군함도에서 어린 시절을 보낸 구연철 씨 인터뷰(2)
-'신불산' 책에서 선생님은 '하시마 섬 첫인상이 시커맸다, 흉측했다'고 하셨던데요.
=처음에 그렇게 느낀 건 아니고. 도착해서 이틀인가 삼일인가 있다가 아버지가 출근하면서 '저녁에 (내) 옷을 가지고 와달라'고 그러시더라고요. 한 2년 전에 한국에 오셨을 때 정장을 하고 넥타이를 매고 오셔서 아버지가 훌륭한 일을 하시나 보다, 사무직인가 보다 생각했어요. 당시 그렇게 입고 다니는 사람이 드물었습니다. 고관들이나 정장을 했지. 그래, 어머니가 보자기에 아버지 옷을 줘서 노무 사무실로 갔어요. 사무실 입구에 서서 아버지를 기다리는데 내 앞에 새카만 사람이 와 섰더라고. 입술만 빨갛고 눈만 보이는데 '철아, 철아' 하고 부르는데... 집에서는 나를 그렇게 불렀거든요. 쳐다보니까 아버지예요. 내가 '굉장히' 실망했죠.
-아버지 복장이...
=(탄광) 안에는 더운가 봐요. 팬티만 입고. 머리부터 발끝까지 새카매요.
-많이 놀라셨겠어요.
=굉장히 놀랐지요. 탄광이 어떤 곳인지 옳게 모르고 있을 때니까 아버지가 왜 저렇게 새카맣게 됐나 싶고. 보니까 (일 끝내고) 목욕탕으로 가는 사람들이 다 그렇게 새카맣더라고. 오랜 시간 지나면서 탄광 노동자들이 채탄 작업을 하면 저렇게 된다는 걸 알게 됐죠.
-(사진을 보여드리며) 이런 복장이던가요. 다카시마 석탄박물관 전시물을 촬영한 건데요.
=들어갈 때 저런 복장 일지는 모르지만 나갈 때는 그런 복장을 한 사람은 없어요. 위에는 옷도 입지 않고, 반바지 같은 거 하나만 입고 오더라고. 내가 굉장히 실망했죠. 탄광이 있는지 없는지조차 몰랐을 때니까.
-그나저나 학교는 어떻게 하셨습니까.
=조선에서 1학년을 다니다 보니까 바로 전학이 되더라고요. 조선 학교에서 조선어를 못쓰게 했어요. 조선어를 쓰다가 들키면 처벌받았지. (조선) 학교에서는 일본어를 주로 하니까 회화 같은 건 일찍이 했나 봐요.
-소학교 2학년으로 들어가신 건가요. 하시마에 있는 학교 이름이...
=하시마 고등 국민학교. (하시마에는) 중학교가 없기 때문에 이 학교에서 중학교 과정을 하는 겁니다(중학교 대신 고등과라는 이름으로 4년제 약식 학부가 만들어졌다). 지금은 하시마소중학교라고 해둔 건 같더라고요.
-학교 생활 좀 말씀해주시겠어요. 책에는 '조선인 여학생 2명이 더 있었다'고 하셨던데요.
=내 반에 조선인 여학생 2명이 더 있었고. 이름이 뭐더라. 일본 창씨를 쓰니까. 하나는 충청도 애였는데...
-학교 전체에 조선인이 몇 명인지 기억하세요.
=그건 잘 모르고, 우리 반만 알지.
-학생 수가 얼마나 되나요.
=한 반에 50명, 60명 이러니까. 어린 학생들은 두 반인가 되고, 내가 6학년 때는 한 반이었습니다.
-전교생이 대략 500, 600명 되는 건가요.
=그 정도 되는 것 같네요.
-군함도 강제 징용자는 '당시 군함도에 조선인 학생이 있을 수 없었다'고 하시던데요. 학생이 조선인 티를 내고 다니는 건 아니니까... 징용자가 조선인 학생의 존재를 모르는 건가요.
=그렇죠.
-선생님 아버님 같은 일반 노무자는 몇 분이나 됐는지 기억하세요.
=그건 기억 못 해요. 우리는(일반 노무자 가족들은) 사택이라고 해서 2층 연립식 목조건물에 살았어요. 5, 6세대가 붙어 있었는데, (각각의) 세대가 아래층에 방하나, 위층에 방하나 이랬죠. 아버지하고 어머니가 아래층 쓰시고, 할머니 하고 아이들이 위층을 썼습니다. 난 (작년에) 그 집을 가보고 싶어서 (군함도에) 갔는데, 강제징용 온 우리 청년들을 수용하던 아파트 지하도 둘러보고 싶었는데, 못 들어가게 하더라고요.
-사택은 남아있지 않을 것 같은데요.
=그럴 겁니다. 목조 건물이라 오래 유지할 수도 없고요(동영상 참조).
-좀 전에 말씀하신 학교 생활로 돌아가서요. 조선인이어서 차별받거나 한 적은 없으세요.
=차별을 많이 받았는데 차별인지 몰랐지(웃음). 그때 내가 공부를 좀 잘했습니다. 지금은 머리가 둔해져서 그렇지만. 애들 얘기를 들어보면 틀림없이 나보다 공부를 못했다는데 (선생님이) 그 아이한테 1등을 주더라고. (난) 항상 2등, 3등 했고. 내 어린 마음에 참 안 됐대. 내 학년에 오키나와에서 온 학생이 있어서 친해졌어요. 오키나와 사람들은 (일본 사람들과) 좀 달라요. 체구도 다르고, 얼굴도 좀 검고. 이놈아가 집에서 고구마를 삶아오면 내하고 나눠먹었지. 일본 놈들은 줘도 먹지도 않았고.
-다른 애들은 먹지도 않아요?
=예... 우리는(오키나와 친구와 나는) 서로 잘 통하니까 나눠먹고 하던 기억이 나네. 차별은 뭐 많이 받았죠. 한번 왜놈 애들하고 싸움이 붙었는데 (내 학년 애들이) 내한테는 못 이기거든. 하세가와라는 놈이 내한테 좀 맞았지. 그놈아 형이 고등과 2학년인가 그러고 내가 6학년 때 그러니까 그 형이 나보다 2년 선배지. (그 형이 나를) 공작실에 불러서 분풀이를 하는 거야. 내가 공작실에서 많이 맞고 그랬지.
-조선인 학생들을 노역장에 보낸다거나 하지는 않았어요?
=내 선배들이 얼마나 있었는가 모르겠는데 (군함도에) 조선인이 많이 살았거든요. 고등과 졸업하면 대학에 갈 수 있는 애들은 가고, 못가는 애들은 전쟁 말기에 대부분 군에 지원합니다. 17, 18살밖에 안 됐는데 가미카제 특공대 그런데 지원을 하는데, 조선인이나 일본인이나 구별 없이 가고. 나머지는 탄광 노무자로 징발이 되는 거예요. 처음에는 여학생들도 많이 이리 징발이 되는데, 내가 6학년 때 보니까. 고등과 졸업한 사람들이 우리 학교 옆에 선탄장이라고, 탄이 올라오면 돌을 골라내는 컨베이어 벨트로 해서 배에 싣기 전에 불순물 골라내는 곳에서 일하는데, 몇십 명이 양쪽으로 서서 종일 일하면 새카맣게 되더라고.
-선생님 운이 좋으셨네요.
=다행이죠. 학교 다녀서 안 갔으니까.
-학교 일과가 끝나면 몇 시인 가요. 끝나고 뭐하셨어요.
=오후 2시, 3시 되면 마치는데. 여학생들은 뭐하는가 모르겠어요. 남학생들은 공작실에서 공작을 하든가. 무도장에 갔지. 무도장 1층은 유도부 2층은 검도부라서 대부분 이거 연습하러 가지. 고등과 되니까 나무 총을 가지고 훈련하고. 우리 5, 6학년들은 공작실에서 나무를 가지고 뭘 많이 만들었지. 한 번은 운동장에서 뛰노는데 와타나베 선생님인가 싶은데 그 총각 선생님이 '네 조국은 어디야' 물으시라고. 학교에서는 '일본이 내 조국'이라고 배웠으니까 그렇게 답할 수밖에요. 근데 선생님이 내 머리를 쥐어박으면서 '네 고향은 조선이다'하면서 씩 웃으시더라고. 몇 개월 지나니까 그 선생님이 없어져버렸어요. 선생님이 전근 가면 송별회 하면서 여학생들은 울고 안 그렇습니까. 그런 것도 없이 사라지신 걸 보면 선생님이 평화주의자나 사회주의자가 아니었나 싶어요.
-그래도 이 선생님의 말 한마디가...
=내 머릿속에 인식됐죠. 내가 의식을 각성했을 때니까. 평화가 뭔지, 전쟁이 뭔지 조금 알게 됐죠. 전쟁 말기가 되니까 (분위기가) 점점 달라지더라고. 그 전에는 일본인이 침을 팩 뱉습니다.
-누구에게요.
=조선인에게요. 끌려온(징용 온) 사람들은 주간하고 야간이 있으니까, (탄광에) 야간에 들어가는 사람들이 낮에 (길을) 거닐면 일본 사람들이 참으로 (이 사람들을) 무시합니다. 배운 인종들은 좀 낫겠지만 무식한 사람들은 참말로 야만적입니다. 옷도 안 입고 다녀요. 훈도시라는 것 압니까. 벌건 대낮에 훈도시 하나 가리고 활보합니다. 그러면서 조선인 지나가면 팩 (침을) 뱉고 지나가고.
-경멸하는.
=그렇죠. 약간 경멸이 아니라 완전히 경멸하는. 인간으로 취급을 안 한 거죠. 전쟁 말기가 되니까 달라지더라고. 왜 달라지느냐 하면. 이제부터는 징용 온 사람들의 생활에 대해서 얘기를 해야 하는데...
(다음 편에 계속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