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패한 팀장의 오답노트
"당연히 팀장을 하고 싶어 하실 줄 알았어요."
얼마 전 한 대표님과 커피챗을 했을 때 들었던 말이다. 아무래도 내가 이전 회사에서 디렉터로 근무했고, 스타트업 기준으로는 실무자에서 관리자로 넘어가기 시작하는 연차(6~7년)라서 그렇게 생각하셨던 것 같다.
비슷한 질문을 받을 때마다 나는 너무 일찍 팀장을 달아서 실수도 많이 했고, 아직은 좋은 리더에게 배우고 싶다는 이야기를 하곤 한다.
지금도 초보 팀장 시절을 생각하면 너무나 부끄러운 일이 많다.
3년 차쯤 되었을 때였던가. 어쩌다 보니 팀 리더가 되었다. 리더십도, 경험도 부족했던 주니어였지만 열정 넘치고 잘하고 싶어 하는 모습을 회사에서 좋게 평가해 주신 덕분이었다.
크고 작은 프로젝트를 리딩해 본 적은 있지만 공식적으로 직함을 달아본 것은 처음이었던 그때, 나는 그냥 '하던 일을 더 잘하고 남들을 잘 챙기면 되겠지'하고 안일하게 생각했다.
나는 그때까지 알지 못했다. 리더는 일을 남들보다 더 잘하는 사람이 하는 게 아니고, 연차가 쌓인다고 할 수 있는 것도 아니라는 걸.
리더가 된 이후로 가장 많이 생각했던 단어는 '인내'였다.
우리 팀은 마케팅 업무를 한 지 얼마 되지 않은, 사회생활 한 지는 좀 됐어도 마케팅 업무를 한 지는 얼마 되지 않은 이들이 다수였기 때문에 필요한 만큼 업무 속도가 따라오지 못했다.
처음에는 팀원들이 하는 것을 지켜보다가, 방법을 가르쳐 주다가, 팀원과 같이 하다가, 마감일이 임박했을 때는 내가 나서서 일을 처리했다. 이렇게 나열하면 꽤나 인자한(?) 리더였을 것도 같지만 시스템을 만들지 못한 리더의 말로는 '업무 과부하'였다.
그러다 보니 매번 우리 팀에서 업무 병목이 발생했다. 타 팀에서 아무리 좋은 제품을 만들고 좋은 아이디어를 던져줘도, 받아먹지 못했다.
매주 금요일마다 돌아오는 팀 리더 회의가 지옥처럼 느껴졌다. 죄인이 된 기분이었다. 솔직한 마음으로는 '나는 열심히 했고 잘했는데...' 하는 유치한 생각도 들었다.
"그 팀은 왜 이렇게 퍼포먼스가 안 나와요?"라는 질문에 답할 수 있는 온갖 핑계가 다 떨어졌을 때쯤 나도 모르게 눈물이 터졌다.
"저도 잘 모르겠어요."
지금은 이 에피소드로 글을 쓸 수 있을 정도로 의연(?)해졌지만 그때는 정말 몰랐다. 무엇이 잘못 됐는지. 한동안은 그저 '나는 리더에 맞지 않는 사람이고, 리더십이 없는 사람이다'라고 생각하며 팀장, 리더 직책 이야기가 나올 때마다 질색하고 도망쳤다.
하지만 지금은 내가 달성하고 싶은 목표(고객에게 사랑받는 브랜드 만들기)를 위해서는 많은 사람들에게 좋은 브랜드란 무엇이고 우리가 가야 할 방향성은 어디인지 제시하는, 리더로서의 역할을 해야 한다는 것을 받아들였다.
'리더들의 리더'인 신수정 KT 부문장님의 강의를 들으며 초보 팀장의 오답 노트를 적어보았다.
팀장의 리더십과 CEO 레벨의 리더십은 다르다.
팀장에게는 '전문가적 리더십'이 필요하다. 일로써 조직을 장악하고 리딩할 수 있는 역량이 필요한 것이다. 실무에 가까이 있는 리더일수록 전문가적 리더십이 중요하다.
그에 비해 CEO 또는 그와 비슷한 레벨의 리더에게는 '비전, 전략 리더십'이 요구된다. 우리 회사는 어떤 방향으로 나아가고, 어떤 전략이 필요한지를 제시하는 리더십이다.
과거의 나를 돌이켜 보면 내가 보여주고 지향한 리더십은 비전과 전략을 제시하는 것에 가까웠던 것 같다. 내 입장에서는 '큰 그림'을 먼저 보여주려는 의도였지만, 팀원들은 뜬구름 잡는―현실과 거리가 먼 이야기를 한다고 느꼈을 수 있다.
팀장은 팀의 문제를 해결하는 데 우선순위를 두었어야 했는데, CEO의 대체자로 포지셔닝한 것이 실책이었다.
매슬로의 욕구단계이론에 따르면 인간은 생리적 욕구부터 안전의 욕구, 애정과 소속의 욕구, 존경의 욕구, 자아실현의 욕구가 있다.
나는 일로써 자아실현을 하고 존경받고자 하는 욕구가 굉장히 강한 사람이었는데, 팀원들과 1:1 미팅을 하다 보면 그들은 일을 잘하고 인정받는 것보단 취미 생활이나 업무 외 시간을 가치 있게 보내는 것이 중요했다.
나는 그것을 인지했으면서도, 그들이 일로써 자아실현하는 것을 욕망하도록 만드는 데 집중했다. 이때 나는 크게 두 가지를 잘못 생각했다.
첫 번째는 타인의 욕구를 내가 바꿀 수 있다고 믿었던 것이고,
두 번째는 자아실현의 욕구가 다른 것보다 더 가치 있는 욕망이라 생각했던 것이다.
내가 가치 있다고 믿는 것이 옳은 것이라고, 타인에게도 그래야 한다고 '감히' 생각했다. 팀원들의 동기를 살피겠다는 의도로 1:1 미팅을 했으면서 그것을 존중하지는 않았다.
리더는 동기를 부여하고 바꾸는 사람이 아니라, 팀원들이 저마자 가진 동기를 일과 연결시킬 수 있도록 돕는 사람이다. 그것을 성공적으로 할 수 있다면, 동기부여 측면에서 충분히 제 역할을 한 것이다.
강의 말미에 신수정 부문장님은 이렇게 말한다.
리더십은 스포츠 훈련이랑 똑같다고 생각한다. 갑자기 좋아지거나 나빠지는 게 아니라, 꾸준함이 필요하다. 하지만 무조건 열심히 하는 걸로 되는 것도 아니다. 리더십에 대한 관점을 가지고 매일 꾸준히 훈련하면 점차적으로 발전할 수 있을 것이다.
결국 리더십도 학습의 영역이다. 그리고 그 방법은 일반적인 학습법과 크게 다르지 않다. 관심을 가지고 매일 꾸준히 훈련하는 것.
언젠간 이 부끄러운 오답노트가, 리더십을 학습해 가는 기록이 되기를 바란다.
* 본 게시물은 가인지캠퍼스의 'KT 신수정 부문장이 말하는 직책별, 조직규모별 리더십의 기술' 콘텐츠를 참고하여 작성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