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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Vic Sep 01. 2023

더 이상 세상에 네가 없다는 건 어떤 의미일까

※ 이 글은 비슷한 이유로 가까운 사람을 떠나보낸 사람들을 위해 쓰였습니다. 고인에 대한 구체적인 사연을 다루지 않습니다. 꼭 시간 순으로 글을 풀어내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이건 이야기가 아니라 삶이기 때문입니다.



벌써 *개월이 다 되어가. 이 세상에 네가 없게 된지 말이야. 지난 *개월의 시간은..., 말하자면 무척이나 혼란스러웠어. 너라는 사람에 대해, 우리가 맺었던 관계에 대해 해보지 않은 생각이 없을 정도야.


처음에는 믿을 수가 없었지. 잠시 외국에 나가있었거든. 회사일 때문에 번아웃이 와서 그랬었어. 매일같이 연락했던 네게 알리지도 않고 떠나버린 건, 외국에서 찍은 셀카로 널 크게 놀라게 할 생각에 즐거웠기 때문이었지. 더불어 솔직히 고백하건대, 네게 약간 서운했기 때문이었어. 왜냐면 그때 당시에 내가 좀 많이 힘들어 했었잖아. 내 고질병인데, 힘들면 매사에 냉소적으로 생각하게 되지. 널 의심했던 것 같아. 아, 너는 내가 힘들건 말건 상관을 안하는구나? 난 친구가 이렇게 큰 일을 겪으면 불러내서 밥이라도 한번 사주는데 말이야! 이런, 당연하고 솔직하고도 쪼잔한 생각을 하고 있었어. 하지만 그런 작은 서운함 따위는 그저 넘겨버릴 수 있다는 걸 알았지. 네가 내 웃긴 셀카에 깔깔 웃는 순간 말이야.


일본 어느 시골 동네에서 유람선을 기다리고 있을 때, 연락을 받았어. 처음에는 누군가가 장난치는 건가 싶었지. 만약 장난이라면 이 끔찍한 장난을 친 댓가로 싸대기를 맞아야만 했을 거야. 하지만 보낸 사람은 장난과는 전혀 거리가 먼 사람이었고 누군가 이런 장난을 칠리도 만무했지. 솔직하게 말할게. 그 문자를 받으면서 나는 빌었어. <제발, 제발, '그 이유'로 떠난 게 아니게 해주세요.> 차라리 사고였으면 좋겠다고 생각했을 정도였지. 물론 그때 가졌던 시각이 지금은 약간 바뀌었지만 말이야, 그때는 그랬어.


한국으로 돌아오는 공항철도 안에서, 비행기에서, 회사 화장실에서, 어느 성당 건물에서 한없이 울던 시간들이 있었지. 네 유서에 적힌 부탁을 들어주고 와서 너무도, 너무도 지친 상태로 벤치에 그저 한없이 앉아만 있던 시간들고 있었고. 뼈저리게 외롭다는 걸, 이 세상 속에 나 혼자라는 걸 느끼며 슬퍼하고 화를 내던 시간들도, 물론, 있었어.


그 이후로도 훨씬 많은 시간이 지났어. 이 혼란을, 이 슬픔 속을 어떻게 통과해 올 수 있었던 걸까. 아니, 어떻게 통과해가고 있는 걸까. 이 많은 시간 동안 너와 나의 관계는 정말 많이 바뀌었어. 널 그리워 했다가도, 원망하기도 했고, 세상과 주변 사람들에게 화가 나기도 했으며, 너와 나의 만남과 교류 그 의미 자체를 부정해버리고 싶었던 적도 있었지.


정말 처음에는 네가 더 이상 이 세상에 없다는 것의 의미를 온전히 느끼지 못한 것 같아. 현실과는 붕 떨어져 있었고, 네게 말을 걸고 있다고 상상하곤 했지. 너는 떠났지만 네가 나에게 남기고 간 사랑과, 보여주었던 진심을 영원히 간직하겠노라고 사뭇 낭만적으로 다짐하기도 했어. 또, 너와 같이 절친했던, 남겨진 친구 한 두어명과 서로를 지탱하며 이 비극을 헤쳐나갈 거라고, 왜냐면, 그것이 네가 우리에게 바라는 바일 것이니까, 라고 오만하게 단언하기도 했었지. 그렇게 하면 네가 진짜 있게 된다는 듯 말이야.


하지만 시간이 지남에 따라, 네가 이 세상에 없다는 사실, 그리고 더 이상 내 삶에 없다는 사실을 점점 더 체감하게 되었지. 게다가 남겨진 사람들, 우리는 우리가 사실은 너무도 뼈저리게 다른 인간 존재라는 사실만을 발견하게 되었지. 누군가는 같이 있고 싶어했고, 누군가는 같이 있는것, 언급하는 것조차 견디기 어려워했어. 다르다는 것 자체로도 상처가 될 수 있다는 사실을 배워가게 되었지. 그럼에도 불구하고 포기하지 않고 소통해야만 했어. 왜냐면 이 관계들은 모두 네가 남기고 간 것이기 때문이기에 소중했거든. 네가 없음으로 인해 깨져버린다면? 그것만은 용납할 수 없었어. 왜냐면 그것은 너를 잊어버리겠다는 선언과도 같았거든.


이것이 삶이지. 연결되는 것은 너무도 어렵고, 모두가 각자만의 독방에서 홀로 흐느끼고, 와중에 세상은 너무도 정상적으로 돌아가고, 한때 너와 가까웠던 친구들도 너를 잊어가고, 모두가 각자만의 삶의 궤도 속으로 너무도 무사하게 복귀 하고... 정처없이 흐르는 시간 속에서, 끝끝내 너에게서 고개를 돌리지 않고, 끝까지 너를 그리워 한 사람은 바로 나였다고 자신할 수 있어. 너도 익히 알다시피 나란 인간이 원래 좀 그래.


하지만 그럼에 따라 나 역시 무척이나 지쳐갔지. 왜 굳이 살아야 하는가. 한때의 고질병이었던 의문이 다시 고개를 들었지. 반면,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 에 대한 대답은 점점 더 혼란스러워졌어. 나는 무얼 하는 인간이었나. 이 차갑고 쓸쓸한 우주에서 어떻게 그리고 왜 존재해야만 하는가. 어떻게, 도대체 누구에게 다시금 연결되어야 하는가. 왜 인간은 그토록 연결됨을 갈망하는가. 이 모든 의문들을 감당하기 어려워졌을 때, 다시 한번 도피하기도 했었지. 몽골로.


그리고 지금, 오랜 시간 묵혀둔 이 경험들을 적어내려가고 있어. 지금? 지금은, 뭐랄까, 언덕 위에서 지난 시간들을 조망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어. 


일본에서 서울로 돌아오는 길. 뭐라도 읽지 않으면 미칠 것 같아서 구글에 친구가 세상을 떠났을 때, 자살 유족, 유가족같은 키워드를 검색하던 과거의 내 모습을 떠올려 봐. 어쩌면 정처없는 인터넷 세상 위에 여느 휴짓조각들처럼 떠돌다가도, 필요한 누군가의 중력에 이끌려 닿게 될지도 모르니. 그러나 이 글들에는 그 어떤 깨달음도, 자기계발서적인 교훈도, 소비될 만큼 흥미로운 스토리도 전혀 없을 거야. 하지만 확실한 건, 솔직함. 그것만은 가득할 거라는 거. 그 뿐이야. 



친구를 자살로 잃은 후, 어떤 일들을 겪었는지 솔직하게 써 내려간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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