벵골어, 방글라데시의 정신
나는 3개월 째 벵골어 학원을 다니고 있다.
어느 날 교재에서 본 예문에 가벼운 충격을 받았다.
"아말 짤 마마 아체 আমার চার মামা আছে (내게는 네 명의 마마가 있다)."
마마? 마마는 엄마겠지? 내게 네 명의 엄마가 있다니.
이슬람 사회에서는 일부 다처제가 가능하니까, 벵골어 교재에 이런 예문이 나올 수 있나보다, 라고 생각했다.
교재에 이런 예문이 떡 하니 나와 있다는 게 생경했다.
그런데 알고보니 "마마 মামা "는 이곳에서 삼촌이라는 뜻이었다. 엄마는 "마 মা "다. 영어로는 마마가 엄마니까, 헷갈려서 완전 오해했던 것. 내가 본 문장은 "내게 네 명의 삼촌이 있다"라는 뜻인 거다. (삼촌이야 얼마든지 네 명 있을 수 있지..)
이것을 보고 궁금해서 현지인 선생님께 물어봤다. 방글라데시에서는 여러 부인을 둘 수 있는지. 현재 부인이 허용한다면 법적으로는 문제 없다고 한다. 하지만 현재 부인이 허락하지 않으면 안 되는 거라고.
"네 명의 엄마" 사건은 나의 오해였지만, 언어에는 그 언어를 쓰는 사람들의 생각과 문화가 드러난다. 언어가 사람들에게 영향을 준 것이기도 하겠고. 나는 벵골어를 통해 방글라데시 사람들의 공동체 의식, 자유 분방하고 융통성 있는 모습, 그리고 예술적 감각 등을 볼 수 있었다.
벵골어는 불어처럼 주어에 따라 동사 어미가 변한다. 그런데 나와 우리, 너와 너희들 같은 단수/복수 구분은 명확하지 않다. 불어는 명확히 구분하는데. 공동체의식이 강해서 특별히 나와 우리를 구분하지 않는 게 아닐까. 이건 한국어도 비슷하긴 하다. 우리도 단/복수 구분이 영어만큼 명확하진 않잖아.
영어에는 친척 호칭어가 외가, 친가 별로 따로 있지 않다. 하지만 벵골어에는 친척 관련 단어가 굉장히 발달해 있고, 심지어 종교 별로도 단어가 따로 있다. 예를 들면 한국에서는 이모, 이모부/ 고모, 고모부로 구분하는데, 벵골어에는 무슬림이 사용하는 이모, 이모부(칼라, 칼루)/ 고모, 고모부(푸뿌, 푸빠)의 네 가지 단어가 따로 있고, 힌두들이 사용하는 네 가지 단어(이모, 이모부(마시, 메쇼))/ 고모, 고모부(삐시, 삐샤)가 따로 있는 것이다. (절대 다 못외워! 결혼한 지 3년이 돼도 아직 한국 친척호칭어도 다 못 익혔는데.)
재미있는 건 무슬림의 엄마, 아빠 호칭어가 발음 그대로 암마, 압빠인 것. 한국어랑 너무 비슷하잖아!
벵골어에는 "combined letter" 라고 우리나라 ㅄ, ㅀ 처럼 겹쳐 쓰는 글자가 있다. 하지만 한글보다 훨씬 겹쳐 쓰는 글자가 많고, 다양한 모양으로 변하는 것 같다. 이 나라에서 자주 듣는 표현 "쇼못샤 나이(문제 없어)"가 생각난다. 이렇게 써도 되고, 저렇게 써도 된다는 융통성.
또 다른 융통성의 예로, 글자를 읽을 때 한글처럼 무조건 같은 소리가 나는 게 아니라 같은 글자도 조금씩 다르게 소리가 날 때가 있다. 왜 같은 철자인데 다른 발음이 있는 거냐고 선생님께 물어보았다. 그러자 쌤은 영단어 through 와 tough를 칠판에 써서 보여주며, 이것도 ough가 철자는 같지만 소리가 다르지 않냐며, 이처럼 벵골어도 예전부터 써 온 것이 그렇게 달라서 사용하는 거라고 하셨다. 아, 그렇구나......
융통성 있는 만큼, 벵골어 글자에 예술성이 있는 것 같다. 물론 주변 몇몇 국가의 글자와 느낌이 좀 비슷하지만, 벵골어는 모양도 신기하고 예뻐 보인다. 자음은 도형 같기도 하고, 삐쳐 쓰는 모음, 동글동글하게 쓰는 모음 등이 인상적이다. 그래서인지 옷에 디자인으로 글자를 넣는 걸 많이 보았다. 나도 "장난꾸러기 소녀 দুষ্টু মেয়ে"라고 작은 글씨로 잔뜩 쓰여진 상의가 하나 있다.
방글라데시는 동파키스탄 시절, 서파키스탄이 갖은 탄압 끝에 벵골어를 못 쓰게 하자 민족의 언어를 지키기 위해 들고 일어서 독립을 이뤄냈다. 그래서 스스로 지켜낸 민족과 언어에 대한 자부심이 대단하다. "방글라데시"라는 나라 이름도 "벵골어를 쓰는 사람들의 나라"라는 뜻으로도 해석이 된다.
멋지다, 방글라데시. 쫌 맘에 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