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상 궤도에서 나만 이탈한 것 같아 불안할 때
"나에게 30대는 '파르르 경련하는 시간'이었다."
어떤 말은 천천히 다가오지 않고, 와락 껴안아 버려요. 권여선 작가가 한 라디오 방송에 출연해했던 이 말이 제겐 그랬어요. 부연 설명을 하기 위해 작가가 잠시 말을 고르던 3초 남짓한 시간, 저도 숨을 멈추고 온 신경을 귀로 집중했어요. "제가 뭘 하고 싶은지와, 사회가 내게 요구하는 것 그 둘이 굉장히 폭력적으로 맞붙었어요." 이어지는 작가의 말에 몸을 떨었어요. 꼭 제 얘기 같아서요.
'퇴사하고 뭐가 가장 아쉬웠냐'는 질문을 가끔 받아요. 그때마다 이렇게 대답해요. '장례식장 조화'가 가장 아쉬웠다고. 퇴사하고 외할머니가 돌아가셨어요. 아빠, 삼촌, 외숙모, 사촌 오빠 앞으로 차례로 조화가 배달됐죠. 당연히 제 앞으로 온 조화는 없었고요. 그게 그렇게 서럽더라고요. 조화는 어떤 도장 같았어요. 당신은 주류, 정상의 삶을 살고 있다고, 쾅하고 찍어주는 '참 잘했어요' 도장. 각별했던 외할머니와 이별하고 정신 못 차리게 슬펐는데, 그 순간만큼은 불안감이 슬픔을 압도하더라고요. '이렇게 살아도 괜찮을까. 나 혼자 정상 궤도를 이탈한 건 아닐까.' 그 질문은 아직 살아 있어서 글을 쓰고 강의를 하다가도 불쑥불쑥 나타나 제 일상을 휘저어 놓곤 태연히 사라져요.
이성애자, 기혼자, 부모, 정규직. 이 사회가 토 달지 않고 '정상'으로 승인하는 기준들이죠. 이 가운데 하나라도 놓치면 타인으로부터 걱정 어린 시선을 받게 돼요. 결혼은 했으나 애는 없고, 근사한 사무실이 아니라 카페로 출근하는 저는 종종 그런 시선들에 베어요. '세상의 기준'은 그 자장(磁場)이 너무 세서, 그 근처만 가도 긴 시간 어렵게 세운 '내 기준'이 맥없이 휘어져 버리더군요. 그럴 때면 약을 찾듯 책을 찾아요. 불안에 떨며. 파르르 경련하면서.
그렇게 책을 찾다 제목에 이끌려 '이상한 정상가족'을 읽었어요. 책을 한 줄로 요약하면 이쯤 될 것 같아요. '정상성에 대한 완강함이 모두를 병들게 한다.' 결혼한 아빠·엄마, 자녀로 구성된 가족만을 정상으로 수용하는 이 사회의 '정상가족 이데올로기'가 그렇지 않은 가정(이혼·비혼·한부모·조손·다문화 등이겠죠)을 비정상으로 몰아 사회에서 지워버리고, '정상가족' 내부에서 발생하는 비정상적 사건(체벌, 학대, 동반자살)을 은폐한다는 내용이 담겨 있어요. 저는 모든 텍스트를 '현재 내가 하는 고민'이라는 프레임으로 읽어버리는 버릇이 있거든요. 자꾸만 '정상가족 이데올로기'가 '정상 인생 이데올로기'로 읽히더라고요. 따져보니 말이 되더라고요. 게다가 이렇게 바꿔 읽어도 '모두가 병든다'는 점은 같았어요.
'정상 인생'에 대한 완고함은 정상의 테두리 안에 있는 사람은 불행으로, 테두리 밖에 있는 사람은 불안으로 내몰아요. 매일 직장인 1.5명이 스스로 목숨을 끊고, 해마다 55만 명의 직장인이 정신질환을 앓아요.(2016년/국민건강보험공단·근로복지공단) 저마다 사정이야 조금씩 다르겠지만, 직장이 아니라 자기 자신을 놓아버리는 사람이 이렇게나 많다는 건 '테두리 밖' 삶에 대한 공포가 극심하기 때문이지 않을까 저는 조심스레 짐작해요. '모르는 불행'을 견디느니 '아는 불행' 속에 있겠다는 거죠. 제가 그랬거든요. 간판 떼어진 내가 쇠락한 도시의 슈퍼마켓처럼 처량할까 봐 마음이 폐허가 되고 있는데도 버텼어요. 결국 완전히 무너지고 나서야 회사를 나왔고요.
'정상 인생'이란 편협한 테두리를 벗어나 내 갈 길 가겠다고 호기롭게 나선 지도 2년이 지났어요. 그러나 저는 여전히 멈춰 설 때가 많아요. 불안이 발목을 잡죠. '회사에서 한 창 몸값을 높여야 할 때가 아닐까''과연 언제까지 나한테 기회가 올까''가임기 얼마 안 남았는데….' 저는 이토록 바보같이 '정상 인생'의 손아귀에 잡히고 도망치고 또 잡히고 또 도망치는 짓을 반복한답니다.
'이상한 정상 인생'의 사회에서, 이미 그 정상의 테두리를 벗어난 나는 어떻게하면 파르르 경련하지 않고 살 수 있을까 고민하는 나날이에요. 다행히 그날, 절박한 심정으로 들었던 방송에서 작은 힌트를 얻었어요.
"또 다른 청탁이 올 수 있는 여건이 아니었기 때문에 이번이 내 인생 마지막 소설이다 생각하고 썼어요. 쓰는데 너무 행복해서, 기쁜 눈물을 그렇게 흘렸어요. 그러면서 '내가 글 쓰는 걸 참 좋아했구나. 왜 내가 30대를 나를 구박만 하면서 보내고 내가 하고 싶은 걸 하지 않고 못한다고 생각했을까…"
등단하고 첫 책을 낸 뒤 8년 동안 청탁이 없어 공백기를 가졌던 권여선 작가는 '몰입'으로 지긋지긋하던 30대의 경련을 멈췄다고 해요. 할 수 있을까 없을까, 해도 될까를 재지 않고 일단 '달려드는 것', 그게 아찔한 궤도를 막 빠져나온 초보탈주자가 추락하지 않게 잡아주는 끈이라는 걸, 오늘도 이렇게 아슬아슬하게 알아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