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느쾀 Nov 20. 2022

사랑한다는 말을 할 땐
부끄러워야 해

<20세기 소녀>

로맨스와 청춘. 이 두 단어는 늘 서로를 짝꿍처럼 따라다닌다. 대다수의 사람들이 딱히 그렇다 할 로맨스 없이 청춘을 보내서 그런지, 로맨스 청춘 영화를 볼 때마다 덧없이 흘러간 지난날들을 아쉬워하곤 한다. 뭐 어차피 10년 전으로 돌아가 봤자 나는 로맨스가 생길 턱도 없지만(남고 출신이다). 

그래서 나는 보통 로맨스 청춘 영화를 보면서 삭막했던 남고 시절을 돌아보기보단, 모종의 부러움을 느끼곤 한다. 보면서 주변 사람에게 '남녀 공학은 정말 그래?' 라 물어보며 남녀 공학 출신 친구들을 부러워하는 정도. 뭐 친구들 이야기 들어보면 남녀공학도 남고랑 별 차이 없던 거 같다(그들이 인기가 없었을 가능성이 높긴 하다). 내게 로맨스 청춘 영화는 그저 상상할 거리를 제공해주는, 그냥 가벼운 마음으로, 킬링 타임용으로 즐겨 보는 장르다. 

허나 넷플릭스 <20세기 소녀>는 로맨스 청춘물 치고 진지했다. 이 영화가 내겐 심각하게 다가온 이유는 꽤 여러 가지지만, 그중 가장 큰 이유는 '사랑해'라는 말이 단 한 번도 나오지 않았기 때문이다. 로맨스 청춘 영화 치고, 사랑한다는 말이 없던 영화는 <20세기 소녀>가 처음이었던 것 같다. 영화 말미에 간신히 서로 주고받은 게 '나 너 좋아해' 정도다. 사실 나이를 먹어도 알 수 없는 게 사랑이다. 고등학생이라면, 사실 사랑을 차치하고, 감정 자체를 솔직히 말하는 것에 대해 어려움을 느낄 나이다. 그런 현실적인 모습을 잘 담아냈기 때문에 <20세기 소녀>는 더더욱 과몰입할 수밖에 없었고, 현실에 대해 한 번 더 생각해보게 만들었다. 

<20세기 소녀>를 보고 '사랑해'라는 단어의 무게에 대해 다시 생각하게 된다. 많은 사람들이 사랑한다고 말하는 것은 온전히 그들의 감정이 100% 담긴 단어인 것일까. 아니면 상대방에게 안심을 주기 위한 하나의 메시지에 불과한 것일까. 우리는 살면서 사랑한다는 말을 처음으로 했던 순간을 과연 기억하고 있을까? 대부분은 기억하지 못하고 있을 것이라 생각한다. 감히 추측컨데, 그 이유는 우리의 의지와는 사실 별개의 이유로 사랑한다는 말을 했기 때문 아니었을까. 이 타이밍에는 사랑한다는 말을 해야 해, 사랑한다고 안 해주면 상대방이 오해할 거야, 상대방이 먼저 사랑한다고 했으니 나도 해주는 게 예의야 등등, 우리가 사랑한다고 말을 하는 순간은 우리의 의지와는 무관한 순간이었기 때문에 사랑한다고 말하는 순간이 스스로에게 큰 의미를 주지 못했던 것이다. 물론 자신의 벅찬 감정을 '사랑해'라는 세 글자에 담기가 너무 아쉬웠던, 진심으로 사랑한다 말한 사람들도 있었겠지만, 뭐 그렇다면 그들은 자신의 첫 '사랑해'를 기억하고 있겠지.

생각해보니, 사랑한다는 말이 너무 가벼워지는 것도 기억하지 못하는 이유가 될 수도 있을 것 같다. 자기 전에 연인에게 '사랑해', 용서를 구할 때 미안해 그리고 '사랑해' 등등, 연인 간의 사랑한다는 말은 이제 일종의 인사말 정도로 여겨진다. 그러니 이별할 때 다수의 사람들이 당황하는 것 아니겠는가. 분명 어젯밤에 자기 전엔 사랑한다 해놓고, 갑자기 오늘은 사랑하지 않는다며 헤어지고 싶대. 


사랑이라는 단어의 무게가 나이가 들어감에 따라 가벼워지는 것은 아닐지. '사랑해'는 커녕 좋아한다는 말조차도 쉽게 꺼낼 수 없는 그런 부끄러운 사랑을 해보고 싶게 만드는 영화, <20세기 소녀>다.

매거진의 이전글 비현실적 공간 속 현실적인 감각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