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타노 다케시 1.
[그저 영화를 좋아하고 많이 보는 보통 사람의 시각으로 이야기합니다. 주관적이고 개인적입니다.]
지난해 가을, 사람이 붐비는 성수기를 피해 조금 늦은 '여름휴가'를 다녀왔습니다.
어디로 떠날까 마지막까지 고심에 고심을 거듭한 끝에 행선지를 양양으로 정했습니다.
서핑을 하기 위해서였죠.
바다로, 그리고 서핑을 하기 위해 양양으로 향한 여러 이유가 있었지만 무엇보다 가장 큰 이유는 기타노 다케시의 영화 '그 여름 가장 조용한 바다'였습니다.
영화를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기타노 다케시 영화의 묘한 매력에 대해서는 굳이 설명하지 않아도 알고 있을 겁니다.
영화를 잘 모르지만 그의 영화를 좋아합니다.
화려하거나 멋스럽진 않지만 영화가 끝나고 난 뒤에 쉽게 지워지지 않는 잔향이 깊게 남아있죠.
'그 여름 가장 조용한 바다' 역시 그랬습니다. 바다와 소년, 소녀 그리고 그들 주변의 사람들. 특별하지 않은 사람들의 이야기지만 등장인물 누구 하나 쉽게 잊히지 않습니다.
영화 제목에서 나와있듯 주인공 '시게루'에게 바다는 가장 조용할 수밖에 없습니다.'시게루'는 귀가 들리지 않죠.
이 조용한 바다는 시게루에게 '서핑'이라는 즐거움을 선물합니다. 시게루는 금세 서핑의 매력에 빠져들죠.
시게루에게는 '다카코'라는 여자 친구가 있습니다. 여자 친구 역시 귀가 들리지 않죠. 시게루의 여자 친구는 그저 시게루가 좋습니다. 둘은 서로에 대해 말 한마디 없지만 항상 함께 하죠.
시게루가 혼자 바다에 나가 서핑을 하는 동안에도 '다카코'는 그저 바다에 있는 그를 바라보기만 합니다. 이 둘에게는 많은 말이 필요하지 않습니다. 항상 함께 바다로 향하고 함께 집으로 돌아옵니다. 서핑을 하며 즐거워하는 시게루, 그리고 즐거워하는 시게루를 보는 것이 역시 즐거운 다카고, 특별하지 않은 둘의 사랑입니다. (물론 이 둘의 사랑 이야기가 영화의 전부는 아닙니다.)
영화는 이 둘의 관계처럼 잔잔하게 흘러갑니다.(어쩌면 지루하다고 생각될 정도로) 바다와 서핑, 소년과 소녀 그리고 그 주변 사람들의 이야기를 담담하게, 잔잔하게 보여줍니다. 그냥 예쁘게 보이기만 영화가, 그대로 끝나버려도 충분해 보이는 영화는, 그 마지막에 쉽게 지워지지 않는 향기를 남기죠. 이 영화의 감독이 기타노 다케시라는 것이 그 결말에 대한 어느 정도 답이 될지 모르겠습니다. (적어도 저에게 그는 천재이면서 '변태'인 것 같습니다) 언제나처럼 무덤덤하게 '떠나보냄', '떠남', '죽음'을 이야기합니다.
영화에서 바다는 만남인 동시에 헤어짐, 시작인 동시에 끝, 즐거움인 동시에 슬픔입니다.
기타노 다케시가 영화를 통해 전하고 싶었던 이야기가 소통에 관한 것인지, 사랑에 관한 것인지, 삶과 죽음에 대한 것인지 잘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한 가지 분명한 것은 슬프도록 아름다운 영화라는 것입니다.
엔딩 크레디트가 올라가기 직전의 장면들은 언제나처럼 그의 영화에 오랫동안 머물 수밖에 만들어버립니다. 그리고 히사이시 조의 음악은 영화의 맛을 더하죠.
영화는 서핑을 소재로 하지만 서핑에 대한 영화는 아닙니다.
하지만 영화가 끝난 뒤 찾아오는 아련함과 슬픔, 그 복잡 미묘한 감정은 바다에 가야 할, 서핑을 다녀와야 할 좋은 이유를 만들어 줍니다.
이번 겨울 휴가도 조금은 늦게 떠날 생각입니다. 그리고 조용한 바다에서 서핑을 하며 보낼 생각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