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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성범 Mar 05. 2023

감정평가사는 어쩌다 전세사기의 공범이 되었나

어느 감정평가사의 변명

2022년 말은 빌라왕 김대성 사건으로 뜨거웠다. 그는 수도권에 1,139채의 빌라를 소유하고 있다가 그해 10월에 사망했는데, 전세 보증금을 돌려받지 못한 피해 임차인이 속출했다. 전세계약이 만기인 임차인들은 전세 보증금을 돌려받기 위해 경매를 신청하게 될 것인데, 경매 낙찰가가 전세 보증금보다 높아야 돌려받을 수 있을 것이다.


전국에서 깡통전세 비율이 가장 높은 인천광역시의 경우, 다세대주택의 전세가율은 65~70%, 경매 낙찰가율은 80% 미만이다. 매매가가 1억원이라면 전세가는 7,000만원, 낙찰가는 8,000만원이니, 전세 보증금을 회수할 수 있어야 마땅하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매매가의 80%를 넘는 높은 금액으로 전세 계약을 체결했다면, 낙찰가가 전세 보증금에 미치지 못할 수도 있다.


인천광역시 경매 낙찰가율 (출처: 대법원 경매정보)


빌라는 아파트와 달리 시세를 확인하기 어렵다. 시세는 같은 물건을 여러 사람이 반복적으로 거래할 때 형성되는 정보인데, 빌라는 아파트와 달리 물건의 양도 적지만 무엇보다 소량 다품종으로 공급되기 때문이다. 같은 건물 내 세대수가 적으니 거래가 이루어지는 횟수도 적고, 다른 빌라와 비교하려니 위치부터 노후도, 품질이 제각각이라 비교가 어렵다. 이런 점에서 신축 빌라는 시세 정보의 가장 사각지대에 있는 물건이 되는 것이다. 새로 지어 마음에 드는 마당에 기존 빌라들과는 다르다고 하니 판단이 흐려진다. 사기 일당들도 이런 점을 십분 이용했다.


정보 비대칭에 의한 역선택은 부동산 뿐만 아니라 중고차, 보험, 채용시장에서도 일어나는 현상인데, 경제학에서도 이를 해결할 수 있는 방법은 정보를 제공하는 것 외에는 없다고 한다. 하지만 사기 일당도 아닌 국가자격사라는 공인중개사, 감정평가사들마저 거짓 정보를 제공했다. 국가자격의 기본 윤리인 신의와 성실의 의무를 위반했고, 고의 또는 중대한 과실로 임차인에게 재산상의 손해를 입혔으니 그에 따른 형사적, 행정적 처벌을 받아 마땅하다. 하지만 제도에 대한 개선 없이 개인에 대한 처벌에만 그친다면 사후약방문에 불과하다. 그들은 대체, 왜 그랬을까.


전세사기의 구조 (출처: SBS)


문제는 역시 돈이다. 만약 웃돈을 받았다면, 이는 각각 공인중개사법 제33조, 감정평가사법 제25조를 위반한 불법행위로 자격 정지나 취소 사유에 해당하니 별론으로 하자. 웃돈이 아닌 업무 대가에도 제도적 문제가 있기 때문이다. 업무에 대한 대가를 공인중개사법은 중개보수, 감정평가사법은 수수료라 지칭한다. 법적 명칭에는 차이가 있긴 하지만, 사전적으로는 큰 차이가 없다.


문제는 대가를 지불하는 의뢰인이 누구냐인데, 공인중개사의 경우 임대인과 임차인 모두가 보수를 지불했지만, 감정평가사의 경우 임대인이 수수료를 지불했다. 임차인이 전세 보증금에 대한 감정평가를 의뢰한 것이 아니라, 임대인이 전세보증금반환보증을 가입하기 위해 감정평가를 의뢰했다. 시세가 명확하지 않은 물건의 가격은 언제나 범위로 존재하는데, 전세 계약의 이해당사자인 임대인과 임차인의 가격 역시 양 극단에 있을 수 밖에 없기 때문이다. 


법정의 변호사가 원고측에도, 피고측에도 있는 것은 판사가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애석하게도 부동산 가격의 법정에는 판사가 존재하지 않는다. 감정평가사가 특정 의뢰인의 이해관계를 대변하는 변호사가 되어서는 안 되는 이유이다. 현재로서는 어떤 의뢰인도 만족시킬 수 없는 불편부당한 가치결론이 감정평가의 공정성을 지키는 방법이다. 그리고 개인의 불편부당성을 제도적으로 확보할 수 있는 방법이 바로 감정평가사법 제7조에 규정된 감정평가심사인 것이다.


감정평가사법 제7조(감정평가서의 심사)


감정평가심사는 권고사항이 아닌 의무사항이지만, 그 의무는 5명 이상으로 구성된 감정평가법인에 한정된다. 심사는 내가 아닌 다른 감정평가사가 수행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감정평가법인은 5명으로 구성된 소형법인부터 400명이 넘는 대형법인까지 다양하다. 그리고 심사가 상호견제의 원리에 따른 장치라는 점을 감안하면, 적어도 개인이 아닌 제도적 관점에서 대형법인일수록 심사제도의 실효성이 높다고 볼 수 있다.


주택도시보증공사가 이번 사건을 계기로 심사의무가 있는 감정평가법인만으로 업무범위를 제한했지만, 애석하게 감정평가법인도 전세사기의 안전지대가 아니라는 사실이 밝혀지자 해당 법인 3곳을 명단에서 추가적으로 제외하기도 했다. 하지만 가장 확실한 방법은 감정평가사와 의뢰인의 관계를 끓는 것으로, 이미 감정평가사법 제28조의 2항(감정평가 유도ㆍ요구 금지)에 제도가 마련되어 있다. 



보증을 신청하는 거래당사자가 아닌 보증을 제공하는 주택도시보증공사가 직접 감정평가를 의뢰하거나, 거래당사자가 의뢰하되 감정평가법인은 제3자가 선정하게 하는 방법도 있다. 어떤 방법이든 감정평가액을 높이려는 의뢰인은 불편할 것이 분명하고, 감정평가 결과에 대한 민원도 늘어날 것이다. 감정평가라는 것이 원래 그래야 한다. 어떤 의뢰인도 만족시킬 수 없는 불편부당한 가치결론.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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