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찍 일어났다. 온종일 정신없을 게 뻔했다. 모닝커피와 함께 여유 있는 아침을 시작하려 했다. 집 앞 편의점에 갔는데, 폐업이다. ‘어? 아파트 상가 편의점이 하루아침에 폐업을 했다고?‘ 황당해할 시간이 없다. 조금 더 멀리 떨어진 편의점으로 갔다. 결제를 하고 커피 추출 버튼을 눌렀는데, 기계가 먹통이다. 당황한 직원은 이것저것을 눌러보더니 고장이란다(실화다). 더 멀리 있는 편의점으로 가려는 데, 김밥집에서 벌써 전화가 왔다. 출발했으니 5분 안에 도착한다고. 김밥 포장 양이 많으니 도착하면 오토바이에서 같이 받아달라는 부탁이었다. 여유 있는 아침은커녕, 하루 일진이 걱정되기 시작했다.
대안교육연대한마당. 전국의 대안학교 학생들과 교사, 부모들이 모여 다양한 행사와 축제를 여는 자리. 예상보다 30분 정도 일찍 도착했다. 행사장의 판매부스를 확인하고, 이런저런 물건들을 내려주고, 솥단지를 챙겨 건물 4층 주방으로 성큼성큼 향했다. 오늘 나의 최대 미션. ‘어묵 꼬치 육수를 10시 이전부터 끓이기 시작한다!’ 주방의 형광등 스위치를 찾는데 애를 먹었지만, 인덕션 사용법에서 좀 더 애를 먹었지만, 10시 이전에 육수 끓이기 돌입에 성공했다! ‘아침에 모닝커피는 액땜이었나?’ 하며 안심했다. 안심은 방심을 유발한다. 잠시 잠깐 자리를 비운 사이 어묵 박스가 올라왔고, 어묵 1,000개 꽂기가 이미 시작되고 있었다. 팔리는 상황을 봐가며 그때마다 꽂아가며 하자고 했던 걸로 기억하는데, 나만의 착각이었나 싶다. 재미난펀딩팀 멤버들은 어묵 꼬치 공장 직원들 마냥 2열 횡대로 서서 ‘착착착~ 착착착~’ 어묵을 꼬치에 꽂고 있었다.
충분히 가능할 법한 상황이다. 그간 멤버들을 지켜봤으니 이 정도에는 당황하지 않는다. 10시를 조금 넘길 무렵, 어묵 꼬치를 꽂으며 한 멤버가 기습 제안을 했다. "어묵 꼬치 지금부터 팔면 어때요?" 행사 주최 측의 당부사항도 있고 해서, 이미 회의 때 음식은 12시부터 팔기로 했었다. 상황을 보고 조금 일찍 팔든 하기로 마무리. 5분쯤 시간이 지났을까? 다른 멤버가 똑같은 이야기를 처음 하듯 아무렇지도 않게 꺼냈다. 대세가 이렇다면 양보하는 것이 인지상정. 시간을 조금 앞당겨보자고 마무리. 다시 5분쯤 시간이 지났을 때 "우리 10시 반부터 팔면 어때요?" 애초에 계획이란 건 무의미한 것인가? 판매 부스에 메뉴를 붙였는데, 누군가가 언제부터 판매하냐고 물어봤다는 것이다. ‘12시부터 판다고 하면 안 되는 것인가? 그 물음에 10시 반으로 응수를 해야만 하는 것인가?’ 하는 의문이 들었다. 결국 어묵 꼬치는 11시부터 판매를 시작했다.
김밥 200줄은 1층 부스에서 바로 팔았고, 어묵 꼬치는 4층에서 끓인 후 1층으로 냄비채 옮겨 판매했다. 막상 판매를 시작하니 순조로웠다. 큰 솥은 육수를 계속 끓이고, 어묵 꼬치를 촘촘히 꽂은 작은 냄비 두 개에는 큰 솥의 육수를 덜어내 채운다. 큰 솥 육수가 줄어든 만큼 물을 채우고 쯔유로 간을 맞춘다. 시스템이 효율적으로 체계를 잡고 보니 만족스러웠다. 어묵꼬치 냄비가 몇 번 팔리고, 간을 맞추다 보니 혀가 짰다. 어묵 냄비가 한 번 팔릴 때마다 간을 세 번 본다. 큰 솥과 작은 냄비 두 개. 500개 어묵 꼬치가 절반 가량 팔렸을 때 혀가 조려지는 느낌을 받았다. ‘장조림이 되진 않겠지?’ 연신 어묵 꼬치 냄비를 날랐던 한 멤버는 ‘오뎅지옥’이라 했다.
4층 주방 창문에선 1층 판매부스가 훤히 보였다. 신나게 호객(?) 행위를 하고 있었다. 행사장 음악에 맞춰 춤을 추며 어묵 꼬치를 팔고 있었다. [어묵꼬치와 아이들! 1집 발매 기념 어묵꼬치 판매 쇼케이스 이벤트]를 연상케 했다. 이런 거 전문인 거 같았다. ‘존경의 마음’ 이란건 이럴 때 우러나오는가 싶다. 짭짤한 혀를 생각하며, 장조림을 떠올렸던 나 자신이 쫌 부끄러웠다. 피크 시간인 점심을 지나고 약간의 소강상태에 접어들자 1층으로 내려가 행사장을 한 바퀴 돌아봤다.
다른 대안학교 학생들은 어떤 모습인지? 건강하게 잘 자라고 있는지? 눈여겨보았다. 흥겨운 공연과 멋진 전시들을 뽐내고 있는 생기 발랄한 학생들을 만나볼 수 있었고, 마음 한쪽에선 안심과 뿌듯함이 동시에 올라왔다. 당당하고 개성 넘치는 에너지를 뿜뿜 뿜어내는 학생들을 보며, 우리 아이의 앞날도 잠깐 그려 보았다. 학부모들의 모습도 다른 듯 같은 듯 비슷한 공감대의 감정을 얼굴 표정에서 읽을 수 있었다. 삼각산재미난학교의 중등 학생도 공식 프로그램 명단에 올라 한 시간 가량 탐조 프로젝트를 발표했다. 우리 학교 학생이라는 자부심이 한 스푼 추가되었다!
하루 종일 부산했던 행사가 끝났다. 김밥은 200줄 완판. 어묵 꼬치는 500개 중 120개가 남았다. 하지만 걱정 없다. 곧 도서관잔치라는 행사가 열리므로. 그 행사에도 어묵 꼬치 메뉴는 등장한다. 나는 또 육수를 끓일 것이다(치즈감자전과 함께). 내년에 또 재미난사건공작단이 뭔가 사건을 벌이면, 나도 덩달아 그 틈바구니에 끼여 뭔가를 함께 사부작사부작 도모하고 있을 것 같은 예감이 든다. ‘그때쯤이면 나도 어느 정도 적응이 되어 있겠지?’ 논리로는 설명할 수 없는 피곤하고도 귀여운 사람들(?!)처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