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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봄날의 윤슬 Nov 17. 2023

부기영화

급소가격, 여빛 2019, 2022


영화 좋아하시죠. 웹툰도 좋아하시나요? 영화 리뷰 웹툰이라면 더할 나위 없겠죠. 그렇다면 지금이야말로 지옥과 아편굴을 배회하는 미친 고양이를 만나실 시간입니다.



작가님, 여기에 목차 써주시면 됩니다. 목차 아시죠? 그런데 정말 목차만 써주세요. 1권에 써주신 목차 스타일 반응이 너무 안 좋아서 이번에는 그냥 정직하게 목차만 써주시는 게 나을 거 같아요. 지난주 홈플러스에 갔는데 만두 시식용 구워주시는 이모님이 저를 보고는 "네놈이 목차를 그따위로 적어놓은 출판사 직원이냐?"며 왕교자를 던지셨어요. 간신히 받아먹긴 했지만 기분이 그리 좋지는 않았답니다. 왕교자를 처음 물었을 때 팡 터지는 육즙이 아니었다면 저도 이모님께 <부기영화> 1권 양장본을 던질 뻔했어요. 다 불태워서 없긴 하지만요. 아무튼 작가님 성향은 제가 잘 아는데 그렇다고 작가님 스타일대로 목차를 장난으로 쓰면 독자들이 찾고 싶은 페이지를 못 찾아요. 재미를 추구하시는 건 이해하지만 솔직히 재미도 없고 목차 페이지는 그냥 목차만 들어가 있는 게 나을 거 같아요. 목차 페이지를 그 따위로 써놓는 건 왕교자 안에 정액 젤리를 가득 채워 넣은 것과 다를 바 없어요. 작가님도 동의하셨잖아요? 이번에는 이상한 글 쓰지 마시고 목차만. 목차만 제발. 이상한 목차 말고 진짜 목차. 아니 갑자기 정액 젤리 이야기는 왜요? 먹어본 적 없어요. 누가 그런 걸 먹, 아니 만들겠어요? 어떻게요? 만드셨다구요? 그럼 혹시 아까 저한테 주셨던 게.... 야 이 개새끼야. 니꺼는 아니지? 와 씨발 진짜 이거 완전 미친 새끼네. 아, 잠깐. 혹시 그 젤리 단행본 굿즈로 어떨까요? 이미 포함되어 있다구요? 어떤 굿즈에요? 아 알겠습니다. 역시 너다. 아무튼 지금 중요한 건 목차니까요. '진짜 목차' 아시죠? 진짜 목차만 적어서 보내주세요. 꼭. 제발. 부디. 한 번만. 딱 목차만 딱! 목차만 정확하게 적어서. 부탁드리겠습니다. 믿습니다. 4p



목차 소개입니다. 책을 펼치면 제일 먼저 대면하는 그 '목차 소개' 맞습니다. 개인적으론 단행본 1권 목차 소개가 더 마음에 듭니다만, 길고 옮기기 귀찮아서 그냥 2권 목차 소개를 가져옵니다. 누가 먹을 거 주는 것도 아니고 딱히 열심히 읽는 사람도 없는 이곳에서 최선을 다한들 달라지는 게 있겠습니까? 모양새만 그럴듯하게 잡는 거지요. 세상사 이런들 어떠하고 저런들 어떠하겠습니까. 서프라이즈에 나오는 루브르 박물관처럼 대충 사는 겁니다.





책 보십시오. 1권은 주식정보 찾는 사람들 착각하고 잘못 사게끔 깔끔한 블랙이었지만 잘 통하지 않았는지 2권은 눈에 확 띄는 그린입니다. 내용은 포기했으니 책장 인테리어 용으로 어필하는 걸까요? 떼깔 한번 보세요. 허리 디스크 치료 책을 찾던 사람도 혹해서 손을 뻗을 만큼 예쁩니다. 무슨 수를 써서라도 이번만큼은 재고를 남기지 않겠다는 출판사의 결가 느껴지는군요. 초록초록하니 잔디 같지 않습니까? 잔디 하니까 얼마 전에 자전거를 타다가 사고 난 일이 떠오르는군요. 자전거 도로로 행인이 걸어가길래 적당히 피하려는데 그놈이 제 앞으로 확 끼어드는 바람에 피하려다 잔디밭에 곤두박질쳤어요. <부기영화 2>권이랑 똑같은 잔디밭에 말입니다!

여러분, 세상이 이렇게 위험한 곳입니다. 한가롭게 자전거 타다가 잔디밭과 딥키스를 할 수도 있어요. 국가는 뭘 하고 있나요? 저 사고로 손목 인대가 늘어나는 바람에 한 달 동안 사랑스런 여자친구의 어깨 한번 감싸주지 못했습니다. 예? 애초에 여자친구가 없질 않냐구요? 여러분, 지금 그게 중요한 게 아니지 않습니까. 제발 정신 좀 차리십시오. 중요한 건 1권이든 2권이든 일단 펼치면 환불이 안된다는 겁니다.



여기까지 보셨으면 환불 안 되니까 인생의 좋은 교훈이다 생각하고 다음부터는 책을 사기 전에 한 번 더 생각하는 습관을 가집시다. 31p



핵심은 다 얘기했지만 분량이 너무 짧으니 남는 공간에 책 이야기나 마저 하겠습니다. 명색이 리뷴데 양이라도 그럴듯해야죠. 내가 지금 뭘 읽고 있나 싶으실 겁니다. 시간을 낭비하고 있다는 느낌이 딱 오실 거예요. 당연하지요. 실제로 시간을 낭비하고 계시니까요. 그러니까 이런 뻘글 읽을 시간 다들 카카오페이지 가셔서 <부기영화> 한편이라도 더 보시길 바랍니다. 조회수가 늘어야 3권이 나오고 3권이 나와야 3권을 사는 독자가 하나라도 더 늘어날 테니까요. 잘 아시다시피 이 세상 나 혼자만 당할 수야 없질 않습니까? 우리 모두의 관심과 노력이 필요한 때입니다.

자, 기왕 여기까지 읽느라 시간낭비 하셨으니 남은 거 마저 보고 가십시다.






캡틴에게 버키는 친구 이상의 의미가 있었습니다.
캡틴은 70년간 잠들어 있었고 그가 깨어났을 때, 그를 아는 사람은 온전치 않은 정신의 페기 카터뿐이었죠.
많은 동료가 있었지만 캡틴은 항상 다른 시간대에서 온 이방인이었고 슈퍼 솔져가 되고 난 이후의 동료들이었습니다. 캡틴 아메리카가 아닌 브루클린의 약골, 스티브 로저스를 기억하는 사람은 이제 세상에 단 한 명뿐이었죠. 그마저도 기억이 조작되고 세뇌당한 채 원치 않는 살인을 일삼게 된 범죄자였습니다.
만약 그때 스티브가 버키를 구했다면, 버키는 윈터 솔져가 되지 않았고 이 모든 불행은 일어나지 않았을 것입니다. 버키의 현재는 스티브의 업보입니다.
그래서 스티브는 버키를 놓칠 수 없습니다. 버키는 스티브라는 존재의 마지막 증인이고 그가 사라지면 스티브는 영영 21세기의 미아가 되니까요.
 
사고로 기록된 토니 스타크 부모님의 죽음은 윈터 솔져의 소행으로 밝혀졌습니다. 또한 토니가 돕고자 했던 캡틴 아메리카는 그 사실을 알면서도 오랫동안 토니에게 숨겨왔습니다.
캡틴 아메리카는 토니의 아버지가 만들어낸 슈퍼 솔져였고, 토니의 부모님은 슈퍼 솔져 혈청 때문에 목숨을 잃었습니다.
이제야 진실을 알게 된 토니의 눈앞에는 부모의 원수와 자신을 기만하고 원수를 감싸는 동료가 있습니다.
지모는 성공했습니다.
대립과 갈등은 신념의 영역에서 감정의 영역으로 번졌습니다.

이 싸움은 캡틴 아메리카와 아이언맨의 대립이 아닌, 브루클린의 약골이자 21세기 이방인과
부모가 죽던 날 아침 퉁명스럽게 행동했던 죄책감에 평생을 괴로워했던 사고뭉치 외아들의 싸움입니다.  88p




장엄한 스토리와 깊은 메시지를 전하기 위해 어렵고 고상한 외피를 동원하는 건 편리합니다. 쉽고 재미있는 이야기 속에 메시지를 녹이는 쪽이 더 많은 고민을 필요로 하죠. 

동굴 속에서 아이언맨을 탄생시켰던 토니 스타크가 우주를 복원한 뒤 여정을 마무리하는 10여 년간 마블영화와 팬들은 서로의 성장을 지켜봤습니다. 팬들은 슈퍼히어로, 특히 토니 스타크와 스티브 로저스 성장하는 모습에 감동했고 마블은 높아지는 팬들 눈높이에 맞춰 히어로들의 정체성과 성별, 인종, 설정에 공을 들였습니다. 원작에 충실하길 바라던 코믹스 팬을 만족시켰고 원작을 모르던 관객도 만족시켰습니다. 어긋난 시차를 교정하듯 조금씩 서로에게 맞춰 결국 서로가 열광하는 결과물을 만들어냈습니다. 

긴 시간이 필요한 시리즈물만이 해낼 수 있는 성취입니다.



토니 스타크는 아들을 살려낸 것도 모자라 아버지에게 진심을 표현한, 아주 좋은 가족이 되었습니다.
그 반대쪽에서 타노스는 이쪽 세계와 저쪽 세계에서 각각 한 명씩, 두 딸을 모두 죽음에 이르게 했습니다. 딸을 절벽에 집어던지고 충성심을 증명하라 명령하는 동안 토니 스타크는 딸과 포옹하고 아들과 다시 만나 포옹하고 아버지와도 포옹했죠.
가족을 살려내고 지키려던 사람이 가족을 강압적으로 희생시킨 사람을 물리쳤습니다.
타노스는 모든 것을 잃고 홀로 죽었지만 토니 스타크는 홀로 죽은 뒤 모두를 얻습니다.
이기주의자 무기상에서 구원자가 된 토니 스타크는 그에게 가장 잘 어울리는 마침표를 얻었습니다.

더 나아가, 캡틴 아메리카의 마침표도 훌륭하게 찍혔습니다.
그는 시간의 피해자입니다. 잠든 동안 혼자서 70년이나 달아나 버렸으니까요.
브루클린의 약골, 실험실의 쥐, 춤추는 원숭이, 냉동 인간, 70년의 피해자였던 스티브 로저스는 비로소 시간이라는 운명의 적에게 멋지게 복수합니다.
군인이 아닌 인간으로,
승리가 아닌 행복으로,
임무가 아닌 약속으로,
스티브 로저스는 완벽하게 전역했습니다. 227p



장대한 줄거리와 기나긴 시간이 쌓여 마블 영화는 영화 이상의 무언가가 되어버렸습니다. 슈퍼히어로 영화가 테마파크라는 마틴 스콜세이지의 주장을 부정하고 싶지는 않습니다. 오히려 확장하고 싶어요. 모든 영화, 모든 문화컨탠츠는 '다른 테마를 가진' 테마파크입니다. 누군가는 기쁨과 희열을, 누군가는 슬픔과 절망을 찾아 이야기의 문을 두드리죠. 혼자선 살아갈 수 없지만 결국 혼자서 살아가야만 하는 존재인 인간은, 매 순간 매 순간 그 이야기들이 절실합니다. 살벌한 현실에서 눈을 돌려줄 비현실적인 영웅들이, 끌어안고 눈물 흘려줄 무력한 존재들이 살아가는 테마파크가요.

그 테마파크 주변을 고양이 두 마리가 어슬렁거리고 있군요. 테마파크를 구석구석 안내해 줄 부기돌이와 부기순이입니다.


정신줄 내려놓고 한번 따라가 볼까요?

결코 후회하지 않으실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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