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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성호 Nov 29. 2017

낫투데이 20171129

음악의 효능



간만에 돌아왔습니다.


글을 자주 쓰고 싶긴 한데, 쉽지가 않네요. 앉아서 집중하고 타이핑하는 것도 쉽진 않지만, 뭘 쓸까 하고 고민하는 것 자체가 조금 부담이 되는 것 같기도 합니다. 그래도 뭐 뭔가를 쓰고 있는 동안만큼은 환자의 입장이나 통증 등을 잊을 수 있어서 좋긴 합니다. 좀 더 열심히 써 보겠습니다.

 
가족들에게 보내는 편지 형식으로 병세에 대해 설명을 했더니 많은 분들께서 생각보다 상태가 나쁘다며 놀라기도 하고 위문의 말씀을 하기도 하셨어요. 객관적으로 보면 꽤 나쁜 상황 맞죠 뭐. 암환자 병세가 좋은 사람이 누가 있겠냐만 그중에서도 좀 더 심각한 상황이라고나 할까요.


이런 소식이 어떤 분들에게는 부담스럽고 거북하게 느껴지기도 하나 봅니다. 당연한 일이죠. 만약 제가 환자가 아닌 상태에서 어떤 다른 환자분이 이런 글을 쓰고 있는 걸 본다면 저 또한 굉장히 부담스럽게 읽었을 것 같기도 합니다. 그만큼 암이라는 병은 불치병이고 무서운 병이라는 얘기겠죠.


현실을 인정하고 암과 함께 살아간다, 라는 말은 그래서 그만큼 더 무겁고 어려운 얘기가 될 겁니다. 인정한다는 것 자체가 얼마나 어려운데요. 삶과 죽음을 가르는 경계선 담장 위에 올라가 걸터앉아서 수시로 양쪽을 모두 돌아보며 사는 기분입니다.


그래도 말입니다. 진짜 진지하게 진심으로 말씀드리겠습니다.


그게 현재의 제 삶입니다. 좋게 볼 것도 나쁘게 볼 것도 없이 2017년 11월 29일 아침을 살아가는 물뚝심송 박성호라는 인간의 삶입니다. 그걸 인정하고 받아들이는 것이 그렇게 힘듭니다. 물론 지금도 제대로 받아들이지 못했습니다. 아마 제대로 받아들였다,라고는 영원히 말하지 못하게 될 겁니다.


슬프고 두렵고 원통하고, 또 가족들 생각에 잠을 못 이루고, 뭐 하여간 온갖 감정이 다 소용돌이칩니다. 그래도 받아들여야죠. 받아들이기 위해서 그 얘기를 자꾸 담담하게 하는 겁니다. 스스로에게 다짐을 하기도 하고, 이래야 된다고 설득을 하기도 하고 가족들과도 그 얘기를 하고 어떻게 해서든 적응하려고 노력을 합니다. 다른 이가 쓴 책을 찾아보기도 하고 경험담을 들어 보기도 하고.


그 와중에 진짜 큰 도움을 받은 게 바로 음악입니다.


원래 고교시절부터 음악 듣는 것을 무척 좋아했습니다. 장르도 아주 폭넓게 많이 들었다고 자부하는 편입니다. 물론 체계적으로 공부하신 분들도 있고 그러니 어디 가서 잘난 척할 수준은 아니죠.


또한 오디오 장비도 좋아해서 어려서부터 앰프를 만들고 오디오 시스템을 조립해 보기도 하고 청계천 황학동을 돌며 구닥다리 장비들을 사모으기도 하고 했습니다. 나중에 돈이 생기자 그땐 조금 비싼 장비들을 실제로 사 모으기도 했고요. 결국 오디오 장비 업그레이드의 끝은 집을 바꾸는 것이라는 말을 실감하기도 했습니다.


제일 기억에 남는 일이라면 제가 한참 음악과 오디오에 맛을 들이던 시점이 바로 LP시대가 막을 내리고 CD가 도입되던 시점이었다는 겁니다. 그 두 가지 매체를 놓고 과연 어느 쪽이 우월한가에 대해 아주 치열한 논쟁이 있었죠. 지금 와서 돌아보면 참으로 허무한 논쟁이었지만, 그땐 그랬습니다.


고교 시절 롹밴드들을 좋아하다가 대학 들어가면서 클래식을 찾아 듣기 시작하고, 괜히 뉴에이지 음악 같은 부류에 심취하기도 하다가 다들 말하는 순서대로 블루스와 재즈에 심취하기도 하고 그랬던 기억이 납니다.
그러다가 어느 순간부터 음악을 잘 못 듣게 됩니다. 꽤나 비싼 장비들을 갖춰 놓고도 잘 쓰지도 못하게 되고, 그러다 보니 결국 장비들도 다 처분하게 되고 음악으로부터 멀어지기 시작했죠.


이유는 단 하나, 시간이 없다는 거였습니다. 뭔가 다른 일을 하면서 듣는 음악보다는 모든 일을 멈추고 각 잡고 앉아서 제대로 듣는 음악을 더 좋아했던 사람으로서 그런 취미 활동에 투자할 시간이 없어졌다는 핑계였습니다. 그만큼 일 욕심이 많았던 것 같기도 하고..


그러다가 환자의 처지가 되자, 시간이 늘어났습니다. 다시 음악을 들어볼까 하는 생각을 하고 돌아보니, 참 장비들이 열악하더군요. 그래서 아주 저렴한 스피커 세트부터 구하고 이런저런 준비를 해서 음악을 다시 찾아 듣기 시작했죠.


정말 좋더군요.


우울하고 슬프고 두려울 때, 음악으로 마음을 달래는 것이 가능합니다. 어떤 사람은 암에 걸려서 바흐의 골드베르크 변주곡을 완전히 새롭게 듣게 되었다고 하던데, 저도 비슷했습니다.


통증이 올라오면 슈베르트의 아베마리아를 듣고 그나마 마음이 가벼워지면 비발디를 듣기도 합니다. 정말로 죽음이 두려워지면 모짜르트의 레퀴엠을 듣기도 하죠. 퀸이나 딥퍼플의 앨범을 하나 골라 처음부터 끝까지 들어보기도 하고, 프린스의 퍼플 레인을 떠올리고 들어보기도 합니다.


레드 제펠린을 다시 들으면서 블루스 롹에 대한 아련한 추억의 느낌을 되살리기도 하고 게리 무어의 기타 연주를 들으면서 두통을 달래기도 하죠. 스팅도 좋고 엘튼 존도 좋습니다.


그러다 보니 도대체 왜 나는 살아오면서 이 좋은 음악들을 멀리 했을까 하는 후회가 들더군요. 일하기 바빠서? 그렇게 바쁘게 해서 얼마나 많은 일을 했다고..


환자가 되고 나서 분명하게 다시 깨닫게 되었습니다.


우리는 진짜 뭔가 잘못 살아가고 있는 것 같습니다. 쉴 거 못 쉬고 잘 거 못 자고 하고 싶은 거 다 접어 버리고 도대체 뭘 바라고 그렇게 정신없이 살아왔는지, 이건 분명히 뭔가 잘못된 거라는 생각이 듭니다.


제가 경쟁의 대열에서 자연스럽게 빠져나왔기 때문에 이런 생각을 하게 되는지도 모르겠습니다만, 아무리 냉정하게 곱씹으며 다시 생각해 봐도 우리는, 아니 저는, 그리고 제가 속한 세대의 상당수는 진짜 불행하게 살아온 것 같습니다.


불행한 삶은 죽음보다 더 무서운 것 아닐까요?


제가 괜한 얘길 하는 것 같기도 합니다만, 진심으로 권하겠습니다.


다만 한 순간이라도 바쁜 걸음을 멈추고 과연 우리는 행복하게 살아가고 있는가 하는 점을 다시 되새기며

곰곰 생각해 보시길 권합니다. 


여러분 모두 행복하시길 진심으로 기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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