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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성호 Jan 12. 2018

나에게 쓰는 편지

프로젝트의 시작

제목이 참… 상투적이군요. 


어찌했건간에 “나에게 쓰는 편지”는 제가 야심(?) 차게 기획한, 그러나 야심 따위는 전혀 없는 손편지 프로젝트의 최종 제목이 되겠습니다. 무려 수십 명의 명명 위원들이 모여 머리를 짜낸 결과는 아니고 그냥 오늘 아침에 화장실에 앉아서 제가 생각해낸 구태 의연한 제목 되겠습니다.


생각의 발단은 이렇습니다.


제가 암에 걸린 후 낫투데이 투병일기를 연재하기 시작했는데, 뜻밖에 암환자 본인이나 그 가족분들이 활발하게 응답을 해 오신 겁니다. 그러면서 생각을 해보니  실제로 암에 걸린 환자들의 경험, 그리고 병원에서 미처 알려주지 못하는 여러 가지 작은 노하우들이 있더라는 거죠. 그런 것들은 매우 중요한 정보가 됩니다.
거기다가 환자 본인의 문제를 떠나 가족들의 입장이 되면 더욱 많은 정보가 필요해집니다. 환자를 간호하기 위해, 또 투병하기 위해 시간을 어떻게 내야 하며 정규 치료 이외의 환자 뒷바라지를 위해선 어떤 활동이 필요한가에 대해 환자 가족분들은 정말로 정보 부족에 고통을 겪게 됩니다. 


별것도 아닌 것들, 아주 사소한 팁 하나로 해결 가능한 문제들 조차 모르면 큰 문제가 되는 것이 워낙에 병이 심각하기 때문이겠죠.


그런 실질적인 정보를 떠나 심리적이고 감성적인 문제에 가게 되면 이야기는 한층 더 심각해집니다.


어느 날 갑자기 중환자의 가족이 된다는 것, 환자 본인도 그렇지만 가족의 입장에서도 엄청난 스트레스가 됩니다. 오히려 본인이 아니기 때문에 더 크게 겪는 스트레스도 많습니다.


그런 일들 상당 부분은 경험자의 간단한 조언으로 해결되기도 하는 것을 발견했습니다. 그러나 그런 정보들은 이미 많이 개설되어 있는 암환자 카페에 있기도 합니다. 물론 그런 곳 중 상당수는 뭔가를 팔기 위한 상업성에 오염되고 있다는 문제도 있긴 하죠.


그런 것도 중요하긴 하지만 사실 더 중요한 것은 이런 고통을 겪는 사람이 이 세상에 나 혼자가 아니라는 점, 여기에 또 저기에 나와 비슷한 고통을 겪고 힘겹게 싸우고 있는 사람들이 있다는 점을 깨닫는 것입니다.


어떤 문제에 관해 같은 고통을 겪고 있다는 동질감을 느끼고 연대할 수 있다는 것은 정서적으로 엄청난 힘이 되는 일이기도 합니다.


결국 제가 생각해 낸 것은 이런 사람들의 경험과 그들이 가진 정보를 공유하는 것, 그리고 각자가 느끼는 감성적인 문제들을 털어놓고 대화할 수 있는 그런 기회가 필요하다는 것이었습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할까요?


대화를 해야죠.


그러나 생판 모르는 사람들이 어떻게 대화를 합니까?


그러다 보니 결국은 대중들 사이의 의사소통 방법을 고민하게 된 겁니다.


가장 정서적인 의사소통 방법을 찾아보자, 그러다 보니 편지가 떠올랐고, 특정 수신인이 있는 편지가 아니라 그저 내 경험을 잔잔하게 적어서 다수에게 보낼 수 있는 편지, 그러나 대놓고 다수를 생각하고 쓰는 편지가 아니라 내 경험을 글로 정리해서 나에게 다시 얘기해 주는, 일기 같은 편지들을 써 보는 것이 필요하다는 결론을 얻은 겁니다.


다행히 저는 온라인 상에 글을 쓰는 사람이고 제가 글을 쓰면 꽤 많은 분들이 봐주십니다. 그러니 제가 중심축이 되어 저에게 편지를 보내 주시면 허락을 받고 그 편지를 공유할 수 있는 그런 플랫폼을 만들어 보자는 것에까지 생각이 미치게 되었습니다. 그저 제 역할은 거기까지인 셈이죠. 커뮤니케이션의 매개체가 될 수 있다는 것.  


그래서 손편지 프로젝트를 생각해 내고 사서함을 만들기로 결심을 했습니다. 굳이 사서함이 필요한 이유는 제 주소 역시 개인 정보이기 때문에 함부로 공개할 수는 없거든요. 또 사서함이라는 존재가 추억을 살짝 건드려 주기도 할 것 같고.


그러다 보니 거기서 또 한 칸 더 넓혀서 굳이 환자나 환자가족만 해야 되는가 하는 생각이 따라왔습니다.


어차피 우리 모두는 암환자가 아니더라도 시한부 인생입니다. 무한히 사는 사람은 없기 때문이죠. 시한부의 시한이 몇 개월인가 몇십 년인가 하는 차이만 있을 뿐 시간과 인생 앞에서는 다 똑같은 사람들이거든요.


그래서 인생을 살아가며 느낀 것들을 같이 공유해 볼 수 있는, 그런 판을 만들어 보고 싶어 진 겁니다. 마침 최근에 저는 노항래라는 분을 만나서 “인생노트”라는 것을 접해본 적이 있습니다. 이게 원래는 칠팔십 대 노인분들께서 자신의 삶을 정리하는 내용을 기록하는 노트였거든요.


그게 확대되면서 사오십대들도 자신이 살아온 과정을 정리하고 노년의 삶을 새롭게 기획하는 용도까지 발전하기도 합니다. 최근에는 김미화, 유시민, 안희정 같은 분들도 이 인생노트를 기록해서 공개를 하고 그러기도 했습니다. 그런 인생노트를 우리도 공유해 볼 수도 있겠다 싶었습니다.


그래서 연락해서 아예 인생노트를 협찬을 받아 몇 분께는 나눠 드리려고 준비를 하고 있기도 합니다.


덤으로 여기저기서 남는 다이어리를 모아서 편지를 보내주시는 분들께 나눠 드리고 차분하게 앉아서 자신의 이야기를 써서 정리해 보는 습관을 기르도록 도와드릴 수도 있겠죠. 다이어리를 모았더니 벌써 열 권이 넘게 모였고 더 보내 주겠다고 하시는 분들도 나오고 있습니다.


또 압니까? 차분하게 글 쓸 때 떠오르는 만년필, 만년필 회사에서도 협찬을 해 주신다면 만년필도 나눠 드릴 수도 있겠죠. 요즘은 캘리그래피라고 해서 예쁜 손글씨를 써보는 게 유행인데 그 정도까지는 아니고 그냥 저는 볼펜이 되었건 연필이 되었건 직접 손으로 노트에 차분하게 글을 쓰면서 자신의 감정을 정리하고 자신의 생각을 정리하는, 그래서 궁극적으로 나에게 편지를 쓸 수 있는 그런 기회를 많은 분들과 공유하고 싶었던 겁니다.


이제 준비가 어느 정도 되었으니 시작해 보겠습니다.


여러분들께 제 개인정보를 공개할 필요 없이 편지를 보내실 수 있는 주소를 제공해 드릴 수 있습니다.


경기도 군포 우체국 사서함 10호입니다. 우편번호는 안 써도 될 겁니다. 아니면 경기도 군포 우체국 우편번호를 쓰시면 되겠죠.


그리고, 보내시는 분들도 자신의 주소를 봉투에 쓰실 필요는 없습니다. 만약 저한테서 답신을 받고 싶으시다면 편지 내용에 이메일 주소나 편지를 받을 수 있는 주소를 써 주시면 되겠죠. 이 프로젝트에서 얻게 된 개인 정보는 제가 무덤 속까지 가져가도록 하겠습니다.


저는 환자이기 때문에 느릴 겁니다. 여러분들께서 보내주신 편지들은 천천히 읽어보고 답장을 쓰고 싶어 지면 답장을 쓸 것이며 이 편지는 다른 분들과 공유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면 허락을 받고 손편지 프로젝트 “나에게 쓰는 편지” 공간에 공개를 하도록 하겠습니다. 온라인에 입력을 할지 그냥 손편지를 사진을 찍어 올릴지 아직은 구상 중입니다. 봐서 결정을 하기로 하죠.


그렇게 진행을 해 보도록 하겠습니다.


“나에게 쓰는 편지”를 저에게 보내 주세요.


그리고 나는 혼자가 아니라는 사실을 우리 모두 공유하게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여럿이 모이면 힘이 되거든요. 병과 싸울 힘도 얻고 무엇보다도 인생을 살아갈 힘을 얻을 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서로 도와가면서 말이죠.


그렇게 해 봅시다.


지금부터 시작입니다. 이제 가게에 가셔서 편지지와 편지 봉투를 사고, 드물게 있는 우편취급소에 가셔서 우표를 사세요.


그리고 나에게 쓰는 편지를 써보기로 합시다.


경기도 군포 우체국 사서함 10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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