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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Vic Jun 07. 2020

고대의 신상


@2020, by Victorin

달빛만이 비치고, 파도도 치지 않는 고요한 외딴 섬. 그곳에 버려져 삭아가는 고대의 신상이 서 있습니다.

바닷바람이 훑고가면 잔디밭은 쏴아아- 쏴아하- 하며 물결칩니다. 그 어떤 말도 아닙니다. 그 누구도 없고 그 누구도 기억하지 못하기에 이곳에는 언어가 없습니다. 이 고대의 신은 듣지 못할 것입니다. 아니라면 그런 것들은 중요한 게 아닌 걸지도 모르죠. 그 무엇도 깃들지 않았습니다. 회한도, 기쁨도, 기대도, 분노도 말이에요. 찬란했던 먼 옛날을 기리는 것 같지도 않습니다. 그저 이렇게, 영원한 수수께끼처럼 서서 무한한 대양과 지구의 공전을 마주하고 있을 뿐이에요. 이렇게 평온하게, 그 어떤 방랑자의 눈에도, 그 어떤 배의 항로에도 발견되지 않은 채, 이 모든 것이 끝날 때까지 그대로 서 있을 지도 모릅니다. 오로지 상상이라는 눈을 통해서만 볼 수 있는 미지의 땅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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