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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하영 Apr 20. 2019

<특별편> 어바웃 런던

2016.03.02 기록

두 번째 여행지는 런던이다. 그리고 코펜하겐 이후 온전히 처음으로 혼자 하는 여행이다. 비행기 예매할 때만 해도 긴장했었지만 다행히 여행 날짜가 다가올수록 자신만만해졌다. 더 열악한 곳도 많이 다녔는데 무서울게 뭐람.


먼저 내가 런던을 가고 싶었던 이유는 전 포스팅에서 언급한 바와 같이 영화 속 분위기를 느끼고 싶어서이다. 러브 액츄얼리, 노팅힐, 어바웃 어 보이, 브리짓 존스의 다이어리 등 좋아하는 영화의 배경이 런던이었다. 영화도 영화지만.. 팝송도 하나의 이유다. 어렸을 때부터 한국 가요보다는 팝송을 더 즐겨 들었는데 요 근래 즐겨 듣던 가수들의 국적을 찾아보니 다 영국이었다. The 1975 (심지어 런던 출국날에 새 앨범이 나옴), blue, rixton 등등.. 한국에서 이 노래들을 들으면서 런던 거리에서 들으면 정말 감격스럽겠군... 하고 막연한 꿈만 꿨었는데 결국 그 날이 오게 되었다. 

(그러나 하이드 파크에서 이어폰을 떨궈서 생각보다 노래를 많이 듣지 못해... 아쉬움이 크다)


흔히들 런던 하면 빅벤, 타워브리지, 내셔널 갤러리, 대영박물관, 런던 아이 등 거대한 건물이나 조형물을  떠올리곤 한다. 야경이 하도 유명해서 숙소에 도착하자마자 짐을 풀고 찾아갔는데, 딱히 감동을 받거나 오 멋지다... 이런 느낌은 안 들었다. 런던 아이의 경우, 뭐지 이 허접한 관람차는? 이런 생각까지 들 정도였다. 


(그래도 빅벤은 예의상 사진을 올려야 될 것 같았음)


그래도 저녁이라 좀 한적해서 여유로이 감상하다 올 수 있었다. 다음날 낮에도 찾아갔는데...  여행 중 가장 최악의 순간을 고르라면 낮의 빅벤과 웨스트민스터 사원 근처에 갔을 때였다. 웬 관광객이 그렇게 많은지! 더 이상 영국 영어가 아닌 스페니쉬와 이탈리안, 정체를 알 수 없는 언어들이 내 귀에 들어올 때마다 괴리가 느껴졌다. 빨리 벗어나고 싶었고 그래서 향한 곳이 트라팔가 광장이었는데... 트라팔가 광장에서는 그날 시위가 열리고 있었다. 가는 날이 장날. 서울시청 앞에서 시위가 벌어질 때도 안 가봤는데 이렇게 트라팔가 광장에서 하마터면 시위에 동참할 뻔했다. (호기심에 둘러보는데 팸플릿을 나눠줬음) 정말 이 날은 런던 자체가 사람으로 꽉 찼었던 것 같다. 코벤트가든도 쉑쉑 버거 좀 먹어보겠다고 굳이 찾아갔는데 줄 서서 한참을 기다려야 할 정도였고 m&m월드에 갔을 때는 영국의 모든 어린이들은 다 모인 듯했다. 마치... 명동에 온 것 같았다. 아니면 홍콩! (생각해보니 홍콩이 영국의 식민 지였어서 그런지 무언가 비슷한 느낌이 들기도)



내가 비로소 숨을 돌릴 수 있었던 것은 이날 저녁 이후 뮤지컬을 볼 때였다. 엄밀히 말하면 뮤지컬을 보기 직전. 이때가 이번 여행에서 가장 좋았던 순간이었다. 뮤지컬 마틸다 표를 구했는데 (8500원 매우 저렴) 한국인들은 다 빌리 엘리엇, 오페라의 유령, 위키드 등을 보러 가서인지 로컬 영국 사람들이 대부분이었다. 뮤지컬 극장에 입장하기 전 대기장소에서 영국 사람들을 관찰하면서 기다리고 있는데 마치 정말 영화 속에 있는 것 같았다. 어쩜 사람들이 다 영화 속에서 본 배우들 같은지! 배우 하나하나 매치해도 될 정도였다. 영국 유명한 여배우 중 한 명인 캐리 멀리건 닮은 사람들이 많았고 고개를 돌리면 엠마 톰슨이 있었고 또 고개를 돌리면 키이라 나이틀리가 있는 기분이었다. (심지어 어린애들 중에서는 해리포터에서 화장실 귀신인 머틀을 닮은 애도 찾을 수 있었다. ) 그들이 대화하고 인사하는 것을 관찰하니 영화 속 그대로였다. 왜 러브 액츄얼리가 대히트를 쳤는지 비로소 알 것 같았다. 지극히 현실적이었다!

뮤지컬 자체도 굉장히 인상적이었다. 단조롭게 보이던 무대장치가 변하는 모습을 보며 아무래도 무대 디자이너가 천재임이 분명하다고 생각할 만큼... 마틸다 역을 맡은 어린아이도 어찌나 야무지게 연기를 하던지... 어렸을 때 수차례 봤던 마틸다 영화도 생각나고, 노래도 좋고, 연출도 재밌고, 5파운드를 넘어선 가치가 있었던 뮤지컬이었다. 왜 다들 영국에서 뮤지컬을 보라고 하는지 비로소 알 수 있었던 시간. 




다음날은 꼭 가야만 했던 노팅힐과 런던의 수많은 공원들을 체험해보기로 했다. 런던이 공원이 가장 많은 대도시라고 하는데 정말 공원들 규모가 대단했다. 안 걸을 수가 없었고 그 큰 공원들을 다 돌았던 것 같다. 




 

굉장히 깔끔하게 잘 조성되어 있었고 전날의 복잡함에서 벗어나 한적함을 만끽할 수 있는 시간이었다. 다만 욕심이 많아 가고 싶었던 곳은 다 보고 싶은 마음에  쉬지 않고 계속 걸어 다녔고 막판에는 정말 힘들어서 웬일로 덴마크의 내 기숙사가 그리워질 정도였다. 


공원을 걸어 다니면서 많은 생각을 하게 되었는데 그중 하나가 내가 묵은 민박집 사장에 대해서이다. 젊은 부부가 운영하고 있는 민박집인데 아내분은 굉장히 친절하고 언니 같은 느낌이 있는 반면, 남편분은 성의 없는 태도로 불쾌함을 조장하셨다.  처음 나에게 숙소 근처 역과 마켓의 위치, 헷갈릴 수 있는 방의 위치 등을 설명해주실 때 초행인 여행자들은 당연히 이해가 어려운데 본인 위주로 설명하시는 것, 관광지 루트에 대해 물어보는데 잘 모르는 추측성 대답 (대충대충-이 부분에서 민박 주인의 자질이 없다고 느꼈다), 퉁명스러운 대꾸 등등..    이 남편분의 태도는 내 여행의 유일한 오점이었다. 공원을 걸아가며 생각한 것이 한 사람이 즐거운 시간을 누리는데 내가 그 시간을 방해한 유일한 사람이 된다면 음.. 말로 형용할 수 없을 정도로 끔찍할 것 같았다.

그리고 동시에 공원에서 여유로움을 만끽하는 사람들을 보며 생각한 것이 지금까지는 마음에 안 드는 사람을 만나면 저 사람이 진짜 왜 저러지... 이러면서 불평을 많이 해왔던 것 같다.  이 부분에 대해 앞으로는 여유롭게 넘길 수 있는 사람이 되어야겠다고 다짐했다. 마음에 안 드는 사람을 만나면 왜 저래 하고 의문을 품기보다는 그 사람을 타산지석 삼아 나는 그 사람처럼 행동하지 않도록 나 자신을 위해 더 투자할 수 있는 사람이 되어야겠다. 


이런저런 생각을 하며 계속 걸어 다니다 보니 낮동안은 공원을 , 저녁에는 타워브리지, 세인트 폴 성당까지 다 클리어할 수 있었다. 일요일이라서 입장이 불가능한 관광지도 있었는데 밖에서 보기만 해도 충분히 가볼만한 가치가 있었다. 


저녁에는 런던 브릿지에서 예상치 못한 멋진 노을을 볼 수 있었다. 

(노을을 등지고 찍은 타워브리지)

이 하늘을 보니 그날의 피로가 절로 풀리는 정도... 는 절대 아니었다. 그래도 영국 날씨는 기대도 안 했는데 이날 오후부터 갑자기 날씨가 맑아져 이런 풍경을 볼 수 있다는 사실에 감사함을 느꼈다. 여행 기간 동안 비 한 방울도 안 맞은 것은 거의 기적이었다. 역시 난 운이 좋은 편이구나...라고 생각했고.


이번 여행을 하면서 내 여행 스타일이 변했음을 알 수 있었다. 원래는 유명 관광지를 보는 게 우선이라고 생각했고 그곳들을 다 보고 오면 뿌듯함을 느끼곤 했었다. 몸의 고단함과는 상관없이. 그러나 이번 런던 여행을 하며 유명 관광지를 보며 크나큰 감흥을 느끼진 못해 이게 다가 아님을 깨달았다. 오히려 로컬 분위기를 느꼈을 때 비로소 여행을 왔구나.. 하고 생각할 수 있었다. 뮤지컬 대기장소에서처럼. 사람도 사람이지만 작은 것 하나에도 그 나라, 그 도시만의 분위기와 특색을 느낄 수 있다. 한국과는 다른 부엌의 싱크대, 횡단보도의 신호등, 길거리의 타일과 가로수 등등 이런 작은 것도 무심결에 지나치는 것이 아니라 관심을 가지고 관찰하다 보면 나름의 재미를 찾을 수 있다. 그리고 앞으로는 보다 여유롭게 일정을 짜야겠다. 런던은 비행 일정 때문에 어쩔 수가 없었는데 남은 여행들은 그 나라만의 분위기를 충분히 즐길 수 있도록 계획해야겠다. 


그리고 민박집에서 가장 만족스러운 수확이 바로 샴푸다. 인생 샴푸를 찾았다. 런던 버스에 붙여져 있는 광고에서도 자주 볼 수 있었던 상품.. 거품 감촉을 잊을 수가 없다. 너무 커서 사 오진 못했지만 한국에서 어떻게든 구해봐야겠다. 




'19년 감상평 :

- 마틸다, 트레제메 이제 다 한국 진출함

- 원래 영국은 악천후로 유명하지만 내가 여행 간 나라 중 유일하게 비가 오지 않았음.

지금까지는 마음에 안 드는 사람을 만나면 저 사람이 진짜 왜 저러지... 이러면서 불평을 많이 해왔던 것 같다.    이 부분에 대해 앞으로는 여유롭게 넘길 수 있는 사람이 되어야겠다고 다짐했다.  --> 뜨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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