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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하영 Apr 21. 2019

Tak!

2019.05.02 기록

오기 전부터 불안했던 내 노트북이 결국 명을 다했다. 이번엔 액정이... 어느 정도 예상은 했던 바라 당황스럽지는 않았지만 당장의 블로그 기록이 문제였다. 학교에 컴퓨터가 있긴 했지만 한글자판이 없으니.. 그러나 결국 방법을 찾아냈고 남은 생활과 여행기록을 계속할 수 있을 듯하다. 


4월에는 다른 나라로의 여행 계획을 아예 잡지 않았다. (가까운 스웨덴 말뫼 제외) 일단 팀플이 가장 큰 이유다. 4월부터는 팀플 두 개가 본격적으로 진행되었는데 여행 때문에 빠져서 프리라이딩을 했다간 제명당할 수도 있겠다는 두려움을 느꼈기 때문이다. 두 번째 이유는 덴마크 여행을 하고 싶어서였다. 사실 덴마크는 유명한 여행지가 거의 없다. 그래서 더 호기심이 생겼고 코펜하겐을 벗어나 다른 도시는 어떤지 느껴보고자 싶었다. 특히 스페인을 다녀와서 같은 나라라도 이렇게 도시가 다를 수 있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에 더욱이 국내여행의 필요성을 느꼈다.

(코펜하겐 탈출 직전의 벚꽃) 


그러나 덴마크는 코펜하겐과 오덴세를 제외하고는 여행지에 대한 정보가 거의 없어 계획을 세우기가 상당히 막막했다. 그러다 보니 의욕도 사라져서 그냥 오덴세나 갈까 하고 생각하고 있던 차에 누군가가 생각이 나서 바로 여행정보를 물어보았다. 


그 누군가는 바로 내 덴마크인 친구 '릴리안'이었다. 릴리안은 한양대에서 지난 학기 교환학생 생활을 했었고 나와 같은 수업을 들었었다. 수업시간에 교수님이 외국인 학생들에게 국적을 물어보는 타임이 있었는데 그때 덴마크라는 단어를 들었고 당시 덴마크 교환이 확정이었던 나로서는 매우 반가웠다. 그러나 그때만 해도 낯선 외국인에게 말 거는 게 생소하고 부끄러워서 결국 종강할 때까지 말 한마디 못 걸었었다. 그래도 가기 전에 덴마크 친구 한 명은 사귀고 가면 나쁠 것은 없겠다 하는 생각에 용감히! 메시지를 보냈고 그때부터 연락을 하며 지내게 되었다. 즉... 사이버 친구가 되었다. 릴리안은 내 얼굴은 전혀 몰랐을 텐데도 덴마크에 가기 전부터 날씨가 어떤지, 교통은 어떤지 등의 정보를 알려주고 덴마크에 도착했을 때도 잘 도착했는지, 생활에 유용한 앱은 무엇이 있는지 일일이 다 알려주는 선행을 베풀어 주었다. 


이번에도 릴리안은 덴마크 로컬 버스 회사 홈페이지와 같은 저렴한 교통수단과 여행하기 좋은 곳들을 친절하게 소개해주었다. 


그리고 며칠 뒤... 

여행은 언제 할 것이며 자기 집에는 언제 올 것이냐는 메시지가 왔다. 사실 연락 초기에 자기 집에도 놀러 오라는 말을 했었는데 예의상으로 말을 많이 하는 한국사회에 길들여진 나는 크게 기대를 안 했었다. 릴리안의 언행일치에 감동하는 순간이었다. 이후 내 덴마크 여행 계획은 순식간에 진행되었고 릴리안의 홈타운인 오르후스와 덴마크 최북단 도시인 스케인(스카겐)을 가기로 했다. 오르후스는 덴마크 제2의 도시로 한국의 부산과 비슷한 곳이다. 해안도시이고 코펜하겐에서 버스로 4시간 정도 걸리는 곳에 위치해있다. 유명한 관광지는.. 없다. 그래서 크게 관광에 대해서는 크게 기대를 안 했었고 덴마크 친구와 하루를 보낼 수 있다는 점에 의의를 두었다. 



여행 당일, 버스에서 내리자마자 바로 릴리안을 만났는데 처음 보는 나를 따뜻한 포옹으로 맞이해주었다. 덴마크식 인사라면서.. (이때 처음 알았다.) 그리고 가장 먼저 향한 곳은 미술관. 어지간히 볼 게 없었던 오르후스에서 그나마 가장 유명한 곳이었다. 


(가장 기억에 남는 작품. 맥부타)


(무지개 빛깔 띠. 나름 오르후스 랜드마크)


(굉장히 사실적으로 표현되었던 거대 소년)


작품들이 풍자류가 많아서 쉽게 이해할 수 있었고 하나같이 특이해서 보는 맛이 쏠쏠했다. 사실 나는 미술관 작품만큼 좋았던 것이 미술관 실내 디자인이었다. 덴마크 어디를 가도 건물 내부는 딱 북유럽 스타일 그 자체다. 그래서 릴리안에게 나는 덴마크의 이런 디자인이 가장 마음에 든다, 한국은 아직도 너무 촌스러워. 이런 식으로 말했다. 릴리안은 '나는 그런 촌스러움이 좋던데.. '이렇게 대꾸했다. 개인적으로 나는 대다수의 한국의 학교, 관공서 내부의 분위기를 안 좋아한다. 대충 아무 책상, 의자, 서류 등을 배치해서 조잡한 느낌이 들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릴리안의 대답을 듣고 이런 분위기도 처음 느끼는 외국인들에게 새로울 수 있겠다는 생각을 새삼 하게 됐다. (심지어 릴리안은 덴마크의 디자인이 다 거기서 거기라 지루하다는 식으로 말했다.)


다음으로 릴리안이 데려간 곳은 오르후스 공원들과 해변가였다. 날씨가 좋아서 그런지 결과적으로 대만족이었다. 코펜하겐 보다 더 밝은 분위기였고 (날씨 덕) 한가로운 분위기였다. 




그러나 여유로움도 잠시 나는 저녁시간이 다가올수록 불안감을 느꼈다. 저녁 식사를 나와 친구들이 해주기로 했는데 이렇게 부담을 느꼈던 적이 없었다. 릴리안이 제공한 숙소와 가이드에 대한 보답으로 만들어 줘야 하는 것이라 그런 듯하다. 이 와중에 릴리안은 채식주의자였고 오기 전부터 메뉴 선정에 난관을 겪게 되었다. 외국인들에게 해주기 만만한 것은 불고기... 정도였기 때문이다. 그러나 친절한 릴리안은 김치찌개를 먹고 싶다고 직접 말해주었고 나는 오르후스 여행 이 주 전부터 바로 내 김치와 함께 릴리안을 위한 김치도 주문했다. 그리고 다행히 달걀은 먹는다고 해서 계란말이와 계란 장조림을 하기로 했다. (계란 파티)


다행히 다 처음 해보는 요리이긴 했지만 세 명이서 정성을 최대로 쏟아가며 음식을 만들다 보니 무사히 성공적으로 완성할 수 있었다. 릴리안 어머니와 릴리안 모두 맛있다고 칭찬해주셨고... 가장 안도했던 순간 중 하나일 것이다. 


(한국음식 서양식으로 먹기)


릴리안 집에 대해서 얘기해보자면 우리는 1인 1방 1 침대를 사용할 수 있었다. 원래 어머니와 릴리안의 동생들이 사는 집인데 그날 동생들은 코펜하겐에 있어 우리가 딱 방을 얻을 수 있었던 것. 1인 1방은 전혀 기대하지 못한 부분이어서 감사함을 다시 한번 느꼈다. 릴리안의 집은 들어가자마자 바로 포근함을 느낄 정도로 안락했다. 곳곳에 이케아 감성이 묻어났다.





아침에는 릴리안 어머니가 우리에게 덴마크식 아침을 대접해주셨다. 덴마크 전통 빵과 치즈, 요구르트를 먹었는데 맛없던 덴마크 빵이 맛있었던 유일한 순간이었다. 여러모로 덴마크 일반 사람들의 생활을 체험할 수 있었던 좋은 기회였다. 


지금 와서 돌이켜보면 나라면 릴리안처럼 처음 보는 외국인들을 대접할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직접 말도 안 해본 애들을 자기 집에 재우고 관광가이드까지 해주는.. 더군다나 그날은 덴마크 공휴일이었는데 릴리안은 자신의 휴일을 반납하고 우리와 함께 시간을 보내주었다. 릴리안 어머니도 우리를 보자마자 미소와 포옹으로 맞이해주시고 저녁식사 이후에는 푸짐한 과일까지 가져다주셨다. 덴마크 와서 감사함을 가장 많이 느꼈던 순간일 것이다. 새로운 경험을 할 수 있는 기회를 마련해준 것에 다시 한번 감사를 표한다. Tak!


그리고 이번 계기를 통해 내가 운이 좋은 사람임을 느꼈다. 사실 나는 평소에 내가 운이 항상 따라주는 편이라고 생각하진 않았다. 그러나 작년부터 느낀 것은 나는 그래도 내가 기회만 잘 잡아낸다면 '럭키'함을 꽤 느낄 수 있는 것 같다. 이번 경험도 릴리안에게 메시지를 보내지 않았더라면 못 해봤을 것이다. 앞으로도 적극적으로 기회를 잡아내어 내게 주어진 운을 최대한 누려보도록 해야겠다. 



'19년 감상평 :

-요 근래 가장 생각 많이 나고, 나와 가까운 사람들과 함께 가고 싶은 곳. 

-이때도 외국에서 노트북 고장 나는 징크스를 겪었었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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