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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봄날의 윤슬 Jul 23. 2023

저는 삼풍 생존자입니다

독자이자 목격자인, 그래서 증인인 우리



별것 없었다.
'사고 당일'이라 하면 가장 먼저 그날 백화점의 무더위가 떠오른다. 온종인 에어컨이 나오지 않아 백화점 안은 찜통처럼 더웠다. 또 당일 오전에 5층인지 6층인지 식당가로 이어지는 에스컬레이터가 아예 어긋나 버렸다는 이야기도 들었다. 이 이야기는 그사이 친해진 동갑내기 엘리베이터 안내원이 "에스컬레이터 일은 특급비밀이니 절대로 남들에게 이야기하지 말라"며 알려주었다. 그리고 그날 나는 정말 아무한테도 말하지 않았다. 그와의 약속을 신실하게 지키고자 했던 것은 아니고, 생각보다 시답지 않은 뉴스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나 역시 그때만 해도 '건물 한쪽에 문제가 생긴 게 얼마나 큰 문제일까. 고치면 되겠지' 하고 넘겼다. 설마 그 큰 건물이 한순간에 그렇게 폭삭 주저앉으리라고는 상상조차 하지 못했다. 015p



수십에서 수백 명의 사상자가 발생하는 사회적 참사는 그 특성상 다양한 층위에서 다양한 연령의 희생자가 발생합니다.

각자의 위치에서 삶을 영위하는 사회구성원은 자신이나 가족 앞에 닥친 갑작스런 죽음을 마주할 준비가 되지 않은 보통사람들이고, 반복되는 참사 앞에 남녀노소로 구분할 수 없는 그들은 결국 리입니다.

참사로 트라우마에 시달리며 살아가는 사람들과  고통을 목격하는 우리에겐 참 어색한,

참 어색해야만 하는 단어가 '애도기간'인 이유입니다.






삶은 그대를 구분하지 않고 속입니다. 오늘 안전한 하루를 보냈다는 사실이 내일 무사귀환을 보장해 줄까요. 

백화점이 무너지고 다리가 끊어지고 지하철이 불타고 수학여행 가는 배가 뒤집히고 백 명이 넘는 국적불문의 사람들이 도 한복판에서 깔려 죽는 세상에서 '그들과 우리'를 구분 짓는 행위가 의미를 가질까.

개인 실을 고려할 필요가 없는 사회적 참사에선 생존자들이 화를 피한 유를 분석할 필요가 없습니다. 희생자과 마찬기지로 생사를 가를 조건만 있을 뿐 이유 없기 때문입니다.


사회가 돌보지 못한 시스템은 능청스런 구멍을 드러내고 있었고 무작위의 사람들이 우연히 거기 있었을 뿐입니다. 신문 사회면이 황급히 분류해 내는 참사 현장의 '그들'.

그러나 그들을 정의할 유일한 카테고리는 '우리'입니다.





<저는 삼풍 생존자입니다>는 1995년 6월 29일, 서울 서초4동 1675-3번지에 위치해 있던 삼풍백화점 붕괴참사에서 살아남은 '산만 언니'가 고통을 마주하며 살아온 20년의 기록입니다.

저자는 상담과 약물, 고통과 의지로 기억 깊숙이 가라앉혔던 트라우마를 끄집어내 '남겨진' 이들이 사는 삶을 전합니다.

각종 사회적 참사, 특히 세월호 유가족에게 가해지는 조롱과 매질을 차마 두고 볼 수 없어서입니다.



그럼에도 내 속으로 낳고 기른 아이가 주는 기쁨과 슬픔을 모두 겪은 부모 마음을 감히 안다고 하면 새빨간 거짓말일 것이다. 그렇다. 나는 모른다. 어느 화창한 봄날 아침 수학여행 다녀오겠다고 웃으며 집을 나간 아이들이 돌아오지 않는 그 밤들이 주는 비탄을 모르고, 불의의 사고로 아이를 잃은 부모들의 끝없이 이어지는 통곡을 모른다. 해서 요즘은 이 사실이 괴롭다. 그 마음을 잘 알면 이 말도 안 되는 비극에 대해 좀 더 자세히 적을 수 있을 텐데, 그러지 못하는 신세라서 말이다.
그래서 결심했다. 나는 앞으로도 나 따위가 감히 짐작도 못 해보는 자식 떠나보낸 부모들 심정은 잠시 덮어두고, 본래 이 글을 쓰기로 결심했던 취지대로 당시 그 배에 타고 있었던 열여덟 살 아이들을 위해 글을 쓰고 말하며 살 생각이다. 혹시라도 살아남은 아이들이 나처럼 힘든 시절을 보낼지도 모르니까, 그렇다면 그때 우연이라도 내가 써놓은 글들이 위로가 될지도 모르니까. 183p



위로, 공감, , 배려, 하다못해 침묵.

상대뿐 아니라 스스로의 존엄을 지키기 위한 최소한의 태도.

보편적 가치를 진부하게 여기는 이들이 곧잘 인용하는 단어는 '미래'입니다. 하지만 상갓집 앞에서 옷깃을 여미는 예의조차 버리며 도착해야 할 미래가 대체 어디일까요.


인터넷 미디어 <딴지일보> 게시판에 남기기 시작한 글은 입소문을 타고 널리 퍼져 글을 접한 이들의 공감 속에 책으로 출간되었습니다.

악플과 조롱을 견디며 적던 글이 호응을 얻어 책으로 출간되는 과정은 저자 본인과 저자를 응원하던 이들에사회를 움직이는 건 적의와 증오가 아니라 선의와 공감이었다는 사실을 확인하는 과정이었을 테죠.


더 잔인하고 더 노골적인 적개심이 관심을 차지하는 세상에서, 잊고 싶은 고통을 마주하는 대가로 남긴 선의는 글로 남아 세상을 조금이라도 더 좋은 곳으로 만들 것입니다.

증오와 배척은 주변을 불살라 혐오스런 상처 휘발되지만 공감과 위로는 정서로 남아 다음세대에 희망을 전하리라고,

독자이자 목격자인, 그래서 증인인 우리 믿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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