가 아기 원숭이를 끌어안고 있어요. 엄마는 눈을 꼭 감은 채로 만족한 표정을 짓고 있고, 아기 원숭이는 엄마에게 대롱대롱 매달려 웃고 있지요. 그리고 말풍선 안에 제목 <안아 줘!>가 크게 적혀있어요. 원제는 <hug>인데, 마치 시리즈처럼 비슷한 형식의 책이 몇 권 출간되기도 했답니다. 원숭이 머리 위에 말풍선이 있고, 그 말풍선 안에 제목이자 책에서 되풀이될 단어 하나가 크게 박혀 있는 형식으로요.




눈치채셨겠지만 이 책에서는 “안아 줘.”라는 말이 반복됩니다. 하지만 처음부터 그렇지는 않아요. 표지를 열면 엄마 원숭이 없이 아기 원숭이 한 마리만 뛰어놀고 있거든요. 신이 난 듯 폴짝거리던 아기 원숭이는 길을 걸으며 다른 동물들을 만나게 됩니다. 엄마 코끼리가 아기 코끼리를 꼭 끌어안아주고, 엄마 뱀이 아기 뱀의 몸을 감아 안아주는 모습을 보게 되는데요. 그때마다 “안았네.”, “안았네.” 하며 그 동물들을 바라보는 아기 원숭이. 표정이 조금씩 굳어가더니, 마침내 자기만 혼자라는 걸 알아챈 듯 풀이 죽은 표정입니다.


볼멘소리로 엄마 코끼리에게 “안아 줘.”라고 한 번 말해보기도 하는 아기 원숭이. 원숭이를 안을 수 없는 엄마 코끼리는 머리 위에 원숭이를 태우고 다른 곳으로 걸어갑니다. 엄마 원숭이를 찾기 위함이었을까요. 그런데 그만 아기 원숭이는 마음에 난 상처에 소금 뿌릴 장면만 연달아 보게 되지요. 새끼 사자들이 어미 사자 배 위에서 뒹굴고 있는 모습을 보고, 기린 가족이 목을 감고 얼굴을 비비는 모습을 보면서 아기 원숭이는 혼자 읊조립니다. “안았네.”, "안았네."

나 빼고 다 안았네, 하며 혼란스러워하던 아기 원숭이의 읊조림은 이내 절규로 바뀝니다.


안아 줘!

눌러둔 서러움을 폭발시키듯 아기 원숭이는 소리칩니다. 발을 동동거리고 눈을 비비며 “안아 줘!” 하고 소리 내 울기 시작합니다.

책을 읽는 아이의 표정이 아기 원숭이만큼이나 슬퍼질 무렵, 엄마 원숭이가 두 팔을 벌리고 성큼성큼 달려옵니다. 그리고 아기 원숭이의 이름을 크게 외칩니다. “보보야!”


이제야 이름을 찾은 아기 원숭이 보보도 목이 터져라 외칩니다. “엄마아!”


둘은 꼭 끌어안습니다. 홀로 놓여있었을 아기 원숭이에게 미안한 만큼, 다른 엄마들을 바라보며 부러웠던 만큼 뜨겁게 끌어안습니다. 이 순간을 기다리는 동안 둘 중 누가 더 애타는 마음이었을지 분간할 수 없지요.



오지 않는 엄마를 기다리며 발을 동동 구르는 아이의 마음을 생각합니다. 기대했다가 실망하기를 반복하면서 불안해질 때쯤 눈에 들어오는 엄마를 보고 울음을 터뜨리던 어린 시절의 하굣길을 떠올립니다. 실은 그 눈물에는 짜증도, 불안함도 아닌 안도감이 가득했다는 사실도 함께 떠오릅니다.


하지만 두 아이의 엄마가 되고 나니, 엄마 원숭이가 눈에 들어옵니다. ‘보보 엄마’는 무슨 일로 아이를 혼자 내버려 둘 수밖에 없었을까요. 어린이집에 혼자 덩그러니 남겨진 아이를 급하게 데리러 가던 날을 떠올립니다. 엄마들이 아이들을 데리러 올 때마다 기대했다가, 실망했다가, 또다시 기대했을 우리 아이의 작은 심장을 떠올리니 마음이 아려옵니다.


그렇게 보보와 보보의 엄마는 뜨겁게 포옹합니다. 이야기는 여기에서 끝나지 않아요. 엄마를 만나 안정감을 되찾은 보보는 이내 처음과 같은 밝은 표정을 되찾고는 다른 동물들과 어울립니다. 충전을 끝낸 것처럼 온전해진 마음으로요.


어찌 보면 참 단순한 이야기와 더 단순한 대사로 이루어진 이 책을, 저희 아이는 그렇게도 여러 번 들고 왔어요. 책장에서 이 책을 한 번 뽑아 왔다 하면 열 번은 읽어야 직성이 풀린 듯 다른 책을 찾으러 유유히 떠나던 아이의 뒤통수가 떠오릅니다. 하루에 열 번, 어떤 날은 아침저녁으로 읽었으니 스무 번, 그렇게 한 달만 읽었어도 300번은 가뿐히 읽었을 책을 반년은 끼고 살았으니 아이와 저는 이 책을 몇 번이나 읽은 걸까요. 아이와 저는 몇 번이나 끌어안았던 걸까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때가 고된 시간으로 기억되지 않는 이유는, 서천석 박사님의 <그림책으로 읽는 아이들 마음>에 실린 글로 설명할 수 있을 것 같아요.


이 그림책은 종종 마법을 일으킨다. 그림책을 읽으면 부모와 아이는 어느덧 서로 마주 본다. 그리고 서로를 부르며 부둥켜안는다. 체온을 나누고, 마음을 나누고, 사랑의 눈빛을 나눈다. 그 시간이 좋아 부모도 아이도 이 그림책을 읽고 싶어 한다. (중략) 그만큼 아이에게는 사랑이 필요하다. 부모가 필요하다. 자기를 안아주는 사람, 소중히 여겨 주는 사람, 그 품에서 안심할 수 있는 사람이 필요하다. 사실은 부모도 마찬가지다. 자기를 안아 줄 사람이 가끔은 절실하다. 그래서 아이를 안으며 스스로의 마음을 위안한다. 사랑을 주면서 사랑을 받는다. 인생의 빛나는 시간 중 한때가 바로 그 순간이다.

- <그림책으로 읽는 아이들 마음> 57-60쪽

이 글을 읽는 당신도 그림책 <안아 줘!>와 함께 사랑을 주고 사랑을 받는 귀중한 경험을 할 수 있기를, 인생의 빛나는 시간 중 한때를 남길 수 있기를 바랍니다.

keyword
매거진의 이전글돌 이전 아가들은 어떤 책 좋아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