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최윤아 Jan 17. 2019

분노 사용설명서

아무리 화내고 싸워도 변하는 게 없을 때 

밤늦게 타는 택시는 언제나 저를 예민하게 해요. 도로에 차가 없으니 F1 경기하듯 달리거든요. '5분 먼저 가려다 영영 먼저 간다'는 고속도로 경고판에 감탄하는 저 같은 겁쟁이에게 총알택시는 장전된 총을 마주하는 것 같은 공포감을 줘요.

 그날도 그랬어요. 차 문을 닫자마자 택시는 무서운 속도로 내달리기 시작했죠. 손잡이를 잡은 손은 금세 축축해졌고, 저는 룸미러와 백미러 계기판을 번갈아 노려보느라 멀미가 날 지경이었어요. 급기야 화가 나더라고요. 참다못해 한 마디 했어요. "기사님, 저 하나도 안 바쁜데 좀 천천히 가주실래요? " 반사적으로 앙칼진 목소리가 튀어나왔어요. 

"아이고 그랬어요? 난 아가씨 피곤해 보여서 얼른 집에 가서 쉬라고 빨리 달렸네. 일찍 말하지 그랬어요. 거의 다 왔는데…" 

더없이 다정한 기사님의 목소리. 정신을 차려보니 집 앞 이대요. 그때 알았어요. 분노에도 타이밍이 있다는 것을. 

 그러나 인간이란 본디 같은 실수를 반복하는 법. 크리스마스, 저는 '타이밍 놓친 분노'로 또다시 인간임을 증명하고 말았어요. 겨우 보쌈 정식 때문에요. 배달된 포장 욕기 속 고기는 스무 점이 넘었는데 보쌈김치는 젓가락질 세 번(맹세컨대 과장이 아니에요)만에 끝나더라고요. 벼르고 벼르다 시킨 '보쌈의 비대칭성'에 화가 난 저는 '이건 좀 심하다, 항의를 해야겠다'고 씩씩 거리는데 남편은 쳐다도 안 보고 먹기만 하더라고요. 순간 알았어요. 제 마음속 깊은 곳에 매설돼 있던 분노 지뢰를 방금 그가 밟았다는 걸. 

"오빠는 어쩜 이렇게 무관심해? 내가 왜 이렇게 사소한 일에 파르르 하는지 궁금하지도 않아? 요즘 '내 세계'에서 어떤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 알아? 요즘 내 마음이 어떠냐고 한 번이라도 먼저 물어봐 준 적 있어?" 

 그즈음 저는 침대에 스며들어 사라지고 싶을 정도로 무기력했고, 사는 게 점점 더 가파른 오르막 같다는 생각에 사로잡혀 있었어요. 초저녁부터 누워서 핸드폰만 보다 잠들어버리고, 요가 매트 한 번을 안 펴고, '자기만의 방'은 늘 닫혀있고, 매일 밤 맥주를 들이켜고. 인생이 또다시 꼬여간다는 무서운 예감, 바로 옆에서 아내가 상해가는데도 무신경한 남편에 대한 서운함을 억누르고 또 억누르던 차, 엉뚱한 '보쌈김치'에 불꽃이 일더니 급기야 걷잡을 수 없게 번져나가더라고요. 지뢰 파편처럼 흩어지던 눈물 콧물. '왕궁의 음탕'이 아니라 '기름덩어리 갈비탕'에 폭발해 버린 자신에 대한 수치심. 그때 또 하나 알았어요. 분노는 '제 때'에 '제대로' 표출해야 한다는 것을. 

mbc '무한도전' 캡처. 늘 점잖던 유 부장은 부하 직원이 탕수육 소스 붓자 이성을 잃고 화를 내기 시작한다

 돌이켜보니 여태 파르르 화낼 줄만 알았지, 화를 '제대로' 다뤄본 적이 없더라고요. 욕하면서 식히거나, 엉엉 울며 분출시키거나 둘 중 하나였죠. 손가락 뼈마디가 아프도록 동료들과 메신저로 회사 흉을 봤고, 그래도 분이 안 풀리면 가족이나 친구에게 당시 상황을 브리핑하며 제 분노의 정당성을 인정받으려고 했어요. 그러고 나선 퉁퉁 부운 눈을 하고, 아무것도 달라지지 않은 그 관계 속으로 터덜터덜 돌아갔죠. 

  <무엇이 여자를 분노하게 만드는가>(해리엇 러너·부키)는 이런 습관으로는 아무것도 바꿀 수 없다고 말하는 책이에요. 저명한 심리학자이자 페미니스트인 저자는 말해요. 분노로 바꿀 수 있고, 바꿔야 하는 건 오직 '나 자신'뿐이라고. 내가 변해야 나를 분노하게 만든 상대방과 관계도 도미노처럼 변한다고. 타인을 비난하는데 분노 에너지를 '낭비'하지 말고, 자신의 입장을 또렷이 하는데 분노 에너지를 '활용'하라고. 

 이를테면 이런 거예요. 내 조상도 아닌데 명절에 시댁 가서 전을 부쳐야 하는 상황에 분노한다면, 그 분노를 자신의 입장(여성에게만 주어지는 명절 노동에 동의할 수 없는 이유)을 세밀하게 가다듬고, 그에 걸맞은 행동 원칙을 세우며, 상대방이 어떻게 저항해도 자신의 입장을 유지할 수 있게끔 심지를 굳히는 데 쓰라는 거죠. 보통은 남편과 대판 싸우고, 명절이 끝나고 친구들과 모여 한바탕 성토대회를 벌인 뒤 다음 명절에 다시 그 불합리 속으로 들어가는 패턴을 반복하잖아요. 저자는 말해요. 싸워봤자 소용없다고 체념한 여자, 싸우다가 울어버리는 여자는 모두 '분리'에 대한 공포 때문에 입으로는 '변화'를 말하면서도 무의식적으로 그 반대 방향으로 행동할 가능성이 크다고. 

파탄과 분리에 대한 무의식적 두려움이, 자신의 분명함을 유지하고 또 분노를 자신을 위한 새로운 입장이나 행동을 취할 도전 기회로 사용하는 것을 가로막는다.      p. 142 

 반대로 분노로 무언가를 바꿔 본 사람들은 늘 자신이 먼저 변했다는 공통점이 있어요.  <며느리 사표> 작가 영주님은 시부모님께 사표를 내밀며 먼저 자신의 변화를 공표했고, <1밀리미터의 희망이라도> 작가 박선영 님은 '어머님 그동안 너무 고생하셨다, 이제 전은 저희가 알아서 하겠다'며 시어머니가 평생 들었던 뒤집개를 남편에게 건넸다고 해요. 이 책의 추천사를 쓴 여성학자 정희진은 말해요. 

인간은 요구나 투쟁이 아니라 상대방이 기존과는 다른 반작용(re/action)을 행사할 때 변화한다. 

 더 이상 저는 택시 속 말없는 고슴도치가 되지 않아요. 대신 타자마자 이렇게 말해요. "기사님, 어젯밤 꿈이 너무 안 좋아서요. 천천히 가주세요." 괜히 분노를 억누르다가 악의 없는 기사님을 당황시켰던 전례를 반복하지 않기 위해 저는 '제 때'에 '제대로' 말하는 법을 하나씩 배워가는 중이랍니다. 

매거진의 이전글 이상한 '정상 인생'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