급소가격, 여빛 2019, 2022
작가님, 여기에 목차 써주시면 됩니다. 목차 아시죠? 그런데 정말 목차만 써주세요. 1권에 써주신 목차 스타일 반응이 너무 안 좋아서 이번에는 그냥 정직하게 목차만 써주시는 게 나을 거 같아요. 지난주 홈플러스에 갔는데 만두 시식용 구워주시는 이모님이 저를 보고는 "네놈이 목차를 그따위로 적어놓은 출판사 직원이냐?"며 왕교자를 던지셨어요. 간신히 받아먹긴 했지만 기분이 그리 좋지는 않았답니다. 왕교자를 처음 물었을 때 팡 터지는 육즙이 아니었다면 저도 이모님께 <부기영화> 1권 양장본을 던질 뻔했어요. 다 불태워서 없긴 하지만요. 아무튼 작가님 성향은 제가 잘 아는데 그렇다고 작가님 스타일대로 목차를 장난으로 쓰면 독자들이 찾고 싶은 페이지를 못 찾아요. 재미를 추구하시는 건 이해하지만 솔직히 재미도 없고 목차 페이지는 그냥 목차만 들어가 있는 게 나을 거 같아요. 목차 페이지를 그 따위로 써놓는 건 왕교자 안에 정액 젤리를 가득 채워 넣은 것과 다를 바 없어요. 작가님도 동의하셨잖아요? 이번에는 이상한 글 쓰지 마시고 목차만. 목차만 제발. 이상한 목차 말고 진짜 목차. 아니 갑자기 정액 젤리 이야기는 왜요? 먹어본 적 없어요. 누가 그런 걸 먹, 아니 만들겠어요? 어떻게요? 만드셨다구요? 그럼 혹시 아까 저한테 주셨던 게.... 야 이 개새끼야. 니꺼는 아니지? 와 씨발 진짜 이거 완전 미친 새끼네. 아, 잠깐. 혹시 그 젤리 단행본 굿즈로 어떨까요? 이미 포함되어 있다구요? 어떤 굿즈에요? 아 알겠습니다. 역시 너다. 아무튼 지금 중요한 건 목차니까요. '진짜 목차' 아시죠? 진짜 목차만 적어서 보내주세요. 꼭. 제발. 부디. 한 번만. 딱 목차만 딱! 목차만 정확하게 적어서. 부탁드리겠습니다. 믿습니다. 4p
여기까지 보셨으면 환불 안 되니까 인생의 좋은 교훈이다 생각하고 다음부터는 책을 사기 전에 한 번 더 생각하는 습관을 가집시다. 31p
캡틴에게 버키는 친구 이상의 의미가 있었습니다.
캡틴은 70년간 잠들어 있었고 그가 깨어났을 때, 그를 아는 사람은 온전치 않은 정신의 페기 카터뿐이었죠.
많은 동료가 있었지만 캡틴은 항상 다른 시간대에서 온 이방인이었고 슈퍼 솔져가 되고 난 이후의 동료들이었습니다. 캡틴 아메리카가 아닌 브루클린의 약골, 스티브 로저스를 기억하는 사람은 이제 세상에 단 한 명뿐이었죠. 그마저도 기억이 조작되고 세뇌당한 채 원치 않는 살인을 일삼게 된 범죄자였습니다.
만약 그때 스티브가 버키를 구했다면, 버키는 윈터 솔져가 되지 않았고 이 모든 불행은 일어나지 않았을 것입니다. 버키의 현재는 스티브의 업보입니다.
그래서 스티브는 버키를 놓칠 수 없습니다. 버키는 스티브라는 존재의 마지막 증인이고 그가 사라지면 스티브는 영영 21세기의 미아가 되니까요.
사고로 기록된 토니 스타크 부모님의 죽음은 윈터 솔져의 소행으로 밝혀졌습니다. 또한 토니가 돕고자 했던 캡틴 아메리카는 그 사실을 알면서도 오랫동안 토니에게 숨겨왔습니다.
캡틴 아메리카는 토니의 아버지가 만들어낸 슈퍼 솔져였고, 토니의 부모님은 슈퍼 솔져 혈청 때문에 목숨을 잃었습니다.
이제야 진실을 알게 된 토니의 눈앞에는 부모의 원수와 자신을 기만하고 원수를 감싸는 동료가 있습니다.
지모는 성공했습니다.
대립과 갈등은 신념의 영역에서 감정의 영역으로 번졌습니다.
이 싸움은 캡틴 아메리카와 아이언맨의 대립이 아닌, 브루클린의 약골이자 21세기 이방인과
부모가 죽던 날 아침 퉁명스럽게 행동했던 죄책감에 평생을 괴로워했던 사고뭉치 외아들의 싸움입니다. 88p
토니 스타크는 아들을 살려낸 것도 모자라 아버지에게 진심을 표현한, 아주 좋은 가족이 되었습니다.
그 반대쪽에서 타노스는 이쪽 세계와 저쪽 세계에서 각각 한 명씩, 두 딸을 모두 죽음에 이르게 했습니다. 딸을 절벽에 집어던지고 충성심을 증명하라 명령하는 동안 토니 스타크는 딸과 포옹하고 아들과 다시 만나 포옹하고 아버지와도 포옹했죠.
가족을 살려내고 지키려던 사람이 가족을 강압적으로 희생시킨 사람을 물리쳤습니다.
타노스는 모든 것을 잃고 홀로 죽었지만 토니 스타크는 홀로 죽은 뒤 모두를 얻습니다.
이기주의자 무기상에서 구원자가 된 토니 스타크는 그에게 가장 잘 어울리는 마침표를 얻었습니다.
더 나아가, 캡틴 아메리카의 마침표도 훌륭하게 찍혔습니다.
그는 시간의 피해자입니다. 잠든 동안 혼자서 70년이나 달아나 버렸으니까요.
브루클린의 약골, 실험실의 쥐, 춤추는 원숭이, 냉동 인간, 70년의 피해자였던 스티브 로저스는 비로소 시간이라는 운명의 적에게 멋지게 복수합니다.
군인이 아닌 인간으로,
승리가 아닌 행복으로,
임무가 아닌 약속으로,
스티브 로저스는 완벽하게 전역했습니다. 227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