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최윤아 Jul 19. 2023

육아란, 존재에 그림자를 새기는 일

엄마 `하는 마음' (2) 

36시간, 500km. 짧고 굵은 여행을 다녀왔다. 내게 별을 보여주고파 하는 유일한 사람, 전 직장 동료 A와 함께. 이상하리만큼 아기 생각이 나지 않았다. 속으로만 삭였던 수많은 말들을 토해냈고, 쑤신 삭신을 뜨끈한 물에 오래 담갔으며, <2023 젊은 작가상>을 읽으며 "어른의 문장"에 하염없이 젖어들었다. 황홀한 휴식이었다. 

 돌아오는 길, 서울에 진입하자 그제야 아기 생각이 났다. 퇴근하는 남편을 두 다리를 오므렸다 폈다 강종강종 거리며 강아지처럼 반겨주는 내 딸. 아기 특유의 온몸을 던지는 그 환영 인사를 이번엔 내가 받아보겠구나 내심 기대했다. 

 그러나 활짝 웃으며 현관에 들어선 내게 돌아온 것은 격한 환영이 아니라, 격렬한 울음과 단호한 외면이었다. 아기는 사납고, 서럽게 울었고 나와 눈을 마주치려 하지 않았다. 배고파서, 졸려서 우는 '타령조' 울음과는 확연히 구별됐다. 아기는 존재를 내던지며 울고 있었다. 분노, 원망, 미움만이 차례로 읽혔다. 

 36시간. 네번의 낮잠과 한번의 밤잠. 아홉번의 수유의 시간. 그 짧은 부재가 이토록 원한을 살 일인가. 당혹감 뒤 찾아오는 억울한 마음. "그래봤자 하룻밤 없었어~" 혀짧은 소리로 항변했지만 울음은 이내 경기로 치달았다. 남편 품에서는 진정되던 아이가 내 얼굴만 보면 자지러졌다. 숙소였던 라마다호텔에서 귀신이 붙어왔나 싶을 정도였다. (아기 눈에는 귀신이 보인다는 말도 있지 않나) 결국 나는 아기의 시야에서 사라지기 위해 작은 방에 몸을 숨겼다. 그리고 곱씹었다. 이 아기는 왜 이렇게까지 우는가. 나는 무슨 '가해'를 저지른 것일까.

 사실상 야반도주 같던 헤어짐이었다. 출발 4분전까지 긴박하게 분유를 먹이고, 트림을 시키느라 제대로 작별인사도 나누지 못했다. "엄마, 스트레스 좀 풀고 올게. 하룻밤만 아빠랑 자고 있어!" 여행의 기대감에 젖어 아기의 동그란 눈을 건성으로 지나쳤다. `꺽' 소리가 나자마자 부리나케 눕혀두고 집을 나섰다. 아기 입장에서는 별안간의 부재였고, 잠수이별이었을 거다. 그 후로 사라진 엄마. 

 아기의 울음은 잠으로 겨우 멎었지만 다음날 본 얼굴은 묘하게 달라져 있었다. 햇살 같기만하던 얼굴에 그늘이 감지됐다. 그 그늘을 보니 '수심'이라는 노회한 단어가 떠올랐다. 수천번의 토닥임, 수백 시간의 안아줌으로 아기에게 안전하다는 감각을 끊임없이 선사했던 엄마의 돌연한 부재가 한 존재에게 지워지지 않는 빗금을 그어버린 것 같았다. 사랑은 이별이고, 의지는 불안이라고. 사랑은 사랑이고, 의지는 의지이던 직선의 세계가 그 작은 존재안에서 마구 엉켜버린듯 했다. 


 "나도 엄마 사랑해. 그래서 힘들어. 근데 엄마, 내가 머리가 나빠서 잘 모르는 거야? 사랑하는 게 왜 좋고 기쁘지가 않아? 사랑해서 얻는 게 왜 이런 악몽이야? 사랑하지 않으면 이렇게 안 힘들어도 되는데, 미워하면 되는데, 왜 우린 사랑을 하고 있어?"


 권여선 단편 '실버들 천만사' 속 딸 '채운'은 엄마 '반희'에게 쏟아내는 말. 엄마는 딸이 고등학교 2학년 때 이혼 후 집을 나갔고, 이후 한번도 딸을 자신의 집에 들이지 않을 정도로 곁을 주지 않는다. 딸의 제안으로 떠난 1박2일 모녀 여행. 술에 취한 딸은 숨을 헐떡이며 엄마에게 이렇게 울부짖는다. 엄마의 부재(가출)를 이미 겪은 딸은, 앞으로 겪을 부재(죽음)를 예감하는 일만으로도 공황증세를 보이고 있다. 그런 딸을 보며 엄마는 다짐한다. 

 "사랑해서 얻는 게 악몽이라면, 차라리 악몽을 꾸자고 반희는 생각했다. 내 딸이 꾸는 악몽을 같이 꾸자. 우리 모녀 사이에 수천수만 가닥의 실이 이어져 있다면 그걸 밧줄로 꼬아 서로를 더 단단히 붙들어매자."

 

 먹이고, 씻기고, 재우고... 도돌이표 같은 일과로 구성된 하루하루를 흘려보내다보면 언젠가 아기가 기고, 앉고, 서고, 걷고, 말하고 하는 게 육아겠거니 단순하게 생각하려했다. 한 존재를 완성해내는 일이라고 생각하면 너무 대단한 일이어서 엄두를 내지 못할 것 같아서. 그러나 아무리 단순화하려 애써도, 육아가 결코 그런 일이 될수는 없다. 한 인간의 영혼에 빗금을 긋는 일, 그럼으로써 존재의 핵심인 그림자를 만들어내는 일이 육아라는 걸 겸허하게 받아들일 수 밖에 없는 것이다. 


작가의 이전글 아기를 재우다 나의 꿈이 잠들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