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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unny Im Dec 14. 2020

가장자리에 머무는 삶

주류와 비주류 그 중간 어디쯤

20대에는 참 숨 가쁘게 살았다. 캘린더에 적어도 3개월치 갈곳, 먹을 것, 만날 사람들 일정이 꽉 잡혀있었다. 하고 싶은 게 많아서 하루가 50시간이면 소원이 없겠다~라는 말을 입에 달고 살았다. 일도 사랑도 취미생활도 참 치열하게 ‘해냈다’. 10년 만에 돌아온 한국은 궁금한 것 투성이었고 더 많이 갖고 싶었고 채우고 싶었다. To do list를 하나하나 지워나갈 때마다 난 그런 자신이 뿌듯했더랬지.


일도 마찬가지였다. 주로 아시아 VP가 매니저였는데 일주일에 3-4개국을 돌아다니며 사는 그들을 동경했다.

. 나도 꼭 저렇게 올라가서 멋지게 살아야지. 한국 총괄에서 담당하는 나라를 늘리고, 내가 사랑하는 동남아시아에 출장 다니다가 마지막엔 미국 본사로 가는 거야! 와 씨~ 상상만 해도 멋있다. 


운이 좋았는지 남들보다 빠른 승진에 20대 중반부터 그렇게 바라던 삶을 살게 되었다. 30대 초반에 다니던 회사에서 아시아 사장님과 다른 VP들과 가깝게 일하게 되었다. 아시아 사장님은 종일 미팅 후 우리와 함께 술을 먹고 호텔로 돌아와 새벽까지 본사와 컨콜을 했다. 다음날 조식 같이 할 수 있긴 한 건가? 걱정했는데 웬걸… 기우였다. 이미 짐에서 달리기 한판 하고 산뜻한 옷차림으로 걸어 들어오는 게 아닌가. 와~ 난 곧 죽어도 저렇겐 못하겠다. 

다른 VP는 매번 출장을 다니느라 아이들의 중요한 행사에 함께하지 못한 것을 안타까워했다. 그리고 그 아이들이 이젠 20대가 되어 함께 할 기회가 더 줄었다는 말과 함께. 


처음이었다. 항상 동경하던 이들이 짠하게 느껴진 것이. 그리고 나는 과연 저런 무게를 견딜 수 있는 그릇인 걸까? 남들 눈에 일 욕심 많고 멋진 커리어우먼이라는 이미지가 강한 나였지만 정말 저게 내가 원하는 모습일까? 처음으로 의구심과 함께 ‘커리어 패스’가 아닌 내가 살고 싶은 ‘삶’의 방향에 대해 생각하게 되는 계기가 되었다.




며칠 전 오랜만에 전 동료였던 선배님과 통화를 하는데 정치적인 이유로 기껏 키워놓은 팀원들을 신규팀에 다 빼앗기듯 보내고 낙동강 오리알 신세가 되었다는 소식을 들었다. '써니, 일 잘하고 성과 잘 낸다고 다 해결되는 게 아니더라고요. 신경 써야 하는 부수적인 것들이 너무 많네요.'라고 덤덤히 말씀하시는 그분 목소리에는 이미 체념이 느껴졌다.


외국계에 몸담을 때는 아시아, 그중에서도 땅덩어리 작은 한국시장이 벌어오는 돈이 상대적으로 작다 보니 마치 변두리에 있는 외딴섬 같았다. 그런데 한국 대기업으로 이직하고 본사 내 핵심부서에서 일하다 보니 높으신 윗분들(?)의 레이더망에서 벗어날 수 없었고 그건 그에게 마치 족쇄와도 같았다고 했다. 일을 위한 일이 아니라 체스판의 말처럼 이리오라면 오고 저리 가라 면 가야 하는 입장이 되어 일할 맛이 하나도 나지 않는다고. 


통화 종료 후 많은 생각이 들었다. 난 20대에 그렇게도 미국 본사로 가고 싶어 했는데 과연 그게 베스트 옵션인 걸까? 한국이라는 가장자리에서는 각 시장별 특성이 다르다 보니 본사 지침을 곧이곧대로 따르지 않고 현지화시켜서 재미있는 것들을 시도할 수 있는 자율성과 유연성이 있다. 한국시장을 제일 잘 아는 사람은 현지 팀이라 로컬 보이스가 중요하니 크게 사칙을 벗어나지 않는 한 대부분 내 의견에 따라 일이 진행된다. 물론 결과에 따른 책임은 오롯이 내 몫이지만 본사에서 시키는 대로 해야 하는 꼭두각시 보다 내 성격엔 가장자리에 머무는 것이 더 맞다는 생각이 들었다.


앞으로 연차가 더 쌓이면 또 다른 생각이 들 수도 있겠지만 (전사 전략 기획팀이라던지...) 아직 내가 발붙이고 머물 곳은 가장자리 인듯하다. 현재 본사 소속으로 한국, 중화권, 동남아 채널 세일즈를 총괄하고 있는데 위로 올라가는 것보다 territory (담당 시장)을 넓혀 견문을 넓히는 것이 개인적으로도 더 도움이 될 것 같은 느낌. 당분간 주류와 비주류 그 사이에서 줄타기하며 재미있게 노는 것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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