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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금귤씨 Aug 10. 2023

남해여, 어서 오시다

[D+2] 보물섬 남해의 인사말 '어서 오시다!'

'보물섬 남해'

출처: 남해군청

처음 이 슬로건을 보고 떠오른 건

피터팬과 후크 선장이다.

피터팬과 후크 선장이

격전을 벌였던 곳을 한국의 남해로 상정한다면?

후크 선장이 집착했던 물질적인 '보물'따위는 없겠지만

이 명랑한 섬의 절경을 보다가 싸움의 본의마저 잊고,

또 다른 의미의 '보물'을 서로 발견해

어영부영 머쓱,

화해하지 않을까- 하는 상상을 해보았다.


'보물섬 남해'라는 슬로건에는

어린아이들의 마음과 환상이 있는,

에세이에 나올 법한 감성이 서린 명칭 같지만

사실 남해군 자체에서 밀고 있는

공식적인 지역 슬로건이다.


충주 사과라던가 횡성 한우처럼

어떤 특산품이나 명물을 내세우지 않고,

남해에 오는 사람들에게

각자의 ‘보물섬'을 상상하게끔 하는 재치라니!

그만큼 남해는 이동 수단이 없으면 힘들지만,

걷지 않으면  나만의 '보물'을 찾을 수 없는

이중성의 매력을 가진 곳이다.

더불어, 360도 파노라마의 바다 전경이 펼쳐짐과

동시에 살짝만 뒤를 돌아도 산의 전경이 압도하는

반전미가 있는 곳.


이곳은 실로 '보물섬'이다.




두 번째 여행 때 마주한, 운무가 잔뜩 낀 남해


남해에 내려오기 전에 근 2년간 총 2번 여행을 왔었다.


첫 여행은

남해의 모든 섬들이 생경했던 밝은 날의 남해였고,

두 번째 여행은

내리 비가 와 운무가 잔뜩 낀 남해였다.

비 오는 걸 딱히 좋아하지 않는 나에겐,

비가 내림에도 불구하고도 ―좋은 여행지는

늘 기분좋은 정서로 남아

2-3번 계속해서 찾는 곳이 된다.


남해가 그런 곳이었다.

관광객들이 한 입을 모아 멋지다는

그 보리암의 명승을 비가 와 보지 못하고도

'남해를 또 오라는 부처님의 계신가'

(참고로 난 무신론자다.)

하고 정신 승리를 해도 괜찮았던 곳.


다시 찾아가도, 툴툴거렸던 내 미운 모습을 잊고

'어서 오시다!'하고 반겨줄 것만 같은 곳.

그곳이 남해다.




'어서 오시다'는 남해만의 방언으로

환영 인사의 높임 표현이라고 한다.


'-다'로 끝나는 말들을 떠올려본다.

'감사합니다', '그럽시다'...

소위 '다나까' 말투에서

한 자리 차지하고 있는 '-다'는

어딘지 모르게 딱딱하고 사람 냄새가 안 난다.


남해는 경상도에 속하니까

부산 사람들처럼 말투에서

어떤 강인하다-할 만한 어조들이 녹아있지 않을까.

'-다'로 끝나면 더 정나미 없어 보이고 그러나?


하지만 지역민에게 직접

이 남해만의 독특한 환영 인사를 들은

단 하나의 경험만으로도,

금세 나는 그런 잡념들이

나의 지레짐작이었을 깨달았다.


'어서 오시다!'

식당 어머니는 조용하지만 명랑하게 손님을 맞이했다.

한 달 살기가 걱정된다며 멀리 내려와 준 동생은

나와 정반대의 성향을 가지고 있다.

(일단 휴일에 집에 콕 박혀있지 않고

남해까지 내려온 열성만 봐도 알 수 있다.)

나와 정반대의 성향이라 함은

곧 사람들을 좋아하고 대화하는 것을

'즐긴다'는 뜻이다. (하하하)


어머님의 '어서 오시다'는

나긋하고 잔잔한 남해의 윤슬이었다.

동생이 연신 '맛있다'라고 감탄하며

어머님께 생선의 이것저것을 물어봐도

조금 쑥스러워하면서도 애정을 담아 대답하셨고,

발소리보다 더 조그마한 소리로

음식은 입에 맞냐, 반찬 리필도 할 수 있다 등

바빠도 연신 물어봐주셨다.


아, '-다'로 끝난다고 해서 그 말들이

'다' 네모지고 각진 건 아니구나.

욕쟁이 할머니의 어감이 세다고

우리가 거기에 애정이 없다고 하지 않는 것처럼,

종결 어미보다는

상대방을 향한 마음의 '출발 어미'가

중요하다는 걸 새삼 곱씹어본다.




환영 인사란 무릇 어떤 지점에 거주하거나,

이벤트를 촉진한 당사자가 건네는 인사말이다.

나는 '네 안녕하세요'라고 화답을 할 때마다

나 또한 그 인사말을 건네는 자들과

같은 마음으로 포개지는 것을 느낀다.


서로의 존재에 스치듯 갈지언정

안녕하냐고 묻는 안위는

서로의 마음 문 앞단에서

똑같이 '어서 오시다'를 외치는 것과 같다고 생각한다.


이제 “어서 오시다.”를 들으면

나 또한 마음속으로 화답해본다.


저야말로 살갑게 제 마음에 와주셔서 감사합니다.

제 한켠으로 어서 오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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