뜨거운 여름 한 가운데에서, 단순한 생각의 조각들의 메모
푸른
새벽
차가운
창백한
서늘한
차분한
시린
이런 형용사가 그리운 계절의 한 가운데.
이른 아침 문을 열고 밖에 나가면
지금 같은 계절엔 없는 상쾌함을 느낄 수 있는 가을, 겨울.
서늘한 아침 공기를 생각하면
방글라데시 시골 마을에서 겨울 아침에 일어나 물안개 잔뜩 낀 동네를 돌아다니던 기억이 난다.
말라위호에서 아침 일찍 일어나 혼자 음악 들으면서 해 뜨는 걸 보던 기억도 나고.
살다 보면, 기승전결이 명확하고 하이라이트가 유독 정점을 찍는 에피소드들을 만날 때가 있다.
그럴 때 느끼는 감정은, 열자리 쯤 되는 나눗셈을 나눠떨어질거란 기대 없이 했는데, 나머지가 0이 된 것 같은 느낌.
그렇게 깔끔하게 맞아떨어지는 정갈함들이, 인생이 제멋대로 흘러가지 않을 거란 믿음으로 쌓여간다.
누군가의 블로그에서 "단 한 번 뿐인 2016 여름" 이라는 문구를 보았다.
나도 20대 초반엔 다시 돌아오지 않을 거란 걸 예감했는지 이 비슷한 문구를 많이 썼었는데.
20대 초반 내 인생을 개척해 나가기 위해 느꼈던 부담감이 그런 문구로 표현됐던 것 같다.
이제는 하루하루가, 삶이 패턴화 되었다.
"2016년 여름은 다시 돌아오지 않아. 열정을 불태울테야" 이런 생각이 들지 않는다.
하루하루 반복되는 삶의 패턴에 만족한다.
그 패턴이 오선지처럼 쭈욱 늘어서 있고, 그 위에 내가 음표를 그려나간다.
나는 정해진 시간에 정해진 행위를 하는 것을 통해 안정감을 느낀다.
결혼을 해서 같은 사람과 계절마다 비슷하게 보낸다는 것도 따분하다기보다 행복한 일이다.
가끔이지만, 아직도 몰랐던 새로운 점들을 발견하게 된다.
놀랍게도. 8년이 넘었는데도.
물론 때마다 느끼는 세세한 감정들과 환경은 다르지만.
아마 아이가 생기면 단 한 번뿐인 시간들이라는 게 다시 와닿겠지.
라디오스타에 나온 권혁수님이 스케줄 안 잡힌 방송들을 미리 적어두니 캐스팅이 들어오더라고,
말하는대로 되더라는데. 나도 다이어리에 미리 좀 적어놔야되나 싶다.
이루길 바라는 일들을, 이뤄지길 바라는 날짜에.
글도 쓰다보면 흠 잡을 데 없이 세세하게 보나 전체적으로 보나 알차게 만족스러울 때가 있고,
주절주절 횡설수설 할 때도 있다. 지금 쓰는 이 글처럼.
이런 글은 생각의 조각들을 단순히 메모해 둔 것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