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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고진규 Dec 23. 2018

주단을 깔며

아름답고 슬픈 기다림의 모습


이 글 또한 예전에 쓴 글이다…

조금이라도 더 정성껏 쓴 글을 먼저 공개로 바꾸는 것 같다…


사람을 잊는 방법 중 하나는 새 사람을 만나는 것이다. 사랑이 다른 사랑으로 잊혀진다는 가수 하림분의 노래처럼, 우리는 새 사람을 만나며 옛사람을 잊어보고 상처를 치유해보기도 한다.


얼마 전(?) 더팬TV라는 프로에서 가수 유라 분이 록 밴드 산울림의 노래를 새로 불렀다. 이 노래엔 '주단을 깔고 그대를 기다린다'라는 가사가 있다.


살짝 홍보하는 유라의 <내 마음에 주단을 깔고>


주단을 까는 건 환대를 뜻한다고 한다. 그런데 이상하다. 귀한 손님을 맞이할 때 바닥에 까는 붉은 주단. 그것을 헤어진 마당에, 그것도 다름 아닌 마음에 깐다는 건 무슨 말일까.


돌아오지 않을 상대를 기다리는 것만 해도 슬픈 일인데, 맞이하고 환영할 준비를 한다는 게 쉽게 이해되지는 않았다. 그런데 가만히 생각해 보니 그것은 기다리는 사람이 취할 수 있는 가장 아름다운 모습이 아닐까 싶었다.


애처롭고 초라하고 너덜한 내 마음을 아름다운 주단으로 가린다는 것. 그대가 온다면 기꺼이 밟고 건너올 수 있는 주단을 깔겠다는 것. 아름다움과 애처로움이 함께 느껴져서 이 노래는 한참을 마음속에서 맴돌았다(고 썼었다…).



마음에 주단을 까는 건 헤어짐에 있어서 최선의, 그리고 최후의 노력이 아닐까 싶다. 상처 난 마음을 덮고 상대가 돌아올지 모를 길을 꾸며두는 것. 그건 아름다운 미련이리라.


어쩌면 이 주단은 누구보다 자신을 위한 것이라는 생각도 든다. 애절함은 나를 바꾸는 힘이 될 수 있고, 그리고 나서 비로소 새 사람이든 옛사람이든 만날 수 있을 테니까… 상처는 조금씩 아물어 갈 것이다…


그래서 주단을 까나보다. 아름답고, 애처롭게.


사실은 돌아오지 않는 걸 누구보다 잘 알고 있지만, 아직 다른 사람에게 갈 수도 없기 때문에, 마음에 주단을 깔 수밖에 없는 것일지도 모르겠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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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럼에도 우리는 사랑을

<사랑초년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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