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02.18 기록
유럽으로 교환학생을 가고자 한 것은 여러 나라를 다니고 싶어서였다. 그래서 대학교 생활 동안 남들 다하는 '방학 중 유럽 여행'은 생각도 안 해봤다. 그래서인지 다들 가는 '방학 중 유럽여행' 코스에서 벗어나 특별한 곳을 가고 싶었고 그중 한 곳이 바로 프랑스 남부이다. 어렸을 때 '박물관 어쩌고 저쩌고' (정확히 기억 안 남)한 프랑스 동화책을 읽었던 때부터 환상이 생긴 듯하다. 그 책에서 프랑스 남부로 휴가를 가는 부분이 있었는데 그냥 이유 없이 기억에 계속 남았다. 그리고 프랑스 남부는 내가 좋아하는 영화들의 배경이 되었던 곳이다. 'A good year', 'Grace of Monaco', 'Magic in the moonlight' 등등.. 영화들 속에 장면들을 보고 있으면 저기는 꼭 가야겠다! 이 생각을 항상 해왔던 것 같다.
마침 니스에서 카니발을 한다는 소식을 알게 되었고 이 때다 싶어 서둘리 비행기표를 예매했다.
공항을 나오자마자 바다가 보이는데 내 생애 최고의 바다 색이었다. 무엇보다 코펜하겐과 달리 구름 한 점 없는 하늘, 선글라스를 써야 할 정도로 강렬한 햇빛은 바로 나를 완전히 만족시켜주었다. 사람들의 모습도 코펜하겐과 완전히 달랐다. 금발에 파란 눈을 가진 바이킹 족이 아닌 갈색머리, 흑발, 짙은 피부색의 사람들을 곳곳에서 볼 수 있었다.
구시가지. 사실 유럽에 가면 골목길에 대한 환상이 있었다. 우리나라와는 정반대의 분위기를 느껴볼 수 있는 가장 확실한 곳이라 여겼기 때문이다. 집들의 모양도 다르고 길의 타일도 다르고... 구시가지의 골목길은 내가 생각한 전형적인 유럽이었다. 사실 나는 유럽에서 에펠탑, 빅벤, 두오모 성당 등 '랜드마크'라 할 수 있는 장소들보다 이런 현지의 분위기를 완연히 느낄 수 있는 곳을 더 가고 싶었다. 겨울이다 보니 날씨가 그래도 쌀쌀해서 내가 그토록 앉아서 커피 한잔 하고 싶었던 노천카페들은 안으로 다 숨어버렸지만.. 그래도 매우 만족스러웠던 구시가지 산책이었다. 아무래도 프랑스에서도 '지방'이기 때문에 어딘가 촌스러운 느낌도 있었는데 항상 세련됨을 추구하는 코펜하겐과 비교하는 재미가 있었다. 따뜻함과 정겨움이 더 느껴지는 쪽은 당연 니스였다.
프랑스에 도착하자마자 바로 느꼈던 것은 프랑스 사람들은 정말 불어를 자랑스럽게 여긴다는 것이다. 코펜하겐과 달리 상점이나 식당에서 사람들은 hi가 아닌 봉쥬르로 인사를 했으며 나갈 때도 thank you 보다는 merci가 더 많이 들리고... (나도 merci를 연발했다) 갑자 기내가 덴마크어로 인사말은 물론 고맙습니다 조차 모른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앞으로 덴마크에서 적어도 감사합니다 정도는 Tak!으로 말해봐야겠다. (덴마크인들이 내게 thank you 만 해서 정말 프랑스에 오기 전까지는 느끼지도 못했던 부분이다.)
그리고 첫날 저녁은 피자집에서 외식을 했는데 웨이터가 매우 친절했다. 몇 번이고 와서 음식이 괜찮은지 물어봐주었고 socca라는 니스 고유의 빵을 맛보게 해 주었다. 이 피자집뿐만이 아니라 아이스크림 가게, 다음날 갔던 스테이크 집 모두 웨이터들이 친절했다. 카페에서도 커피를 카운터로 가져가야 하는 것이 아닌 웨이터가 내 테이블로 가져와주는 서비스가 많이 남아있었다. (서울은 이제 이런 서비스는 찾기 어렵다). 코펜하겐과 비교를 하고 싶었지만, 순간 또 깨달은 것이 내가 코펜하겐에서 제대로 된 외식 한번 해본 적이 없다는 것이다. 카페 두 번, 맥도널드가 끝.
다음 날은 근교 도시인 에즈와 모나코를 갔다. 버스에서 수많은 아시안을 보았다. 일본, 중국, 한국.... 정말 아시아 관광 온 줄 알았다. 그래서 그런지 에즈는 니스만큼 만족스럽지는 않았다. 풍경은 좋고 동네도 아기자기 하지만 패키지 여행객들로 인해 곳곳에서 들리는 한국어... 등으로 그다지 기억에 강렬하게 남지는 않았다. 사람들이 막 밀려오느라 서둘리 사진 찍어야 했던 것도 그닥.
모나코는 사실 프랑스 남부에서 가장 가고 싶었던 곳이다. 아쉽게도 비가 오느라 편히 다니지는 못했다. 모나코 왕궁도 들어가 보지 못했고... 그래도 모나코 성당은 이날 코스 중 최고였다. 이쪽 종교에 대해 아무것도 모르지만 가끔 성당을 들어가면 아 내가 유럽에 왔구나 하고 가장 잘 느낄 수 있는 것 같다. 특히 모나코 성당은 그레이스 켈리가 결혼식을 올린 곳이고 그의 무덤이 있는 곳이라 더욱이 흥미롭게 구경할 수 있었다.
모나코는 바티칸에 이어 세계에서 두 번째로 작은 나라라고 한다. 그래서인지 바다 옆 길을 따라 걷다 보면 전체를 다 둘러볼 수 있는데 길을 걸으면서 보이는 풍경은 그다지 막 아름답지만은 않았다. 생각보다. 비가 와서 그런 것인지는 몰라도 멀리서 본 모나코의 모습은... 남미 빈민촌 같은... 느낌이었다. (사실은 세금을 안 걷어도 될 정도로 부자나라)
셋째 날은 카니발의 날이다. 그전에 샤갈 미술관에서 가서 그림도 보고... (생각보다 작품이 별로 없었다.) 니스 산책도 했는데 프랑스에는 정말 개 키우는 사람이 많다. 종류도 참 다양하다. 트램에 개를 데리고 타는 경우도 보았다. 이 모습을 보며 느낀 게 프랑스인들이 개고기를 먹는 우리나라 사람들을 왜 혐오하는지 알 것 같았다. 우리 역시 프랑스 사람들도 거위 간이나 달팽이 같이 이상한 것을 먹는다고 동시에 비난하지만 우리는... 달팽이나 거위를 반려동물로 키우진 않으니까.
카니발은 사실 퍼레이드였다. 롯데월드 에버랜드와 다른 것이라면 할머니 할아버지와 같은 노인분들도 퍼레이드에 참여한다는 것. 그것도 매우 즐겁게!
아마 니스 주민들 같은데 노인분들이 흥에 겨워 퍼레이드에 참가하는 모습이 보기 좋았다. 관람석에서도 남녀노소 불문하고 다양한 사람들이 있었다. 이런 축제가 있다는 것이 새삼 부러웠다. 우리나라는 사실 남녀노소 모두 즐거워하는 축제가 없는 것 같다. 지역축제가 있긴 하지만 젊은 층들은 흥미가 없다. 노인들은 젊은 층이 가는 컬러런, 클럽파티, 대학 축제 등에 관심이 없으시다. 유일하게 모든 연령층이 관심 가지는 축제는 대기업이 진행하는 여의도 불꽃축제 하나인 듯. 아무래도 이런 환경 속에서는 공감대를 형성하기가 어려워지고.. 이것이 세대차이를 더욱 극심하게 만드는 것이 아닌가 싶다. 덴마크에도 티볼리라는 매우 오래된 놀이공원이 있다. 그러다 보니 가족들이 올 때 할머니 할아버지도 모두 함께 와서 추억을 떠올리면서 즐거운 시간을 보낸다고 한다. 나중에 봄에 개장하면 꼭 가봐야겠다. 어떻게 다들 즐기는지. 롯데월드에서 할머니 할아버지를 뵌 적은 정말 단 한 번도 없는 것 같다.
니스 여행 매 순간순간이 현실이 아닌 것만 같았다. 한국에서는 항상 걱정만 했었는데 오랜만에 신나게 1분 1초 즐겁게 지낼 수 있었다. 매우 성공적인 첫 여행이었다. 처음으로 교환학생을 안 왔으면 후회했겠다... 하는 생각이 들었을 정도로.
다음 여행은 런던이다. 런던도 내가 가고 싶었던 나라 중 하나이다. 런던 역시 곳곳의 골목길이 기대가 된다! 워킹 타이틀스의 영화들을 다시 보고 가야 할 것 같다.
'19년 감상평:
날씨 좋기로 유명한 프랑스 남부에서도 비를 맞았었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