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고 벽돌
야 이제 말해줄 수 있잖아.
뭘. 이미 다 말해줬는데 뭐가 또 궁금한데.
아니, 고래 뱃속에서 어떻게 탈출했냐고.
아니 그거야 너네도 다 알다시피 연기를 피워서..
뱃속 사방이 물인데 뭔 수로 불을 피워. 네가 베어 그릴스야? 솔직히 말해봐 어떻게 나왔어.
하 오케이 다 같이 한 잔 마시고 말해줄게.
마셨으니까 이제 말해봐. 궁금해 죽겠네.
너네 내가 우리 할아버지 찾으러 갔다가 고래한테 먹힌 거 까진 알지? 솔직히 먹혔을 땐 그냥 둘이 같이 죽겠구나 싶었어. 할아버지는 거의 소화되기 직전이었고. 뭐 그래도 혼자 죽는 것보단 나으니까 위안 삼고 있었지. 근데 고래 목소리가 들리는 거야. 얼핏 들으니까 자기 친구들이랑 만나서 이야기하는 것 같더라고. 아 가만있어봐. 나무인형이 사람 된 이야기도 있는데 고래가 말하는 건 전혀 이상할 이유가 없잖아? 고래가 고민이 많아 보였어. 응 우리 잡아먹은 그 고래 몬스트로. 이번에 대기업에 서류 낸 게 다 떨어졌대. 공모전 수상 경력도 있고 인턴 경험에다가 오픽도 AL인데 서류에서 떨어지는 게 이해가 안 된다는 거야. 그리고 스트레스 때문인지 요즘 기침을 해도 시원하지가 않대. 뭔가 가슴이 답답하고 무겁다는 거야. 뭔가 시원하게 뱉어내고 싶은데 그게 안 된대. 그 말을 딱 듣고 생각했지. 그럼 얘가 시원하게 뱉어내게 만들면 되는 거잖아? 그래서 몬스트로 위장에서 기어올라가서 심장을 찾아갔지. 웬걸. 몬스트로 심장 위에 작은 벽돌 한 개가 있더라. 근데 아무리 벽돌을 치울라고 해도 벽돌이 안 움직이는 거야. 진짜 꿈쩍도 안 해. 토르의 망치 알지? 딱 그 느낌. 힘이 세다고 움직일 수 있는 그런 수준이 아니라 뭔가 있다는 생각이 드는 거야. 차라리 심장을 때려죽이지 왜 벽돌을 옮길라 했냐고? 야이 잔인한 놈아. 그렇게 심장 옆에서 한참을 끙끙대는데 몬스트로가 친구들한테 자소서 첨삭을 받더라고. 근데 내가 보니까 친구들도 답이 없어. 이상한 소리야. 뭐 인사 담당자를 감동시킬만한 명언을 써야 한다고? 어이가 없더라. 내가 또 자소서 잘 쓰잖아? 그래서 이런저런 조언을 해줬지. 애매모호한 표현 쓰지 말라. 직무 연관된 활동만 추려서 써라. 양보단 질이다. 자기 가슴에서 목소리가 들리니까 뭔 영감이라도 떠올랐다 생각했나 봐. 친구들한테 됐다고, 자기가 알아서 할 수 있다고 큰소리치더라. 그러니까 심장 위에 있는 작은 벽돌이 움직이는 거야. 그거 살짝 치우니까 몬스트로가 그제야 시원하게 재채기를 하더라고. 아니 재채기가 아니라 웃었던가? 아무튼 그때 나랑 할아버지가 탈출했지.
이게 다야. 아무한테도 말 안 했는데 술도 마셨고 너네들이니까 말해준다.
야, 너의 그 말 같지도 않은 이야기 들으니까 내 가슴이 답답해진다. 어떻게 좀 해봐.
응 그거 그냥 역류성 식도염이야. 술이나 마셔.
너 코 아까보다 길어진거 같은데 내 착각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