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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성호 Oct 18. 2017

낫투데이 - 20171018

완치만이 최선인가?



환자들과 그 가족들이 가장 바라는 것은? 당연히 병이 완전히 나아서 건강을 되찾는 것이고 정상적인 사회생활로 복귀하는 겁니다. 이건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고, 모든 환자가 건강을 되찾기 위해 노력하는 것은 아주 당연한 일이기도 하죠. 


환자를 위문하는 모든 사람은 당연히 환자에게 완치를 기원하기 마련이고, 그 기원을 받아들이는 환자 입장에서도 그걸 당연하게 생각합니다. 또 완치가 상당히 어려운 힘든 병에 걸린 환자에게도 완치될 수 있다는 확신? 혹은 신념? 뭐 그런 것을 가지라고 권고하기도 하고 그렇게 자기 확신이 있어야 완치 확률이 높아지는 것도 사실이기도 합니다. 낙관적인 환자가 치유 비율이 높다는 연구결과도 본 적이 있어요.


이런 당연한 논리 자체를 뒤집을 생각은 없습니다. 당연한 일은 당연한 거니까요. 완치가 최선의 결과인 것은 사실이고 그걸 부정할 수는 없습니다. 저부터도 당장 이 병이 싹 나아서 정상적인 사회생활로 복귀할 수 있다면 뭐든지 할 생각이 있을 정도로 완치를 바라고 있습니다.


그러니 완치를 기원하고 그 기원에 감사하게 화답하는 것은 환자와 위문객의 기본적인 대화 프로토콜이 됩니다. 문제는 그 당연한 논리 속에서 외면받고 버려지는 경우가 존재한다는 가슴 아픈 사실입니다.


생각의 시작은 이랬습니다.


완치를 기원합니다, 완치되실 것을 확신해요, 완치되어 복귀하실 때까지 기다리겠습니다, 이런 종류의 인사를 수도 없이 받았는데 어느 순간부터 그런 인사에서 묘하게 속이 상하고 조금씩 불쾌한 느낌을 받기 시작했습니다. 그냥 저절로 그렇게 느낌이 변해가더군요.


처음에는 그저 “남의 일이라고 너무 쉽게 얘기하는군” 하는 느낌이었던 것 같습니다. 수술을 받고 방사선 치료를 하고 항암제를 투입하고 이러는 과정이 현실적으로 얼마나 힘든지, 그 힘든 치료를 해도 완치의 확률은 별로 안 높아지는데 그런 사실을 알고 있는지, 아무것도 모르면서 그냥 의례적인 인사, 입에 발린 인사만을 하는 게 아닌지, 그런 생각이 들어서 약간의 불쾌함이 든다고 생각을 했습니다.


당연히 그분들은 좋은 뜻으로 완치를 기원했을 뿐인데 지속되는 투병생활로 지쳐서 예민해진 탓에 공연히 내가 까탈스럽게 생각을 하는 게 아닌가 하는 반성도 했었죠.


그러나 좀 더 생각을 가다듬어 가자 뭔가 보이기 시작했습니다. 결정적으로 아서 프랭크의 <아픈 몸을 살다>라는 책에서 아주 깔끔하게 이 생각을 정리해 주더군요. 이 책에서 정말 많은 생각의 도움을 받았습니다. 결론은 바로..


우리는 병에 걸린 환자들을 우리의 “정상적인” 일상에서 지우려고 한다는 것입니다.


당연한 일이죠. 병은 두려움의 대상입니다. 본질적으로 병은 옮는다는 느낌을 줍니다. 한 명이 아프면 그 주변인까지 같이 아플지도 모릅니다. (실제로는 전염되는 병과 아닌 병이 구분되죠. ) 그리고 단순한 상처나 흔하게 경험하는 감기 같은 병 말고 뭔가 중한 병에 걸리면 회복되기보다는 그대로 그렇게 죽어 가는 경우가 더 많았을 겁니다.


그렇게 인간 집단은 병에 걸린 환자가 발생하면 정상적인 일상에서 벗어났다고 생각하기 마련이었고, 환자들은 “비정상”적인 상태에 있는 구성원으로 간주할 수밖에 없었을 겁니다. 결국 누구가 호의를 보여줘야 할 구성원이 병에 걸리면 할 수 있는 조언은 최대한 빨리 비정상성을 버리고 정상적인 사회로 복귀하라는 충고뿐이었을 겁니다. 슬픈 일이죠.


그건 타당한 집단 예절이었을 겁니다. 그렇게 회복되어 복귀하지 못하면 죽는 거고, 그 과정은 매우 빨랐을 테니 말이죠. 그러나 세상이 변하기 시작합니다.


의술의 발달은 병을 치료하기 시작했고, 심지어 치료가 어려운 환자들에 대해서도 그 생존기간을 늘리는 결과를 가져오게 되었습니다. 즉, 정상적이지 못한, 비정상적인 상태에 놓여 있는 인간 개체를 늘리기 시작했다는 겁니다.


특히 암 같은 질병은 “완치” 자체가 불가능합니다. 물론 법적으로는 최초 발병 후 5년간 생존해 있고 별다른 재발이 없는 걸로 확인된다면 완치 판정을 내립니다. 암환자 등을 대상으로 하는 산정특례 지정도 5년이 지나면 해제됩니다. 그러나 그 상태가 완치일까요?


암환자는 일단 한 번 걸리면 평생 완치라는 것은 없습니다. 그저 재발하지 않는 상태를 유지하거나, 체내에 악성 종양이 있어도 더 이상 커지지 않고 현상을 유지하는 선에서 그야말로 병을 “다스리면서” 평생을 살아가는 것뿐입니다. 그렇게 현상유지만 가능한 상황에 가도 대단히 행운인 거죠.


나머지 대부분은 좀 좋아졌다가도 다시 재발하고 이런저런 치료 속에서 체력을 잃어버리고 서서히 죽어갑니다. 그 과정이 짧으면 몇 개월, 길면 몇 년에 걸쳐 벌어지는 거죠.

 
예전 같으면, 즉 현대의학의 도움이 없었다면 저 역시 이미 오래전에 이 세상 사람이 아니었을 겁니다. 발병하고 상악동 속에서 종양이 커지면서 구강과 비강의 기능이 망가졌을 거고 그러면 밥을 먹거나 숨을 쉬는 아주 기본적인 기능에 문제가 생기면서 무척 보기 흉한 모습으로 죽어갔을 겁니다. 그러나 저는 아직 생각보다 멀쩡하게 살아 있거든요.


즉 예전 같으면 별로 고려할 대상도 아니고 오래 살지도 못할 “비정상적인 상태”, 즉 불치병을 앓고 있는 환자의 상태로 시간을 보내고 있다는 뜻입니다. 저뿐만이 아니죠. 수많은 환자들이 이런 상태로 살아갑니다. “정상적인” 사회생활은 당연히 중단된 지 오래입니다. 그러나 가족들의 보호 속에서 그렇게 생을 이어갑니다.


이런 환자들이 점점 늘어가고 있습니다.


자, 이제 다시 생각해보죠.


과연 “정상적인 상태”란 무엇입니까? 병에 안 걸리고 건강한 상태? 내게 주어진 사회적 역할, 직업 등을 정상적으로 수행하는 상태?


병에 걸려서 직업은 없지만 나름대로 치료를 받으며 컨디션을 조절해가며 상태를 유지하고 있고 책을 읽고, 음악을 듣고, 사색을 하고, 가족들과 대화를 하며 살아가는 환자는 정말로 “비정상적인” 삶을 살아가고 있는 중일까요? 


단지 완치되기 힘든 병에 걸렸다는 이유로 그런 환자들을 “비정상적인” 상태로 간주하고 정상성의 범주에서 밀어내도 될까요? 그럴 권리가 누구에게 있을지 모르겠습니다.


환자들 스스로도 문제입니다. 많은 암환자들이 자꾸 스스로의 상태를 못 견뎌하며 환자로서의 삶에 적응하지 못하고 자꾸만 무리를 하다가 상태를 더 악화시키곤 합니다. 즉 본인이 환자이면서도 환자에 대한 잘못된 인식, 환자의 상태는 비정상이라는 과거 일반적인 인식을 그대로 가지고 있는 거죠.


환자로서의 삶도 정상적인 것입니다. 환자들도 이 사회 공동체의 구성원이 맞고, 그들을 정상성의 범주 바깥으로 밀어낼 권리는 아무에게도 없습니다. 완치를 위한 노력을 포기하라는 얘기가 아니라 완치 자체가 불가능한 환자들의 경우도 고려하자는 얘기이죠. 그들도 이 사회의 곳곳에서 살아가고 있습니다.


현대 사회는 그들을 자꾸만 병원으로 몰아넣으려고 합니다. 병원은 비정상적인 것들을 정상으로 만들어야 하는 임무를 띤 단체가 되는 겁니다. 물론 의학이 좀 더 발전해서 환자로서의 삶을 살아가는 사람들이 모두 사라져 버리면 이런 논의 자체가 불필요해지겠죠. 그러나 지금 이 사회에는 수도 없이 많은 불치병 환자들이 우리들 사이사이에서 완치되지 못하는 자신을 탓하면서 괴로운 삶을 이어가고 있습니다.


병으로 인한 통증, 치료를 위한 고통만이 문제가 아닌 겁니다.


완치하세요, 완치를 기원합니다, 완치를 확신합니다, 이런 인사를 받을 때마다 절대 완치될 수 없는 자신에 대한 절망감을 다시 곱씹어야 되고, 난 이제 정상성의 범주 안으로 복귀할 수가 없다는 포기를 반복해야 하는 그런 상황은 환자에게 엄청난 고통을 추가하게 됩니다.


제가 그런 인사를 받을 때마다 느꼈던 불쾌감은 그렇게 커져갔습니다. 이제 당신들은 나를 지워버리고 있구나 하는 느낌이죠. 가끔 제가 시사적인 발언을 하면 이런 조언이 들어옵니다.


“뉴스 보지 마시고 치료에만 전념하세요. 몸도 안 좋으신데.. ”


압니다. 몸도 안 좋은데 뉴스 보고 열 받아서 화를 내고 그러면 또 컨디션 나빠지고 통증도 심해지고 그렇게 되겠죠. 하지만 저런 발언은 “지금 당신은 당신이 하던 시사평론이라는 정상적인 직업을 수행할 수 없는 비정상적인 상태니까 다른 모든 걸 포기하고 정상성을 회복하는데 주력하라”는, 어떤 면에서는 매우 폭력적인 “밀어내기”입니다. 정상성의 범주 바깥으로 저를 밀어내는 거죠. 


이런 얘기를 하게 되면 많은 분들께서 오해를 하실지도 모르겠습니다.


“아니 왜 좋은 뜻으로 축원을 해 줬더니 그걸 지멋대로 곡해를 해서 비난을 하고 있나.. “ 하면서 말입니다.


아닙니다. 여러분들을 비난하는 것이 절대 아닙니다. 여러분들은 진심으로 좋은 뜻으로 저의 완치를 기원해 주셨을 것이고 저를 위하는 마음에서 하신 말들이라는 것, 정말 잘 알고 있습니다.


그러나 그런 호의적인 말들 속에도 언제나 이 사회의 문제가 담기기 마련입니다. 여러분들이 생각을 조금만 바꿔보면, 생각하지 않았던 부분들에 대해 한 가지씩만 더 생각해 본다면 우리는 좀 더 많은 사람들에게 도움이 될 수 있는, 반대로 말하자면 사회적인 고통을 감소시킬 수 있는 변화를 가져올 수도 있을 겁니다.


제가 생각하는 “진보”는 바로 그런 것입니다. 아무 생각 없이 하던 일에 대해서도 언제나 한 번 더 생각해 보면서 이 사회에서 함께 살아가는 공동체의 구성원들에게 어떻게 하면 조금이라도 더 행복한 삶을 살게 서로 도와줄 수 있을까를 고민하는 그런 삶의 태도 말입니다.


자, 그러면 이제 남은 것은 이거군요.


암 같은 불치병, 혹은 난치병에 걸린 환자들에게 뭐라고 인사를 해야 좋을까 하는 문제입니다.


결국 이 문제는 환자뿐 아니라 이 사회를 함께 살아가는 공동체의 구성원을 대하는 사회적 예절의 문제입니다. 그 예절에는 딱 하나의 필수요건 밖에 없습니다. “상대에 대한 존중”이죠. 당신이 무엇을 생각하고 무엇을 원하건 당신이 바라는 것이 이루어지길 기원한다는 말, 이것입니다.


그 밖에 모든 구체적인 조언은 간섭이나 불필요한 개입이 될 확률이 높거든요. 흔히 말하는 꼰대질 말입니다. 병에 걸려 보면 아시겠지만 정말 온갖 종류의 기상천외한 처방들을 다 조언을 통해 알게 됩니다. 나중엔 정말 지겨워지곤 하죠. 면전에서 화를 낼 수도 없고..


그런 거 말고 그냥 힘내시라고 하면 됩니다. 더 호의적인 말을 하고 싶다면, 만약 도움이 필요하다면 언제든지 말해달라, 내 사정이 허락하는 한 도와주겠다, 라는 정도가 있겠죠.


완치를 기원한다는 말은 하지 말았으면 합니다. 들어보니까 정말 힘듭니다. 당신이 아무리 기원을 해봤자 난 완치가 안될 거야, 라는 비뚤어진 마음이 들면서 화만 납니다. 완치되지 못하고 계속 병에 걸려 있으면 뭔가 임무를 완수하지 못한 실패자가 되는 것 같은 느낌까지 듭니다. 현재 1,2차 수술 만으로도 저는 안면 구강의 많은 부위를 잃어버렸고 그런 의미에선 완치 자체가 불가능합니다. 저는 이미 비정상인가요? 그런 거 아니거든요.


아무쪼록 이 글을 읽고 저에게 호의적인 축원을 해 주셨던 분들께서 상처받지 않으시길 바랍니다. 여러분들의 호의를 의심하는 것은 절대 아닙니다. 하지만 상황은 이렇게 바뀌어 가고 있다는 점을 꼭 말씀드리고 싶었습니다.


그만큼 현대 사회는 복잡해져 가고 있고 사회적 예절은 더 디테일하게 발전하고 있다는 결론으로 마무리하고 싶습니다.


여러분 모두에게 행운이 함께하길 기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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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낫투데이> 시리즈는 여기에 연재되고 있습니다.


https://brunch.co.kr/magazine/patien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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