넷플릭스 시리즈 <오징어 게임>
<오징어 게임>을 처음부터 보고 싶었던 것은 아니었다. 나는 원래 거창하게 홍보하는 드라마, 영화들을 보면 더더욱 흥미를 잃는 성격이다. 공개 몇 주 전부터 이태원 역에 <오징어 게임> 홍보 테마 파크를 만들어놓고 어떤 웹사이트에 들어가도 배너가 붙어있고. 그리고 무엇보다도 <오징어 게임>의 컨셉은 너무나도 뻔했다. 최종 생존자가 상금 456억 원을 가져간다? 그럼 주인공이 살아남을 것이고 나머지 인물들은 다 죽을 거 아닌가. 시작부터 결말을 알 수 있는 이런 시리즈에 왜 굳이 시간을 투자하면서 봐야 하지 싶었던 것이다. 그런데 위와 같은 생각이 무색하게 지금 이 글은 <오징어 게임>을 너무나도 재미있게 한 번도 아닌 두 번 보고 쓰는 글이다.
사실 보기 꺼려졌던 <오징어 게임>을 보게 된 이유는 사람들이 욕을 엄청 하고 있다는 소문을 접하고였다. 솔직히 컨셉 자체는 좀 진부해도 재미가 없을 수가 없는 생존형 콘텐츠인데 그렇게 별로라고? 적당한 신파까지 섞여있다면 그야말로 흥행 치트키 아닌가. 나도 욕할 생각으로 1화를 봤는데 생각보다 나쁘지 않았다. 그리고 정신 차려보니 추석이 끝났고 이정재의 머리도 빨갛게 물들어 있었다.
뻔한 캐릭터들이라서 더 몰입이 잘 됐다
<오징어 게임>의 매력은 누가 생존하고, 누가 죽는지에 있는 것이 아니었다. 인물 하나하나가 자신의 죽음을 눈앞에 두고 어떤 행동을 하고 어떤 감정을 드러내는지가 너무 적나라해서 역겹고, 몰입감 넘쳤다. 인물들의 성격이나 가치관이 입체적인 편은 아니고, 3화 정도 보면 다 파악이 된다. 기훈이는 동정심 넘치는 착한 바보형. 상우는 똑똑하지만 언제든 생존하기 위해 동료도 져버릴 사람 등등. 우리가 흔히 생각할 수 있을만한 캐릭터들로 구성되어있었기 때문에 만약 내가 저 상황에 놓여있었다면 어떤 행동을 하게 됐을지 쉽게 상상이 가능했고 몰입이 쉬웠다(대다수 사람들은 본인이 상우처럼 행동할 것이라 생각할 듯). 이런 뻔한 캐릭터들이 종종 돌발행동을 할 때 더 스토리가 매력있었졌던 것 같다. 착한 바보 형같았던 기훈이가 일남을 속이고 구슬 뺏은 것, 상우가 결국 양보를 한 것 등..
그리고 <오징어 게임>은 시각적으로 정말 예뻤다. 뭔가 몽환적인 핑크색 계단과 빨간 가면의 병정들. 그리고 초록색 트레이닝복. 그런 몽환적인 공간에서 벌어지는 지옥 같은 현실. 비현실적인 공간에서 느껴지는 현실적인 감각이라는 모순점이 매력적이었다.
일본 애니메이션이나 만화책을 좋아하는 사람들에겐 사실 <오징어 게임>은 다소 식상하고 지루하게 느껴졌을지도 모르겠다. 본인도 일본 만화를 좋아하고 특히 이토 준지 컬렉션을 즐겨 보는 입장에서 비판적으로 <오징어 게임>을 평가하라고 한다면 얼마든지 비판적으로 평가할 수 있다. 하지만 이런 장르가 국내에서 제작된 것에 의의를 두고(승리호, 부산행) <오징어 게임> 에피소드 하나하나에 담겨 있는 매력들을 곱씹어본다면 꽤나 괜찮은? 아니 정말로 괜찮은 작품일 것이라 평가할 수 있을 것이다. 실제로 국내에서 제작된 넷플릭스 시리즈로는 최초로 세계 플레이 수 순위 1위를 기록 중이라고 하니(2021년 9월 26일 기준)... <오징어 게임>을 아직 보지 않았다면 꼭 한 번 봐보시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