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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윤아 Feb 22. 2024

독박육아에 해피엔딩은 없다

독박육아 1년, 내 안에서 사라진 것들

30대 후반, 40대 초반 정도로 보이는 남성 의사 앞에 앉았다. 그의 넷째 손가락에는 실반지가 옅은 빛을 발산하고 있다. 결혼은 했겠구나. 안도하며 입을 열었다. 말보다 눈물이 먼저 쏟아져 나왔다. 눈물 콧물 쏟으며 말하지 않겠다고 이상한 오기를 부려보았으나 소용 없는 일이었다. 진료실에 각 티슈가 괜히 있겠나 싶어 자포자기한 채 말문을 열었다.

"남편에 대한 원망감 때문에 힘들어요."

"언제부터 그랬나요?"

"육아를 전담하면서부터요."

아기가 100일 막 지났을 무렵, 남편은 식탁을 치우는 내게 인사 이동이 있을 거라고 말했다. 연차·휴가를 쓸 수 없고, 아침 9시30분에 출근해 저녁 9시30분에 퇴근하는 보직으로. 명백한 승진 인사였지만 나는 싱크대 앞에서 그대로 주저앉았다. 내가 아프거나, 아기가 아픈 응급상황에서 기댈 언덕이 없어진다는 뜻이었다. 내가 먼저 육아휴직을 쓴 후 남편이 바톤을 이어받기로 했는데 이 계획도 물거품이 됐다.

 회사의 결정을 거부할 수 없다는 게 남편의 의사였는데, 나는 그런 태도가 비겁하고 무책임하게 느껴졌다. 그로부터 8개월, 나는 분노조절장애와 우울감을 호소하며 정신과에 제발로 찾아갔다. 취준생 시절 일시적인 불면증으로 처음 정신과를 찾았던 이후 11년만에 재방문이었다.

◆'강박육아'가 자라는 최적의 환경 독박육아

정신과 진료의 트리거가 된 사건은 사흘 전 발생했다. 여느 때처럼 '입꾹닫'하며 이유식을 먹지 않던 돌쟁이를 향해 나는 "으악"하고 소리를 지르고 내 머리칼을 쥐어 뜯었다. 태어났을 때부터 저체중이던 아기는 분유에 이어 이유식까지 내 욕심만큼 먹어주지 않았다. 영유아검진이 코 앞이었다. 하위 10% 따위가 찍힌 성적표를 받기 두려웠기에 늘 쫓기는 심정이었고, 매 끼니가 긴장·초조의 연속이었다. 그러다 이성의 끈을 놓쳤고, 그대로 블랙아웃. 정신을 차려보니 나는 바닥에 내 머리를 찧으며 울고 있었고, 아기는 경기하듯 울고 있었다.

 아기가 왜 이렇게 작냐, 가볍냐, 말랐냐. 적의없는 타인의 말들이 모두 나를 향한 비난과 비웃음처럼 느껴졌었다. 혼자 키워서 독박육아가 아니라, 아기를 잘못(?) 키우면 그 책임을 모두 '독박쓴다'고 해서 독박육아인거구나 생각하는 날도 잦았다. 시가에서 아기가 많이 울거나 보채면 괜히 얼굴이 화끈거렸다. 내 무능이 만천하에 까발려진것 같았다. 혼자 키우니 책임을 회피하고 빠져나갈 구멍이 없었고, 모두 내 탓 같았다. 이런 책임감은 강박으로 이어졌다. 아침저녁으로 아기 체중을 쟀고, 1시간 넘게 아기에게 숟가락을 디미는 날이 다반사였다. 잘 먹는 날은 자기효능감으로 고양됐다가 잘 안 먹으면 무력감과 자괴에 빠졌다.

◆육아의 기쁨도 느끼지 못하는 '독박육아 불감증'

그렇게 '육아'보다는 '사육'에 가까운 시간을 보내고 있을 무렵, 친언니가 나를 보러왔다. 언니는 내게 물었다. "○○(조카)이랑 그렇게 잘 놀아주고, 그렇게 잘 이해해주던 너는 어디갔어?" 조카를 워낙 예뻐해 딩크 결심까지 깨고 아기를 낳은 내가, 정작 내 자식에겐 상당히 건조해 놀랐다는 얘기였다. 복기해보니, 나도 모르는 새 굳은 표정, 지시형 말투, 형식적인 상호작용이 기본 모드로 자리잡고 있었다. 육아에도 분명 기쁨이 있을진데, 그 기쁨을 더 자주 맛보고 싶어 아기를 낳았는데, 정작 그 기쁨을 느끼지 못할 만큼 나는 지쳐있었던 것이다. 먹여야 한다, 재워야 한다, 씻겨야 한다... 기본만 해결하기에도 숨 찼기에 아기의 모든 첫 순간들에 벅찬 기쁨을 느낄 여유가 없었다. 애초에 '강박'과 '충만'은 양립이 불가능하다. 독박육아가 활성화시킨 나의 강박 성향은 불감증을 가져왔고, 육아는 그렇게 시든 노동이 되었다.

◆나는 그렇게 표독스러운 아내가 되어갔다

누군가를 미워하는 감정은 밖으로 발산만 되지 않는다. 내면으로 스민다. 육아가 고단할 때면 문제의 인사이동을 수락한 남편에 대한 원망감이 순식간에 나를 휘감았다. 툭탁 거리며 설거지를 하는 내 뒷모습에서 아마 독이 스며나왔을 거다. 남편이 사랑했던 나의 모습 -환한 미소와 애교, 다정함-은 진작 사라져버렸다. 그는 내가 하는 독기 서린 말에 다쳐 서서히 멀어져갔다. 코너로 몰린 쥐가 상냥하길 바라느냐며 그를 쏘아 붙였던 기억이 난다. 의 독박육아는 그렇게 파국을 맞았다.

 독박육아에 해피엔딩은 없다. 남편은 홀로 육아를 전담하는 아내를 안쓰러워하고, 아내는 그런 남편의 애정에 힘을 얻고, 그 힘으로 심기일전해 사랑으로 아기를 키워내는 '애정의 선순환'은 발생할 수 없다. 매일 아슬아슬하게 사선을 넘나드는 아내는 남편을 원망하고, 남편은 사납고 표독스럽게 변한 아내에게 질려버리는 '원망의 악순환'이 발생하는 게 훨씬 현실적이다. 그리고 이 과정에서 모든 것을 포기하고 홀로 아기를 키운 공을 누구에게도 인정받지 못한 아내는 극심한 공허함과 억울함에 시달린다. 그렇게 많은 엄마들이 병원을 찾는다. 그날 내가 만난 의사는 "혹여 아기에게 나쁜 영향을 미칠까봐 병원을 찾는 엄마들이 많다"고 했다.  독박육아를 하며 쌓인 내 안의 독을 50분에 8만원, 알약 2알로라도 해독하고 싶은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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