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부겸 행정안전부 장관 님께
군함도(하시마 섬) 논쟁이 한창입니다. 저도 한마디 거들겠습니다.
영화를 잘 만들었네 못 만들었네, 영화관을 독점했네 안 했네... 이런 건 잘 알지 못해 쓰지 못합니다.
다만 풀리지 않은 의문점을 이번 기회에 짚어보고자 합니다.
취재기 쓰다 말고 이런 글을 쓰는 건 지금이 적기라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군함도 논쟁의 외연이 넓어지면 좋겠다는 마음도 듭니다.
이 글을 김부겸 행정안전부 장관 님이 꼭 읽어주시면 좋겠습니다.
# 여기서 잠깐!
이 글을 이해하려면 이 점을 아셔야 합니다. 국무총리 소속 대일항쟁기 강제동원 피해조사 및 국외 강제동원 희생자 등 지원위원회(이하 대일항쟁기위원회)는 2004년 11월 출범해 2016년 6월 말 활동을 종료했습니다.
이후 행정안전부 과거사관련업무지원단(대일항쟁기강제동원피해조사연구과, 대일항쟁기 강제동원 피해지원과 등)이 업무를 이어가고 있습니다.
장관 님, 결론부터 말씀드리면 우리 정부는 군함도 피해자의 평균 동원 기간은 물론 평균 동원 연령도 모릅니다. 정부는 그간 국외 강제동원 중 사망자(유족)에게는 위로금 2000만 원, 강제동원 중 부상자(유족)에게는 위로금 300만 원~2000만 원, 신고 당시 생존자에게는 매년 2월 의료지원금 80만 원 등을 지급해왔습니다. 군함도 피해자도 예외가 아니지요. 하지만 정부 관료들은 그중 몇 명에게 위로금을 줬고, 몇 명에게 의료지원금을 줬는지 파악할 수 없다고 합니다. 대략적인 비율조차 알아볼 수 없다고 하네요.
제가 애초 궁금했던 건 하시마 섬 피해자 중 현재 생존자 수, 정부에 접수된 하시마 섬 피해자 신고 수, 하시마 섬 피해자 정부 구술 기록이었습니다. 하지만 정부 관료들은 "하시마 생존자 15명의 (간소한) 기록(추후에 공개하겠습니다), 생존자 2명의 연락처 이외에 나머지 자료는 찾을 수 없다, 알 수 없다"는 태도로 일관했습니다. 피해자의 이름, 본적을 비롯해 지극히 사적인 정보를 제외하고 요청했는데도 마찬가지였습니다. 점점 더 알고 싶어졌습니다.
그래서 다각도로 취재해 하시마 섬 피해자 112명의 접수번호/이름을 확보했습니다. 그리고 이들의 본적(시군구까지)/ 생년(연도)/ 동원일/귀국 날짜/동원 기간/동원 형태 : 임금, 저축 여부, 근무시간/폭행 여부 등 관련 자료 현황(명부나 문서, 구술 기록 등)/사할린 이중 동원(동원 여부, 사할린 기업, 사할린 이중 동원 시기)/피해 유형(생존, 현지 사망, 행방불명, 귀환 후 사망)에 대해 물었습니다. 이 모두를 얻을 수 없다면 일부라도 받아내 하시마섬 피해자에 대해 알리고 싶었습니다. 요즘 유행하는 디지털 기사, 그래픽 기사도 쓰고 싶었습니다.
하지만 정부 관료들은 "내용이 방대한 데다 '개인 정보'이므로 알려줄 수 없다"라고 했습니다. "이 논리대로라면 우리의 강제동원 역사는 개인정보라는 이유로 기록될 수 없는 것 아닌가"라고 되묻자 관료는 책임을 회피했습니다. 그리고 이런 말을 덧붙였습니다.
"영화 만드는 사람들도 이 정도로 자료를 요구하지 않았다. 이렇게까지 자료를 요구하는 기자는 처음 본다. 그때 자료(하시마 섬 피해자 15명의 간단한 피해조사 기록) 정도 받았으면 됐지 뭘 더 요구하는가."
네, 좋습니다. 그렇다면 생존자 수, 신고 건수 같은 간단한 수치 자료는 정확하게 받을 수 있는지요.
# 생존자 수는 몇 명?
장관 님, 피해 접수가 끝난 상태에서 군함도 생존자 수가 늘어나는 이 상황을 어떻게 봐야 할까요.
대일항쟁기위원회가 2015년 6월 2일 청와대에 제출한 '일본 유네스코 등재 강제동원 기업에 동원된 피해 생존자 현황'에 따르면 하시마 탄광 생존자는 5명입니다. 반면 대일항쟁기위원회 활동이 종료된 뒤 이 업무를 이어받은 행정자치부 과거사관련업무지원단은 군함도 생존자 수를 6명으로 봅니다.
김부겸 행정안전부 장관 님이 하시마 섬 생존자와 함께 영화 '군함도'를 본 상황을 기록한 한국일보(2017년 7월 26일) 기자도 '살아 돌아온 사람 중 현재 생존자는 6명뿐'이라고 썼더군요. 연합뉴스(2017년 7월 26일) 기사는 "행정안전부는 현재 국내에 있는 군함도 생존자는 6명"이라고 전했고요.
생존자를 6명이라고 보는 건 올 2월 정부로부터 의료지원금을 받은 군함도 생존자가 6명이기 때문일 겁니다. 하지만 엄밀히 말해 생존자는 6명이 아닙니다. 과거사관련업무지원단 관계자는 "6명 중 3명과 연락이 닿았지만 나머지 3명과는 연락이 되지 않아 생존 여부를 알려줄 수 없다"라고 밝혔습니다. 정부와 연락이 닿는 3명은 최근 언론에 군함도 생환자로 소개된 최장섭, 이인우 어르신, 'MBC 무한도전'에 출연한 김형석 어르신입니다.
정부 관료들은 연락이 닿지 않은 3명의 생사는 확인했는지요. 정부 시스템 상으로 피해자의 생사를 확인할 수 없다면 담당자가 발품을 팔았습니까. '연락이 안 되는 군함도 피해자'의 집에 찾아가 생사만이라도 확인했는지 묻고 싶습니다. 만약 그렇지 않다면 '생존자 6명'이란 표현이 사용되는 걸 방조해서는 안되겠지요. 이 작업을 하셨는데 제가 미처 몰랐다면 말씀해주십시오. 정중히 사과드리겠습니다.
아울러 하시마 섬 피해 신고 건수도 궁금합니다. 2012년 대일항쟁기위원회 정부 보고서는 하시마 섬 피해 신고건수를 134건(신고 당시 생존자 수 43명)이라고 적시했습니다. 하지만 2015년 5월 27일 대일항쟁기위원회의 '유네스코 일본 산업혁명유산 등재 신청 대응 관련'보고서에 따르면 하시마 섬 피해 신고수는 112건(신고 당시 생존자 46명)입니다. 반면 올 6월 말 통화한 행정안전부 과거사관련업무지원단 담당 과장은 하시마 섬 피해 신고 건수를 134명으로 파악했습니다.
미시적(?)인 내용을 알 수 없다면 생존자 수, 신고자 수 같은 거시적(?)인 데이터라도 정확히 알고 싶습니다.
# 군함도 피해자 구술 기록은 없다?
장관 님, 우리 정부는 군함도 피해자 구술 '정부 기록'을 찾지 못합니다.
올 3월 초 행정자치부 과거사관련업무지원단에 연락했습니다. 먼저 조사관에게 전화했고, 이후 과거사관련업무지원단에서 과장을 만나 부탁했습니다. "정부가 군함도 피해자에 대해 축적한 자료(구술 기록, 영상기록 등) 일체를 찾고 싶습니다." '일체'라는 단어가 거창하게 느껴지시겠지요. 올 4월 말 저는 군함도 피해자 15명의 (간단한) 피해 조사 기록과 군함도 생존자 2명의 연락처를 받았습니다. 담당자가 그러더군요.
"우리는 이것 이외에는 하시마 섬 피해자 구술 기록을 찾을 수 없다."
수긍할 수 없었습니다. "대일항쟁기위원회에서 일하면서 군함도 피해자를 인터뷰해 구술기록으로 남겼다"는 분을 만났기 때문입니다. 이분은 "군함도 피해자를 인터뷰하는 모습을 영상으로 기록한 자료도 있을 것"이라고 하더군요. 게다가 정부 기록에는 '군함도 피해자 구술 기록'이 언급된 경우가 많습니다. 하시마 섬에 관한 '유일한' 정부 보고서 '사망기록을 통해 본 하시마 탄광 강제동원 조선인 사망자 피해실태 기초조사(2012, 윤지현, 대일항쟁기위원회)'는 이0옥/박0구 구술자료, 최0조/김0조/김0갑/장0식의/박0익/윤0병/김0석/문0진/김0용/류0웅/김0호/장0복/윤0일/황0옥/윤0철/팽0규 피해조사 기록을 인용했습니다.
이 보고서의 각주를 보니 낯익은 책이 보였습니다. 바로 '지독한 이별-사할린 이중징용 진상조사 구술 기록'(2007)'. 대일항쟁기위원회가 발간한 책이었습니다. 저희 집에 있는 이 책에는 사할린으로 갔다가 군함도로 간(이중 배치된) 문갑진(2007년 책 발간 당시 90세). 황의학(2007년 책 발간 당시 87세) 어르신의 구술이 수록돼 있었습니다. 비매품인 이 자료를 일반인들이 찾을 수 있을지 모르겠습니다.
김부겸 행정안전부 장관 님.
영화 '군함도' 시사회에서 군함도 생환자와 함께 영화를 보신 분이니 '군함도'를 모른 척하지는 않으시겠지요.
장관 님은 이날 이런 좋은 말씀을 하셨습니다.
"국민이 영화 '군함도'를 보고 일제 강제동원 피해자의 고통과 아픔을 이해하고 공감하는 계기가 됐으면 한다. 정부는 피해자와 가족의 어려움을 살피고, 국민 눈높이에 맞는 과거사 청산에 최선을 다하겠다"
저는 장관 님께 여쭙고 싶습니다. '진정성 있는 분'이라고 생각해 드리는 질문입니다.
"행정안전부와 과거사 청산은 어떤 연관성이 있습니까. 과거사관련업무지원단은 어떤 역할을 하는 곳입니까."
행정안전부 과거사관련업무지원단 홈페이지에는 주요 업무를 '강제동원 관련 기록물 수집 및 분석-강제동원 관련 국내외 기록물을 수집 분석하여 강제동원 피해사실을 규명하고, 피해조사 및 위로금 지급의 근거 등으로 활용(법 제8조)'이라고 써뒀더군요.
장관 님, 과거사관련업무지원단 관계자들 말마따나 이곳이 대일항쟁기위원회가 하지 못한 나머지 일을 처리하는 곳에 불과하다면 이 같은 거창한 설명은 수정해주십시오.
저는 군함도 피해 조사 기록조차 챙기지 못하는 우리 정부가 진심으로 부끄럽습니다.
다만 과거사 청산을 이끌 새로운 행정안전부 수장만큼은 진심으로 존경하고 싶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