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자샐러드도 하면 좋겠더라고요."
메뉴회의가 끝난 줄 알았는데, 나만의 착각이었다. 지난 토요일 무려 3시간 가까이 모여 회의한 결과 마침내 메뉴를 확정했다. 김밥과 어묵꼬치. 3시간의 회의결과 치고는 너무도 초라한 단출한 메뉴가 아닌듯싶겠지만, 나름의 이유로 최적의 메뉴라고 의견이 모였다. 메뉴가 확정됐으니 이제 판매에 앞서 시식만 하고, 어떤 어묵으로 판매할 것인지? 결정하면 끝!이라고 생각했었는데... 계속해서 올라오는 신메뉴에 대한 제안들. 추가 의견들. 아. 이곳은 이런 곳이구나! 확정이란 게 없구나. 마지막 날짜에 임박해야지만 비로소 무엇이 결정되는구나. 이런 깨달음의 순간이었다.
T형인 나는 한번 결정된 사항에 크나큰 하자가 발견되지 않는 이상 후퇴나 수정은 없다. 재토론도 물론 없다. 일정은 정해져 있고, 시간은 기다려주지 않으므로. 사회생활을 하며 기계적으로 읽힌 습관은 한 스푼 추가되었다. 한번 결정된 사항에 대해 다른 의견들이 등장하면 회의록부터 꺼내 드는 철벽주의자에 가깝다. 이곳은 이런 나의 방식이 단언컨대 고양이 발톱만큼도 통하지 않는다. 이곳만의 문화와 방식이 있고, 나는 이 방식에 적응이 필요했다. 계속되는 추가 메뉴 제안에 표류하는 듯 답답함과 피로감을 느낀 이는 나뿐인 것 같았다! 까뮈의 이방인이 생각나는 이유는 왜 인지... 오히려 사람들은 이 상황을 약간 즐기는 듯했다. 계속해서 이건 어떻고, 저건 어떻고. 이러쿵저러쿵 이야기하는 게 마냥 즐거워 보였다.
이 상황이 이해가 안 되는 것이 아니다. 단지 공감을 못할 뿐이다. 해서 피로감을 뒤로하고 사람들을 그 냥 지켜보기 시작했다. 정말로 즐거워 보였다. 말에서 얼굴에서 드러나는 표정들이. 내가 볼 때는 재탕, 삼탕 하는 똑같은 이야기들을 각도만 살짝살짝 바꿔가며, 정말로 재밌게 주거니 받거니 하고 있었다. 마치 종달새가 화창한 봄날 아침, 부드러운 햇살을 지저귀듯 웃고 떠들며 수다 삼매경에 빠져 있었다. 고로 ‘내가 문제다'라는 결론을 내렸다. 한 공간에서 모두가 즐겁게 이야기를 나누는데, 혼자 피로감이 높으면 그 사람이 유난히 공감과 융합이 안 되는 것이므로.
학교의 기념사업을 하기 위해 자금이 부족하니, 수익사업의 일환으로 먹거리판매 부스를 준비하는 재미난펀딩팀의 모습이다. 지난번엔 재미난푸줏간으로 돼지 목살을 팔아 약간의 기념사업 자금을 보탰다. 모두가 신나 했다. 계산해 보니 마진율이 약 10%대 수준. 이건 수익사업이라기 보단 자선사업에 가깝지 않은가? 인건비는 그렇다 치더라도 경기도 까지 왕복 기름값을 고려하면...(음, 기름값은 당근 아무도 청구하지 않는다. 고유가 시대, 기름 냄새 한 방울 나지 않는 나라에서. 암튼 이곳은 이렇다) 재미난푸줏간을 보며 재미난편딩팀은 수익사업을 가장한 자선사업의 어느 경계에서 뭔가 꿈틀꿈틀 일거리를 계속 꾸미는 ‘재미난공작단(?)’ 정도로 인식하는 것이 내 안에서 인지부조화가 덜할 것 같다고 나름 결론을 내렸다.
그리고 이번 먹거리 판매부스를 통해서는 ‘재미난사건공작단’ 정도가 더 어울리고, 그 정체성을 선명히 드러내는 것이라 정의하게 되었다. 이쯤 되니 앞으로가 어느 정도 예상이 된다. 올해 20주년 기념이라 행사가 많다고 했으나, 그건 밑밥을 까는 명분에 불과하는 것을. 내년에도 또 그럴싸한 타이틀과 명분을 가지고 꼼지락꼼지락 무언가를 공작하고 사건을 도모할 것이다. 쉴 틈 없는 사람들이기 때문이다. 펀딩팀 카톡방은 판매 전날까지 알림이 계속해서 울렸다. 김밥 잔금을 결제하러 가는 저녁. 카톡방의 김밥 추가 주문 메세지를 못 본 척, 안 본 척 눈을 질끈 감고 김밥 집으로 향했다. 어서 빨리 내일이 지나가길 하는 생각으로.
#2부에서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