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무리 화내고 싸워도 변하는 게 없을 때
밤늦게 타는 택시는 언제나 저를 예민하게 해요. 도로에 차가 없으니 F1 경기하듯 달리거든요. '5분 먼저 가려다 영영 먼저 간다'는 고속도로 경고판에 감탄하는 저 같은 겁쟁이에게 총알택시는 장전된 총을 마주하는 것 같은 공포감을 줘요.
그날도 그랬어요. 차 문을 닫자마자 택시는 무서운 속도로 내달리기 시작했죠. 손잡이를 잡은 손은 금세 축축해졌고, 저는 룸미러와 백미러 계기판을 번갈아 노려보느라 멀미가 날 지경이었어요. 급기야 화가 나더라고요. 참다못해 한 마디 했어요. "기사님, 저 하나도 안 바쁜데 좀 천천히 가주실래요? " 반사적으로 앙칼진 목소리가 튀어나왔어요.
"아이고 그랬어요? 난 아가씨 피곤해 보여서 얼른 집에 가서 쉬라고 빨리 달렸네. 일찍 말하지 그랬어요. 거의 다 왔는데…"
더없이 다정한 기사님의 목소리. 정신을 차려보니 집 앞 이대요. 그때 알았어요. 분노에도 타이밍이 있다는 것을.
그러나 인간이란 본디 같은 실수를 반복하는 법. 크리스마스, 저는 '타이밍 놓친 분노'로 또다시 인간임을 증명하고 말았어요. 겨우 보쌈 정식 때문에요. 배달된 포장 욕기 속 고기는 스무 점이 넘었는데 보쌈김치는 젓가락질 세 번(맹세컨대 과장이 아니에요)만에 끝나더라고요. 벼르고 벼르다 시킨 '보쌈의 비대칭성'에 화가 난 저는 '이건 좀 심하다, 항의를 해야겠다'고 씩씩 거리는데 남편은 쳐다도 안 보고 먹기만 하더라고요. 순간 알았어요. 제 마음속 깊은 곳에 매설돼 있던 분노 지뢰를 방금 그가 밟았다는 걸.
"오빠는 어쩜 이렇게 무관심해? 내가 왜 이렇게 사소한 일에 파르르 하는지 궁금하지도 않아? 요즘 '내 세계'에서 어떤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 알아? 요즘 내 마음이 어떠냐고 한 번이라도 먼저 물어봐 준 적 있어?"
그즈음 저는 침대에 스며들어 사라지고 싶을 정도로 무기력했고, 사는 게 점점 더 가파른 오르막 같다는 생각에 사로잡혀 있었어요. 초저녁부터 누워서 핸드폰만 보다 잠들어버리고, 요가 매트 한 번을 안 펴고, '자기만의 방'은 늘 닫혀있고, 매일 밤 맥주를 들이켜고. 인생이 또다시 꼬여간다는 무서운 예감, 바로 옆에서 아내가 상해가는데도 무신경한 남편에 대한 서운함을 억누르고 또 억누르던 차, 엉뚱한 '보쌈김치'에 불꽃이 일더니 급기야 걷잡을 수 없게 번져나가더라고요. 지뢰 파편처럼 흩어지던 눈물 콧물. '왕궁의 음탕'이 아니라 '기름덩어리 갈비탕'에 폭발해 버린 자신에 대한 수치심. 그때 또 하나 알았어요. 분노는 '제 때'에 '제대로' 표출해야 한다는 것을.
돌이켜보니 여태 파르르 화낼 줄만 알았지, 화를 '제대로' 다뤄본 적이 없더라고요. 욕하면서 식히거나, 엉엉 울며 분출시키거나 둘 중 하나였죠. 손가락 뼈마디가 아프도록 동료들과 메신저로 회사 흉을 봤고, 그래도 분이 안 풀리면 가족이나 친구에게 당시 상황을 브리핑하며 제 분노의 정당성을 인정받으려고 했어요. 그러고 나선 퉁퉁 부운 눈을 하고, 아무것도 달라지지 않은 그 관계 속으로 터덜터덜 돌아갔죠.
<무엇이 여자를 분노하게 만드는가>(해리엇 러너·부키)는 이런 습관으로는 아무것도 바꿀 수 없다고 말하는 책이에요. 저명한 심리학자이자 페미니스트인 저자는 말해요. 분노로 바꿀 수 있고, 바꿔야 하는 건 오직 '나 자신'뿐이라고. 내가 변해야 나를 분노하게 만든 상대방과 관계도 도미노처럼 변한다고. 타인을 비난하는데 분노 에너지를 '낭비'하지 말고, 자신의 입장을 또렷이 하는데 분노 에너지를 '활용'하라고.
이를테면 이런 거예요. 내 조상도 아닌데 명절에 시댁 가서 전을 부쳐야 하는 상황에 분노한다면, 그 분노를 자신의 입장(여성에게만 주어지는 명절 노동에 동의할 수 없는 이유)을 세밀하게 가다듬고, 그에 걸맞은 행동 원칙을 세우며, 상대방이 어떻게 저항해도 자신의 입장을 유지할 수 있게끔 심지를 굳히는 데 쓰라는 거죠. 보통은 남편과 대판 싸우고, 명절이 끝나고 친구들과 모여 한바탕 성토대회를 벌인 뒤 다음 명절에 다시 그 불합리 속으로 들어가는 패턴을 반복하잖아요. 저자는 말해요. 싸워봤자 소용없다고 체념한 여자, 싸우다가 울어버리는 여자는 모두 '분리'에 대한 공포 때문에 입으로는 '변화'를 말하면서도 무의식적으로 그 반대 방향으로 행동할 가능성이 크다고.
파탄과 분리에 대한 무의식적 두려움이, 자신의 분명함을 유지하고 또 분노를 자신을 위한 새로운 입장이나 행동을 취할 도전 기회로 사용하는 것을 가로막는다. p. 142
반대로 분노로 무언가를 바꿔 본 사람들은 늘 자신이 먼저 변했다는 공통점이 있어요. <며느리 사표> 작가 영주님은 시부모님께 사표를 내밀며 먼저 자신의 변화를 공표했고, <1밀리미터의 희망이라도> 작가 박선영 님은 '어머님 그동안 너무 고생하셨다, 이제 전은 저희가 알아서 하겠다'며 시어머니가 평생 들었던 뒤집개를 남편에게 건넸다고 해요. 이 책의 추천사를 쓴 여성학자 정희진은 말해요.
인간은 요구나 투쟁이 아니라 상대방이 기존과는 다른 반작용(re/action)을 행사할 때 변화한다.
더 이상 저는 택시 속 말없는 고슴도치가 되지 않아요. 대신 타자마자 이렇게 말해요. "기사님, 어젯밤 꿈이 너무 안 좋아서요. 천천히 가주세요." 괜히 분노를 억누르다가 악의 없는 기사님을 당황시켰던 전례를 반복하지 않기 위해 저는 '제 때'에 '제대로' 말하는 법을 하나씩 배워가는 중이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