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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봄날의 윤슬 Aug 22. 2023

기자의 글쓰기

뒤집고 허물고 새로 쓰는 즐거움



수많은 글쓰기 관련 책이 서점가에서 자를 기다리고 있습니. 조언도 방향도 제각각이지만 공통적으로 강조하는 한 가, '짧게 써라'입니다.

경우에 따라 한 페이지, 한 문단, 혹은 한 줄 안에 메시지를 담아야 하는 <기자의 글쓰기>는 그래서 유.  





간단 제안으로 시작되는 도입부가 흥미롭습니다. 무심코 사용되는 '의'자와 '것'자 없이 글을 써보라는 제안.

기자 3년 차 시절 1,000자 분량 원고에서 '의'와 '것' 두자를 빼기 위해 여섯 시간이나 고생했다는 일화로 시작해, 글은 오직 쉽고 친절해야 한다는 결론으로 마무리되는 도입부 962자는 '의'와 '것'을 단 한 번도 사용하지 않고 완성다.


도입부가 '팍팍' 읽힌 이유가 '의'와 '것'이 없기 때문이라는 글쓴이 주장을 받아들이면 <기자의 글쓰기>는 친절한 선배로 옷을 갈아다. 정장 입은 사무실 선배가 아닌 작업복 입은 기술자 선배.

기술자 선배가 제안하는 조언에 따라 '의'와 '것'을 빼기 위해 뒤집고 허물고 새로 쓰다 보면, 글을 쓰는 즐거움에 더해 글을 고치는 즐거움에도 눈뜨게 다.






고통스러울 정도로,

세상에는 잘 쓰는 법을 가르치는 잘 쓰지 못한 책들 범람합니다.

어렵고 숨 막히는 내용을 턱턱 막히는 문장으로 채워놓은 을 읽다 보면 저자뿐 아니라 번역가, 나아가 출판사 이름도 함께 기억해두고 싶을 정.


<기자의 글쓰기>는 쉽고 니다.

글은 써놓고 홀로 감탄할 무언가가 아니라 많이 읽히는, 즉  팔려야 하는 상품이라고 말다. 

짧고 리듬감 있게 쓰거추장한 수식어는 빼버리라고 말다.

어려운 원칙도 내팽개치고, 글에 대한 두려움도 내팽개치고, 두 번 정도 읽었으면 이 책 역시 내팽개치라고 다. 

산전수전 다 겪은 기술자 선배 목소리가 들다.


"이 책은 문을 논하는 인문서가 아니라 기술을 알려주는 실용서."







기자가 가진 위상은 예전 같지 않습니. 그 이름에 부여되던 권위는 사라진 지 오래. 밈처럼 소비되던 '기레기'는 보통명사로 굳어졌니다.

기성 언론을 향한 염증 탓에 저자 정보를 미리 알았더라면 구입하지 않았 책입다. 덧표지에 적힌 저자 소개를 보자마자 선택을 후회했으니까.

인상적인 도입부를 거치며 거부감은 조금씩 옅어졌지만, '잘 팔리는 글을 위한 기술 설명' 중 몇 가지는 저자가 소속된 언론사와 연관돼 몰입을 방해했다.

하지만 글 쓰는 기술을 얻으려는 본래 용도만 놓고 본다면 <기자의 글쓰기>는 훌륭한 선택이 다. 글쓰기를 시작하거나 정체를 겪고 있는 사람라면 '글쓰기 공구함'에 연장 몇 개를 더 챙기게 되리라 확신다.

'글을 파는 직업'인 기자는 어떤 기술을 사용해 글을 작성하는지, 짧고 쉽고 친절한 글을 쓰기 위해 어떤 노력이 필요한지 엿볼 수도 있.


저자 정보를 모르고 책을 구입한 일이 행운이었다는 고백을 해야.

<기자의 글쓰기>를 읽은 후 작성한 이 글에 사용한 1160개 글자 중 책 제목과 인용을 제외하면 '의'와 '것'은 한 번도 사용되지 않았다.

두 글자를 없애기 위해 글을 뒤집고, 허물고, 새로 쓰는 작업은 무척이나 즐거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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