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매거진 읽다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봄날의 윤슬 Feb 01. 2024

몬스터 콜스

패트릭 네스 / 시본 도우드 / 짐 케이 2012

 

죽어가는 엄마를 지켜보는 무력한 사춘기 소년, 코너 오말리.

어느 밤 침실 앞으로 걸어온 몬스터의 이야기를 들어야 하는 주인공이자 몬스터에게 자기 이야기를 해야 하는 소년입니다.


 몬스터는 사악한 웃음을 지었다. 바람이 잦아들었고 정적이 내려앉았다.
 이제야 눈앞의 문제를 이야기하게 됐군. 내가 걸어온 까닭을.
 몬스터가 말했다.
 코너는 갑자기 무슨 일이 일어날지 두려웠고 긴장됐다.
 코너 오말리, 나는 앞으로 또 너를 찾아올 것이다. 그리고 네게 세 가지 이야기를 해 줄 것이다. 내가 전에 걸었을 때의 이야기다.
 몬스터가 말을 이었다.
 코너는 주먹이 날아오길 기다릴 때처럼 배 속이 뒤틀리는 걸 느꼈다.
 "이야기를 해 준다고?"
 코너는 눈을 깜빡거리고, 또 깜빡거렸다.
 그래.
 몬스터가 말했다.
 "음, 그게 어떻게 악몽이지?"
 코너는 믿을 수가 없어 주위를 둘러보았다.
 이야기는 세상 무엇보다도 사나운 것이다. 이야기는 쫓아오고 물고 붙잡는다.
 몬스터가 우렁우렁한 목소리로 말했다.
 "선생님들이 늘 하던 얘기야. 하지만 아무도 그런 말을 믿지 않아."
 코너가 말했다.
 내가 세 가지 이야기를 끝내고 나면, 네가 네 번째 이야기를 할 것이다.
 몬스터는 코너의 말을 무시하며 말했다.
 "난 이야기는 못해."
 코너가 몬스터의 손아귀 안에서 몸을 비틀었다.
 네가 네 번째 이야기를 할 거다. 그리고 그것이 진실이 될 것이다.
 몬스터가 되풀이했다.
 "진실?"
 그냥 진실이 아니라, 너의 진실.
 "알았어. 하지만 끝이 오기 전에 내가 두려워하게 될 거라고 했는데, 조금도 무섭게 들리지 않아."
 코너가 말했다.
 그렇지 않다는 걸 너도 안다. 코너 오말리, 너는 네 진실이, 네가 감추는 것이, 네가 가장 두려워하는 것이라는 걸 안다.
 몬스터가 말했다. 55p



몬스터가 들려줄 이야기는 거칠고 제멋대로입니다. 내용도 결말도 납득할 수 없는 이야기 속으로 빨려 들어가는 코너 오말리. 그가 들어야 하는 이야기 셋과 그가 말해야만 하는 네 번째 이야기는 무엇일까요. 그 이야기 속에 담긴, 소년이 두려워하는 진실은 무엇일까요.





죽어가는 엄마를 지켜보는 무력한 사춘기 소년.


깊은 울림과 치유를 제공했음에도 <몬스터 콜스>는 심각한 트라우마 역시 함께 겨주었다는 고백을 해야. 이 책을 읽고 난 뒤 두 달 가까이 읽지도 쓰지도 못했으니까요. 잊어버렸다고 믿었던 무력한 소년이 가슴 깊숙한 곳 서성이고 있었던 거죠.


"아들아, 모든 이야기가 행복하게 끝나는 건 아니란다."
 아빠가 몸을 앞으로 숙이며 말했다.
 이 말에 코너는 몸이 굳었다. 그게 사실이니까. 몬스터가 확실하게 가르쳐 준 게 그거였다. 이야기는 사나운 것이다, 기대하지 못한 방향으로 튀어 나가는 사나운 짐승이다. 180p



이야기가 마음에 들지 않는다고 하더라도,

이야기가 괴물처럼 살을 찢고 뼈를 할퀸다고 하더라도,

삶은 이야기를 선택하거나 거부할 방법이 없습니다. 이야기는 가고 싶은 곳으로 가는 존재니까요.

<몬스터 콜스>는 이야기가 정당한 방향으로 흘러가리라는 기대를 버리라고 말합니다. 그건 어리석은 일이라고 하죠.

이야기는 이야기일 뿐입니다. 이야기는 제멋대로 구는 사나운 짐승일 뿐입니다. 삶으로 돌진해 오는 이야기들은 교통사고와도 같습니다. 나 때문에 벌어질 수도, 나와관련 없이 벌어질 수도 있죠. 문제는, 이야기에겐 그것조차 관심사가 아니라는 점입니다.

따라서 이야기를 향해 취할 수 있는 태도란, 이야기는 이야기일 뿐이라는 사실을 인정하는 것뿐입니다. 세상을 뒤덮고 있는 이야기는 언제나 그랬듯 제멋대로 흘러갈 테니까요. 삶이 해야 할 일은 흘러가고 또 흘러갈 이야기에 잡아먹히지 않고, 이야기가 삶을 뒤흔들고 망치지 못하도록, 이야기가 낮과 밤을 잠식하지 못하도록, 옳다고 믿는 태도를 견지하며 살아가는 것입니다. 삶은 이야기에 따라 없이 요동치는 생각이나 마음이 아니라 이야기에 맞서고 하는 말과 행동으로 규정되니까요.


<몬스터 콜스>는 작품 속에 등장한 몬스터처럼 저를 고통으로 마비시켰고 제가 외면해 왔던 심연을 보여주었고 저를 온통 뒤흔들어 놓은 후 마침내 구원해 주었습니다.

좀 더 어린 나이에 이 책을 접했더라면 얼마나 좋았을까 하고 생각합니다. 그랬다면 밀쳐두고 외면했던 무력한 소년의 등을 조금이라도 일찍 토닥여 줄 수 있었을 테니까요.  









매거진의 이전글 부기영화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