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타노 다케시 2.
기타노 다케시를 좋아합니다. 이야기를 담담하게 풀어내는 그의 스타일은 중독성이 있습니다.
많이 알려져 있다시피 영화'키즈 리턴'은 기타노 다케시가 심각한 오토바이 사고를 당한 후 만들어졌습니다. 아무도 그가 재기하지 못할 것이라고 얘기했고 그만큼 절망적인 상황이었습니다.
그래서인지 '키즈 리턴'에서는 그의 영화에서 흔히 나오는 '죽음'과 '폭력'에서 어느 정도 자유로워 보입니다.
영화는 친했던 두 친구가 우연히 길에서 다시 만나게 되면서 시작됩니다.
마사루와 신지는 흔히 말하는 문제아 들입니다. 학교 수업은 빠지기 일수고 친구들 돈을 뺏기도 하죠. 뺏은 돈으로 성인 영화관에 들어가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그런 문제아입니다. 꿈도 없이 방황하며 하루하루를 보내죠.
항상 같이 다니던 둘은 우연히 복싱을 접하게 됩니다. 마사루는 신지보다 먼저 복싱을 접하지만 곧 자신의 재능이 신지에 미치지 못한다는 것을 깨닫게 됩니다. 두 청춘은 이제 다른 길을 걸어가게 됩니다. 마사루는 복싱을 포기하고 야쿠자의 길을 걷게 되고, 신지는 계속해서 복싱을 하게 되죠. 서로 다른 길을 걷게 된 둘은 만남이 뜸해질 수밖에 없습니다.
두 청춘 전혀 다른 길이지만 모두 각자 선택한 길에서 나름의 성과를 만들어갑니다. 미성숙한 청춘들에게 현실은 호의적인 것처럼 다가옵니다. 여기까지만 본다면 기타노 답지 않은 영화 같습니다. '청춘들이여, 방황하더라도 괜찮아'라는 것처럼 보이죠. 하지만 이 영화는 기타노 다케시의 영화입니다.
승승장구하던 신지는 다니던 체육관의 '별 볼 일 없는'선배와 가까이 지내며 내리막을 걷게 됩니다. 마사루 역시 빠른 성공을 맛본 나머지 오만하 태도로 많은 적들을 만들게 됩니다. 그리고 자신을 총애하던 두목의 죽음과 함께 조직에서도 버림받게 되죠.
그렇게 아무것도 남지 않게 된 둘은 우연히 길에서 다시 만나게 된 것입니다. 둘은 과거를 떠올리며 자신들이 다니던 학교를 찾아갑니다. 그리고 실패하고 좌절을 경험하고 포기하고 싶어 하는 청춘들에게 한마디를 던지죠.(적어도 저는 이 마지막 대사만큼은 희망적인 메시지라고 생각하고 싶습니다.)
신지 : 우리는 이제 완전히 끝난 걸까?
마사루 : 바보! 아직 우리는 시작도 안 했어!
영화는 지독히 현실적입니다. 희망에만 가득 차 있지 않습니다. 청춘들에게 미래는 찬란한 빛만으로 넘쳐나지 않다는 것을 담담하게 보여줍니다.
신지 주변 과거의 영광에 사로잡혀 별 볼일 없는 오늘을 사는 선배를 통해서, 반칙을 가르치는 체육관 코치를 통해서, 술과 담배를 강요하는 선배를 통해서 정직함만으로 살아가기 힘들다는 것이 현실이라는 것을 보여줍니다. 마사루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는 조직을 위해 충성하는 야쿠자였지만 결국은 주변에 의해 이용을 당하고 버림을 받습니다. 현실은 자신만을 위해 돌아가는 것이 아님을 보여주죠.
그렇습니다. 현실은 언제나 찬란히 빛나는 미래가 아닙니다.
그래도 이 영화가 우리에게 위로, 희망을 주는 이유는 마사루의 마지막 대사 덕분입니다.
실패하고 좌절했던 우리에게 마사루는 '아직 시작도 안 했다'라고 말합니다. 이것은 청춘에만 국한된 것은 아닙니다. 영화 안에서는 다시 만난 신지와 마사루가 얼마 만에 다시 만난 것인지 20대인지, 30대인지 혹은 40대인지 말하고 있지 않습니다. 이 말은 어쩌면 기타노 다케시가 영화를 만들 당시 듣고 싶었던 말이었을지도 모릅니다.
음주상태로 오토바이를 몰다 치명적인 교통사고를 당한 기타노 다케시는 이 영화를 통해 재기합니다. 모두가 끝이 났다고 했습니다. 자신 조차 미래가 불투명하다고 생각했죠. 아직 시작도 못했다는 말은 자신이 듣고 싶었던 이야기였을지 모릅니다. 기타노는 이 영화를 통해 다시 한번 재기할 수 있었죠.
이 영화는 누군가가 썼던 '아프니까 청춘이다'류의 어쭙잖은 위로와는 다릅니다.
이 영화는 청춘들에게 진솔한 목소리로 현실의 잔혹함을 이야기합니다. 그리고 이 영화는 잔혹한 현실을 마주하게 될 청춘들이 맞을 수 있는 예방주사일지도 모릅니다.
영화의 대부분은 방황하고, 좌절하고, 부서지고, 실패하는 두 친구의 모습을 보여줍니다. 하지만 마지막 장면에서는 희망을 이야기하죠. 그렇습니다. 앞으로 그들이, 그리고 우리가 마주할 인생이 늘 찬란하기만 할 수 없습니다. 하지만 영화의 마지막처럼 어느 한순간에 찾아오는 희망찬 순간 덕분에 우리는 다시 일어나서 나아갈 수 있는 것이지 않을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