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자이자 목격자인, 그래서 증인인 우리
별것 없었다.
'사고 당일'이라 하면 가장 먼저 그날 백화점의 무더위가 떠오른다. 온종인 에어컨이 나오지 않아 백화점 안은 찜통처럼 더웠다. 또 당일 오전에 5층인지 6층인지 식당가로 이어지는 에스컬레이터가 아예 어긋나 버렸다는 이야기도 들었다. 이 이야기는 그사이 친해진 동갑내기 엘리베이터 안내원이 "에스컬레이터 일은 특급비밀이니 절대로 남들에게 이야기하지 말라"며 알려주었다. 그리고 그날 나는 정말 아무한테도 말하지 않았다. 그와의 약속을 신실하게 지키고자 했던 것은 아니고, 생각보다 시답지 않은 뉴스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나 역시 그때만 해도 '건물 한쪽에 문제가 생긴 게 얼마나 큰 문제일까. 고치면 되겠지' 하고 넘겼다. 설마 그 큰 건물이 한순간에 그렇게 폭삭 주저앉으리라고는 상상조차 하지 못했다. 015p
그럼에도 내 속으로 낳고 기른 아이가 주는 기쁨과 슬픔을 모두 겪은 부모 마음을 감히 안다고 하면 새빨간 거짓말일 것이다. 그렇다. 나는 모른다. 어느 화창한 봄날 아침 수학여행 다녀오겠다고 웃으며 집을 나간 아이들이 돌아오지 않는 그 밤들이 주는 비탄을 모르고, 불의의 사고로 아이를 잃은 부모들의 끝없이 이어지는 통곡을 모른다. 해서 요즘은 이 사실이 괴롭다. 그 마음을 잘 알면 이 말도 안 되는 비극에 대해 좀 더 자세히 적을 수 있을 텐데, 그러지 못하는 신세라서 말이다.
그래서 결심했다. 나는 앞으로도 나 따위가 감히 짐작도 못 해보는 자식 떠나보낸 부모들 심정은 잠시 덮어두고, 본래 이 글을 쓰기로 결심했던 취지대로 당시 그 배에 타고 있었던 열여덟 살 아이들을 위해 글을 쓰고 말하며 살 생각이다. 혹시라도 살아남은 아이들이 나처럼 힘든 시절을 보낼지도 모르니까, 그렇다면 그때 우연이라도 내가 써놓은 글들이 위로가 될지도 모르니까. 183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