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감정평가사의 변명
"올수리 비용 많이 들었습니다. 감정평가할 때 인테리어는 전혀 반영이 안 되나요?"
낡은 아파트를 매입해 '올수리'한 후 전세로 내놓는 경우가 있다. 이런 경우에 적정한 전세가는 얼마일까. 물론 전세 계약을 할 때, 당사자의 협상과 합의만 있으면 될 뿐 감정평가를 할 이유는 전혀 없다. 감정평가를 받는다고 해서 민사상 계약에 어떤 효력이 있는 것도 아닐뿐더러, 괜히 비용만 들기 때문이다.
하지만 전세 계약에 공공기관이 개입하기 시작하면서 상황이 달라졌다. 주택도시보증공사에서 2013년 출시한 전세보증보험, 정확하게 전세보증금반환보증 때문이다. 공공이 경제행위를 하려면 민간과 달리 행위의 근거와 정당성을 확보해야 한다. 보증을 제공하는 공사가 보증의 적정 한도를 결정하려면 신청자의 전세금이 적정한 수준인지 해당 주택의 적정 가격을 알아야 하는데, 공시가격을 활용하기도 했지만 시세와 차이가 있었고, 공시가격의 인정 범위를 130~150%까지 적용해봐도 지역과 물건에 따른 차이를 반영하지 못했다. 전세보증금반환보증 신청 시 감정평가를 하게 된 배경이다.
적정 전세가에 대한 임대인과 임차인의 입장은 다를 수밖에 없다. 임대인의 입장에서는 아파트를 매입한 금액과 인테리어에 들어간 금액이 원가(cost)가 된다. 그리고 합리적인 경제주체라면, 거래를 할 때 원가 이상의 수익을 기대할 것이다. 하지만, 어디까지나 임대인의 입장이다. 임차인에게 임대인의 원가는 중요한 고려사항이 아니다. 임차인의 입장에서는 아파트의 일반적인 전세 시세와 계약 후에 발생할 수 있는 비용(expense)이 중요하다. 합리적인 경제주체라면, 거래를 할 때 향후 발생할 비용만큼은 깎고 싶을 것이다.
인테리어를 반영할 수 없는 이유
이렇게 거래당사자의 입장이 다르다면 합리적인 절충 지점이 필요하다. 객관적으로 측정하기 어려운 개인적 취향을 배제하면, 주택으로서의 기능과 관리가 남는다. 기능의 작동 여부, 관리의 상태는 어느 정도 객관적인 측정이 가능하다. 누가 측정하더라도 여부와 등급에서 큰 차이가 나기는 어렵다. 따라서, 전세 계약을 할 때도 급배수, 전기, 냉난방 등 주택의 기초적 기능이 정상적으로 작동하고, 바닥, 벽, 천장, 창호, 주방기구, 위생기구 등의 관리상태가 양호해야 시세에 맞는 계약이 가능하다. 만약 그에 미치지 못한다면, 임차인은 계약 전 수리를 요청하거나 계약 후 발생할 비용만큼 전세금을 깎으려 할 것이기 때문이다.
기본적으로 시장의 원리를 따르는 감정평가 역시 동일한 기준을 적용한다. 따라서 '올수리' 비용이란 정상적인 주택을 만들기 위한 일종의 수익적 지출(revenue expenditure)이며, 그에 들어간 비용은 주택의 가치를 증가시킨다고 볼 수 없는 것이다. 참고로 대한민국 세법에서도 벽의 도장, 기존 부속물의 대체는 수익적 지출로 규정하고 있으며, 건물의 개조, 신규 설비의 추가 등만 자본적 지출(capital expenditure)로 인정하고 있다.
여기에 감정평가 목적에 따른 이유도 있다. 담보 감정평가는 담보 대출 시 채권자나 채무자의 요청으로 하는 담보물건에 대한 감정평가이다. 담보 감정평가는 단순히 적정 대출금을 산정할 목적으로 하는 것이 아니라, 채무자가 대출금을 연체했을 경우 채권자가 원금을 얼마나 회수할 수 있는지를 대비하기 위한 목적이 포함되어 있다. 담보 대출이라면 기본적으로 담보물건의 매각을 통해 원금을 회수할 것이기 때문에, 담보 감정평가 역시 대상물건의 매각을 전제하여 이루어진다. 인테리어처럼 특정 거래 당사자에게만 성립할 수 있는 주관적 가치를 배제할 수밖에 없는 이유이다.
인테리어를 반영하는 경우도 있다
인테리어를 반영해 감정평가하는 경우도 있다. 호텔이나 백화점처럼 인테리어가 그저 부동산의 기초적 기능 이상으로 작동하는 경우이거나, 권리금처럼 거래 당사자가 인테리어에 대한 별도의 경제적 가치를 인정하는 경우다. 물론 이 경우에도 인테리어의 미적 효용은 객관적으로 측정할 수 없기 때문에, 측정 가능한 비용의 관점으로 접근하는 것이 최선이다. 인테리어 공사에 들어간 비용을 견적서, 계약서, 세금계산서로 증빙할 수 있어야 하고, 견적의 내용이 재료비, 노무비, 경비까지 확인되어야 한다.
비용의 관점으로 가치를 측정할 때, 해당 물건의 내구성도 중요한 기준이 된다. 구조나 설비와 달리, 인테리어는 건물 이용자들에게 직접 노출되어 있고 접촉 주기도 빈번하다. 물리적인 마모뿐만 아니라 유행의 변화 등 심미적인 쇠퇴에도 취약할 수 있어, 투입된 비용의 효용이 오래 지속되기 어렵고 주기적인 리모델링이 필요할 수 있다. 내구성이 짧을수록 투입된 비용의 효용도 빠르게 소모되며, 이는 감가수정이라는 절차를 통해 투입비용에서 기간에 따라 공제한다.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