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돌고래 Aug 14. 2017

"일본 정부가 세계인에게 사기 치는 게 아닙니까"

어린 시절을 군함도에서 보낸 구연철 씨 인터뷰(3)



구연철 씨 인터뷰를 1회, 2회에 이어 마지막으로 소개합니다.



-선생님은 1939년 군함도에 가셨는데요. 강제 징용 온 사람들은 언제부터 보였습니까.

=1943년 말 되니까 우리집에 청년들이 찾아왔어요. "징용 왔다"고 하더라고요. (청년들이) 아버지하고 얘기하고, 할머니와 얘기하고 그랬지. 20, 21살 이런 사람들도 있고. 내가 어려서 얘기를 들어도 (무슨 뜻인지) 몰랐지만 조선에서 끌려왔다고 하대요. 청년들이 돈 벌러 온 것이 아니라 강제로 끌려왔다는 걸 알았습니다.


-그 전에는 (군함도에) 징용 온 사람들이 없었나요.

=그건 잘 모르는데, (그 청년들이) 우리집에 온 건 43년도쯤에...


-그때를 떠올리면 어떤 생각이 나세요.

=하시마는 물도 식량도 전부 배급을 주는데, 43년 초까지는 그런대로 배급이 괜찮았어요. 그런데 44년 되니까 배급이 줄어집디다. 처음에 (우리가) 갔을 때는 물자가 굉장히 풍부했어요. (두 손바닥을 합치며) 이만한 바나나가 나오는 거예요. 파인애플, 바나나 이런 게 얼마나 많이 나오는지 다 먹지도 못해요. 그런데 배급이 점점 줄어들었어요. 쌀은 줄고 밀이 많이 배급되더라고. 한 번은 부모님이 '야메'를 해야 한다고 했어요.


-야메(일본어 ‘야미’, ‘합법적이지 않은’)?

=불법 거래요. 아버지가 그러대. 일요일에 어머니하고 어디를 같이 다녀오라고. 그러면 어머니랑 같이 배낭 같은 거 짊어지고 가는 겁니다. 아버지한테 한 달에 한 번 작업화가 나옵니다. 지카타비라는 건데.



다카시마 석탄자료관 전시물. 왼쪽이 지카타비라는 갱내 작업화다.


-(사진을 보여드리며) 이건가요?

=이렇게 갈라진 게 이게 맞네(사진 왼쪽). 아버지가 이걸 갱내에서 작업할 때 신지 않고, 모아요. 그럼 그걸 가지고 어머니하고 내하고 일본 농촌에 갑니다. 거기서는 이걸 굉장히 좋아합니다. 살 수도 없고, 농촌에서 신기 편리하고 그러니까. 지카타비 한 켤레를 주면 쌀을 서너 되 받은 것 같아. 어머니가 한 짐 이고, 나도 하나 지고 오는 거지. 이렇게 해서 가져온 쌀로 밥을 해 먹으면 일본 여자들이 자기들도 구할 수 없느냐면서 탐을 내요. 그때 배급이 뭐가 나왔느냐 하면 콩깻묵이 나왔어요.


-강제징용자들은 콩깻묵을 많이 먹었다고 하던데.

=우리 집 옆에 (조선인 강제징용자) 취사장이 있어서 밥 하는 걸 봤어요. 큰 솥에다 밥을 하는데 쌀 하고 콩하고 넣어서 하는 걸 봤어요. 그런데 44년부터는 콩도 쌀도 없고 (강제징용자들에게) 콩깻묵을 맥이더라고.


-콩깻묵이 뭔가요.  

=이건 조선에 없습니다. 만주에 콩이 억수로 많이 나거든요. 일본이 패망하기 전에 군수품이 모자라니까, 그 콩을 가지고 기름을 짰어요. (군수용 기름 짜고 남은) 찌꺼기가 콩깻묵이야. 동물 사료로 하기도 어려운 걸 삶아가지고 맥인 거예요.


일본 오카마사하루 기념 나가사키평화자료관 전시물. 군함도 최초 증언자 서정우 씨는 "(1942년 경) 콩깻묵 80%, 현미 20%로 된 밥과 삶아 부순 정어리를 먹었다"고 말했다


-일반 노무자도요?

=그렇죠. 강제징용자들이 줄을 쫙 서서 그거라도 얻어먹으려고 그릇 하나 들고 있는 걸 봤거든요. 배가 고프니까 그거라도 먹어야 하지 않겠습니까. 그걸 배식하는 걸 여러 번 목격했습니다. 학교 가다 보면 보이니까... 그 청년들이 우리 집에 와서 배고프다고 하소연하면, 할머니가 우리 먹는 것처럼, 콩깻묵 하고 밥을 섞어서 해주면(청년들이) 참 맛있게 먹고 하는 걸 봤어요. 그렇게 비참하게 사는 우리 청년들을 봤습니다. 학교 다니면서 기억나는 것이... 우리가 방파제에 자주 올라갑니다. 다카시마하고 하시마 사이에 나카시마(나카노시마)라는 데가 있는데 거기가 화장장(화장터)입니다.


-어떻게 아셨어요.

=하시마에서 1km 정도 떨어져 있으니까 바로 보이거든요. 하시마에서 나는 탄은 유연탄이에요. 이걸 가지고 불을 때면 연기가 많이 나거든요. 연기가 나면 "(사람을) 또 불태운다", 하고 우리끼리 그랬다고요. 어떨 때는 하루 세 번씩 연기가 올라올 때도 있었어요. 조선 청년들이 죽는 거지.  

 


-강제징용자들을 막 때렸던 거 기억나세요.

=많이 맞는 걸 봤는데... 한 예만 얘기하지요. 학교를 가다 보면 취사장이 있고, 취사장 옆에 노무자들 사무실이 있습니다. 거기서 일하러 갈 사람들을 체크하는 거예요. (오전) 8시가 됐을까. 학교에 가려고 하는데 아우성이 나는 거예요. 그러고 학교에 가서 학교 창문으로 내다보니까 두 사람을 콘크리트 바닥에 눕혀놓고 가죽 혁대 같은 걸로 때리더라고요. (맞는 사람이) 아파서 막 고함을 치는데 딱 보니까 (맞는) 사람이 우리 집에 오는 청년이더라고. 그 청년이 고개를 흔들면서 (나한테) 보지 말라고 하는 거예요. 거 참... 마음이 안 됐대... 얼마나 맞았는지 난도질 친 것처럼 돼 있더라고. 며칠 있다 (그 이유를) 들어보니까 그 청년이 감기 걸려서 일을 못 나가겠다고 해서 꾀병 부린다면서 그렇게 그랬답니다. 우리 민족이 참 너무 조국이 없는 민족... 그때는 조국이나 이런 거 몰랐지만... 그런 광경을 직접 봤습니다. 잊히지가 않아서. 다른 사람 같으면 모를까. 우리 집에 오는 사람인데... 내하고 면(안면)이 있고... 그래도 정이 좀 있는 사람인데 내 마음이 안 좋을 것 아닙니까.


-이런 청년들이 탈출했다는 얘기는 들어보셨어요.

=없고요. 한 번은 애들(친구들) 5,6명이 방파제를 도는데, 가마니를 덮어놨더라고요. 애들이 신기할 것 아닙니까. 가까이서 보니까 발만 보이는 거예요. 일본 애가 "죽은 사람"이라고 얘기하는데 내가 봐도 죽은 사람이야. 나중에 얘기 들으니까 구마모토까지 헤엄쳐 가다가 익사한 사람이래. 조선인이라고 하는데 누군지는 모르지.


-영화 '군함도'는 조선인 징용자들의 탈출을 그린다고 하던데요.

=탈출에 대한 건 그 익사자 이야기밖에 몰라요. 다른 얘기는 못 들었어요.


-아버님께서 어린 아들(선생님)에게 징용자에 대해 얘기하진 않으셨을 것 같긴 해요.

=내한테는 그런 얘기 안 합니다. 다만 그 사람들이 이런 방에 가마니만 깔고 수용돼 있는 건 봤지.


-몇 명 정도 수용됐던 걸로 기억하세요.

=내가 살던 사옥 앞에 아파트가 있었는데, 그 아파트 지하에 몇 명이나 있었나 몰라요. (전국) 각지에서, 팔도에서 끌려온 거니까. 내 짐작에는 1000명 이상 되지 않나 싶다.


 
구연철 씨가 하시마에 대해 설명하며 하시마 지도를 그렸다.


-우리 정부 보고서(사망 기록을 통해 본 하시마탄광 강제동원 조선인 사망자 피해실태 기초조사, 2012)는 조선인 강제징용자를 500~800명으로 추산하던데요.

=아, 그런가요. 그때 아들(애들)이 '도깨비 보러 같이 가자'라고 했어요. 그때 일본 사람들이 중국 사람들을 도깨비라고 불렀거든. 근데 그 사람들 숙소는 철조망을 쳐놔서 안을 볼 수가 없어서 밖만 보고 그랬지. 그 사람들은 더 비참한 것 같애. 옷을 줬는가 안 줬는가 모르겠는데. 모포를 하나씩 둘러가지고 왔다 갔다 하더라고요. 8‧15가 되고 나서 이 사람들이 갑자기 없어졌으니까 (일본인들이 중국인들한테) 수작을 했지 싶다.


-나가사키 원폭 얘기를 좀 해주셨으면 하는데...

=전날(1945년 8월 8일) 공습경보가 내려서 아파트에 있는 사람이고 뭐고 다 방공호로 들어갔어요. 초기에 석탄을 캐던 갱도가 수없이 있는데, 그게 다 방공호가 되는 거예요. 전부다 가마니 하나씩 들고 갱도에 갔어요. 아침에 공습경보가 해제됐다고 해서 집에 왔지. 그때 아침 8시가 됐나 모르겠는데, 불빛이 반~~~ 짝! 하는 거예요. 뇌선 칠 때 섬광처럼, 불빛이 팍! 하더라고. 하늘은 쾌청한데 굉음이 오는 거예요. 조금 있으니까 일본 사람들이 막 쏟아져 나오는 거야. 다들 "뭐냐 뭐냐" 하면서. 사이렌 소리가 막 울리는 겁니다. 공습경보 소리가... 어머니랑 다 같이 밥 솥채 들고 방공호로 들어갔어요. 2시간쯤 있으니까 공습이 해제되는 거예요. 그날은 뭔지 몰랐는데 이튿날 되니까 소문이 났지. B29가 와서 원자탄을 터뜨렸다고... 3일 후에 나가사키에 갔습니다.


-왜 가셨어요.

=하시마에서는 도저히 견딜 수가 없으니까 피난 갈라고. 할머니는 일본 말 못 하니까 내가 할머니 모시고 가는 거예요. 그때 연락선이 와서 타고 나왔는데, 그 큰 미쓰비시 조선소가 흔적이 없어. 뼈도 안 보이더라고. 나가사키 시내 딱 들어서니까 전차 길만 있는 거예요. 건물은 하나도 없어요. 사람도 하나도 안 보이고. 집은 물론이고 물도 안 보이고.  한참 걸어 내(시내)를 건너려고 보는데 다리 밑에 새카맣게 쓰러져 있는 거예요. 사람이 말이지. 사람들이 새카맣게 다 타버렸어. 얼마나 뜨거웠는지... 그 물 있는 데를 와서 다 거기서 죽어버린 거야. 시체가 내를 따라서 깔려 있어. 자꾸 쳐다보고 있는데 할머니는 "이놈아 이거 보면 안 된다고 보지 마라"라고 하는데... 신기할 뿐만 아니라 너무 비참한 생각이 들더라고. 사람이 왜 저렇게 죽었을까.


그걸 보다 지나가는데, 아버지가 적어준 주소를 찾아가니까 우리 고향에서 온 사람이 일찍이 와서 농사를 짓고 살았는가 봐요. 그 집에 와보니까 전쟁이고 뭐고 일본 농촌은 괜찮더라고요. 우째서 식량이 그리 있는가 모르는데 밥도 쌀밥을 해주고 좋더라고요. 이틀인가 삼일인가 있었는데 주인 되는 아저씨가 밖에 나갔다 오는데... "철아 철아 철아 해방됐단다!" 이 이야기를 하더라고. 해방이 뭔지 아나. "해방이 뭡니까" 하니까 "전쟁이 끝났단다" 하는데 그 이야기 들으니까 참말로...


-어떠셨어요.

=앞으로 어떻게 될지 모르지만 반갑더라고. 못 먹고살다가 이제 좀 먹을 수 있는가 하는 생각도 들고.  (아버지 고향 친구가 주신) 쌀을 몇 되인 가 보자기에 싸가지고 왔지. 집에 오니까 해방된 걸 다 알고 있어요. 어머니 아버지도. 근데 왜놈도 안 보이고 징용 온 젊은 사람들도 안 보이고. 그래 우째됐나 몰라요.


-선생님이 하시마 섬을 벗어났을 때 징용 온 조선인들, 중국 사람들이 빠져나갔을지도 모르겠네요.

=그랬을지도 모르죠.


일본 나가사키관광안내소, 오하토터미널 등지에서 배부한 안내문. 조선인은 물론 중국인 강제징용자에 대한 언급은 없다. 현재 군함도를 방문하면 극히 일부(빨간표시)만 둘러볼 수 있다


-선생님은 왜 군함도에 대해 얘기하고 싶으셨습니까.

=작년 10월에 (군함도에) 갈 때는 기대가 컸습니다. 우선 내가 살던 집이 고대로 있는가 없는가 보고 싶고. 또 하나는 내 학교가 5년 이상 학교를 다녔으니까 학교를 가고 싶고, 또 우리 강제징용에 끌려온 청년들이 살던 곳을 둘러보고 싶고... (하시마 섬을 떠난 지) 70여 년이 지났는데 내 생애 (하시마를) 마지막으로 둘러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그래서 갔는데 (하시마 섬의) 출입구, 영광의문 지옥의문 하는 곳을 딱 막아서 못 들어가게 하고 계단으로 가게 했더라고. 거기를 가야 하시마의 첫인상을 알 수 있는데. 같이 창원 서울 (사람들이) 이래 가지고 20명이 같이 갔는데 그 사람들에게 설명해주고 싶은데... 설명을 못하는 거예요.


-그 느낌을 갖게...

=그렇죠. 한번 들어가면 못 나오는 굴이다, 여기를 지나면 다시는 나올 수 없는 곳이다, 하는 걸 심어주고(알려주고) 싶었는데 못 들어가고 그래 가니까, 멀리서 하시마를 보는 거예요. 선착장이나 노무 사무실, 수직으로 내려가는 엘리베이터 있는 데라든가, 목욕탕이고 탈의장이고 전기충전소도... 내가 설명을 해주고 싶었는데 전혀 못 들어가게 되더라고. 영화관이나 배급소나 아이스케키 사 먹었던 조그만 슈퍼도 안내하고 싶은데... 내 집을... 징용 끌려온 청년들의 수용소를... 우리 학교고 병원이었다는 걸 얘기하고 싶었는데 못 들어가게 하니까 실망한 것 아니겠습니까. 기대하고 갔는데 실망했습니다. 그래서 이래 얘기합니다.


-군함도가 유네스코 산업문화유산에 등재됐는데, 어떻게 생각하세요.

=이 하시마를 유네스코에 등재를 해서 세계관광지로 만들었습니다. 근데 뭘 보고 갈 거냐, 사람들이 와서. 이 군함도가 깊은 역사적인 사실들을 가지고 있는데, 그걸 관광 온 사람들이 보고 느끼고 그리 가야 하는데, 못 들어가게 막아놨으니까 이게 무슨 관광지냐. 당신들 일본 정부는 완전히 사기친 거다. 당신들 일본 정부는 일본 국민들뿐 아니라 세계인들에게 사기 치는 게 아니냐고 항의하고 싶습니다.  


작가의 이전글 "야만적인 사람들은 징용자에게 침을 팩 뱉었습니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