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곳에 온 이유-7년 전과는 다른 내 모습을 확인하고 싶었다.
작년에 우간다에 모금 방송을 촬영하러 갔을 때, 어린 소녀가 먼 길을 걸어 물을 떠 오는 장면을 찍었다.
아이는 실제로 매일 그렇게 물을 떠 온다고 했다.
영상을 찍은 후, 돌아오는 길에는 내가 물통을 들어줬다. 근데 성인 남성이 들어도 무거울 만큼 진짜 무거웠다.
25kg짜리 여행용 가방 두 개를 양 손에 든 느낌.
그 때는 잠시 머무른 것이었기에 3일 정도 촬영하는 동안 온 마음을 쏟아 돕고 싶은 대로 돕고, 또 촬영을 마치고 나올 땐 이것 저것 선물도 안겨주고 기쁜 마음으로 헤어져 나왔다.
하지만, 단기가 아니라 하루하루 살아가는 곳에서라면.
매일매일 그렇게 모든 것을 쏟아가며 모든 이들에게 마음을 나눠주며 살 수 있을까.
매일매일 양손에 25kg 무게의 짐을 대신 지고 살 수 있을까.
쉽지 않은 일이다.
한국에서 난 가진 것 없는 청년일 뿐이지만, 이곳에서는 상대적으로 부유하다.
상대적으로 부유한 내가 이곳에서 어떻게 살아야 할 지에 대한 답을 레미제라블에서 찾았다. 영화 레미제라블을 보고 폭풍 감동하여 영화관에서 세 번 본 후, 5권짜리 원작 세트를 사서 틈틈이 3권 정도까지 읽다 방글라데시에 왔다. 장발장이 코제트랑 수녀원에 숨어 살게 된 이야기까지. 장발장의 삶의 태도는 내게 많은 영감을 주었다. 도움이 필요한 이들을 대할 때 어떤 마음 가짐이어야 할지. 신앙인으로서 불의한 세상을 살면서 어떤 자세로 내가 할 수 있는 일을 해 나가야 하는지.
장발장이 세상에서 가장 불행한 여인 팡틴을 찾아갔을 때가 가장 인상 깊었다.
... 팡틴에게는 그가 빛에 가득 싸여 있는 것 같았다. 그는 일종의 기도에 몰입하고 있었다. 그녀는 감히 그를 중단시키지 못하고 오랫동안 가만히 보고만 있었다. 이윽고 머뭇머뭇 그에게 말했다.
“대체 거기서 뭘 하고 계셔요?”
마들렌 씨는 한 시간 전부터 그 자리에 와 있었다. 팡틴이 잠을 깨기를 기다리고 있었던 것이다. (... 중략...) “저 위에 계시는 순교자에게 기도를 드리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마음 속으로 이렇게 덧붙였다.
‘이 세상에 있는 고통받는 여인을 위하여.’
마들렌 씨는 간밤과 아침 나절을 다 바쳐 알아보았다. 그는 이제 모든 것을 알고 있었다. 그는 팡틴의 비통한 과거를 샅샅이 알고 있었다.
그는 계속해서 말했다.
“당신은 가엾은 어머니로서 무척 고생하셨소. 오! 불평은 하지 마시오. 당신은 이제 주님께 선택된 사람들의 복을 받고 있는 것이오. 인간들은 그렇게 천사를 만드는 것이오. 그것은 조금도 인간들의 잘못이 아니오. 인간들은 그렇게밖에 할 줄 모르오. 당신이 나온 그 지옥은 천국의 첫 번째 형태요. 거기서부터 시작해야 했던 것이오.”
레미제라블(민음사) 중에서-
장발장은 세상에서 가장 불행해 보이는 사람 앞에서 다른 누구도, 신도 원망하지 않고 그렇게 긍정적으로 얘기해 준다. 자신도 한때 가장 불행한 사람이었기에 가능했던 것이리라.
장발장이 갖고 있었던 Compassion, 불쌍히 여기는 마음, 측은지심. 나도 그런 마음으로 살아가고 싶다.
여기선 잔돈이 귀하다. 잔돈이 늘 없다.
릭샤를 타고 다니기에 늘 잔돈이 필요하고, 은행에 가서 3-4만 원어치씩 바꿔 온 잔돈도 2주쯤 쓰면 바닥이 난다. 그래서 거리에서 구걸하는 이들을 만나도 그냥 모르는 척, 외면하곤 했다. 사실 가던 길을 멈춰 서서 잔돈 찾아 꺼내주는 것 자체가 귀찮기도 하고.
책에는 어떻게 나오는지 읽어보지 못했지만, 영화에서 장발장과 코제트가 슬럼가에서 가난한 이들에게 동전을 나눠주는 장면이 나온다. 장발장은 잔돈이 많아서 나눠주며 다닌 것일까. 글쎄. 잔돈을 준비하는 마음 자체가 실천의 자세라는 생각이 들었다. 이 글을 다 쓰고 나면, 기회가 될 때 바로 은행에 들를 예정이다. 그래서 10 타카 짜리를 늘 준비해서 다닐 거다. 길가에 있는 구걸하는 이들에게 줄 거다. 이제부터 그들을 외면하지 않을 거다.
(물론 한 번 줬을 때 너무 많은 구걸인들이 몰려 내가 위험해질 수 있는 상황은 빼고)
여기 쓰면서 나 스스로 다짐하고, 공언하려고 한다.
7년 전 자원 봉사자로 살 땐 낯설고 험한 이 땅에서 내 한 몸 다스리기도 쉽지 않았다. 어렸고 철이 없었지. 그래도 이젠 일곱 살이나 더 먹었으니까. 얼마나 이곳에 살지 아직 정확히는 모르지만, 이번에 돌아갈 땐 그래도 부끄러움이 좀 덜한 생활이었다고 돌아보고 싶다.
어쩌면 나도 이 나라에서 영원히 살진 않을 거라는 생각 때문에 이렇게 마음 먹을 수 있는 건지도. 어쨌든 주어진 환경과 상황 속에 최선을 다해 보기로 했다.
그들의 삶의 무게를 온전히 다 대신 져 줄 수는 없지만, 잔돈 몇 푼어치라도 나눠 보기로.
너무나 어렸고 마음과 시각이 좁았던 7년 전 나와는 다른 모습으로 살아내 보기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