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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마루 끝 햇살 Nov 12. 2020

검둥개 까미

내 고향 충청도 대전에 오빠가 소나무를 키우는 농장이 있다. 직장에 다니던 30대 때부터 퇴근하고 집에 오면 '토끼 키우기', '소나무 키우기' 책을 그리 읽더니 결국 은퇴하고 소나무를 심었다. 그곳 소나무 농장에 네눈박이 검둥 진돗개가 산다. 털이 까매서 이름을 까미라고 지었다는데 덩치 크고 무뚝뚝한 이 아이에게 까미라는 이름은 어째 좀 낯간지럽다. 원래는 두 마리를 키웠으나 흰 개는 울타리 넘어 가출하고, 이 검둥이도 가출을 했다가 한 달만인가 두 달만에 다리를 절뚝이며 돌아왔다고 한다. 얼마나 굶었는지 삐쩍 마른 데다 차에 치였는지 뒷다리가 골절되어 질질 끌고 온 것을 보고 오빠가 끌어안고 엉엉 울었다고 한다.


난 오빠의 울음소리를 안다. 소리 내서 울 땐 좀 고음이 나는 독특한 소리다. 그 소리를 아버지 장례식에서 들었다. 연세도 많으셨고 오시는 조문객들마다 '호상, 호상' 하는 데다 오빠가 모시고 사는 동안 자식 효도 다 받고 돌아가셨기 때문에 장례식 내내 크게 울 일은 없었다. 발인을 마치고 버스가 대전시내 어느 모퉁이를 돌아설 때 오빠가 울기 시작했다. 불효를 한 적도, 나처럼 아버지 말씀을 어긴 적도, 아버지를 서운하게 한 적도 없는 오빠의 우는 소리가 버스에 퍼질 때 우리 모두 숙연해졌다. 부자의 정이란 게 이런 거구나. 오빠 우는 소리에 내 마음이 따뜻해졌다.


가출했다가 다리를 절며 돌아온 까미를 안고 병원에 가서 깁스를 하고 돌아온 뒤, 오빠는 며칠 동안 집에도 못 가고 개를 돌봐주었다. 지금은 농막이지만 당시에는 비닐하우스 창고라서 변변치 않았는데 밤이면 바닥 보일러를 틀어놓고 실내에서 환견을 건사했다. 결국 뼈가 붙기는 했지만 약간 비뚤게 붙어서 천천히 걸을 때면 표시가 난다. 오빠는 내가 갈 때마다 그 이야기를 하고 또 하신다. 나도 그 이야기가 왜 그리 듣기 좋은지 열 번도 더 들었지만 또 묻는다.


"얘가 가출했다가 다쳐서 돌아왔다고?"

"돌아온 걸 보고 붙들고 울었다고?"

"그래서 집에도 못 가고 간호해줬다고?"


오빠는 그 레퍼토리를 이야기하고 또 하고, 그러면 나는 또 맘이 따뜻해져 울컥한다. 오빠는 나보다 15살이 많다. 사촌들과는 달리 우리 형제는 떠들썩한 편은 아닌데, 오빠는 우리 형제자매가 모이는 걸 참 좋아한다. 내가 중학생 때던가 오빠가 결혼을 했는데, 선자리에 나온 올케가 가족 중에 누굴 제일 좋아하느냐고 물었더니 "막내가 제일 좋다"라고 했단다. 그 뒤로도 그런 비슷한 말을 전해 들었다. 내 앞에서는 별 말도 안 하는 사람이 꼭 뒤에 가서 그런 말을 한다. 오빠가 아버지 장례식에서 가슴에서 터지는 울음소리를 낸 것과 까미가 절뚝이며 돌아왔을 때 붙들고 꺼이꺼이 운 것과 막내를 좋아한다고 말한 것이 다 똑같은 거라고 나는 생각한다. 그래서 나는 까미에게 정이 들었다.


'네가 우리 오빠가 좋아하는 애구나?'


이번에도 가족모임이 있어서 농막에 갔다. 조카딸이 결혼을 했는데 코로나 때문에 일정을 한차례 미룬다고 미룬 것이 2.5단계에 딱 걸려서 양가 50명 이내로 식을 치르느라 사촌들이 결혼식에 참석하지 못했던 것이다. 고모인 나도 명단에서 제외되었다가 나중에 턱걸이로 명단에 끼었으니 사촌언니 오빠들은 말할 것도 없었다. 모시지 못한 사촌 언니 오빠들을 모시고 인사를 하느라 농장에서 뭉쳤다. 열린 대문으로 사람들이 들락거릴 때 휩쓸려 나갈까 봐 목줄을 했는데 언제나처럼 뒷마당 늘 그 자리에 엎드려 있었다. 그 와중에 남자들만 보면 으르렁 거리고 경계를 해서 좀 조심스러웠다.


세 살짜리부터 다 큰 조카에 이르기까지 검둥이 맘에 들어보려고 옹기종기 모여 있으면 오빠가 다가와 까미를 만지고 쓰다듬는다. 근데 그게 귀를 빨래하듯이 뭉개고 얼굴이 찌그러지도록 주무르는 거라 거기 있던 우리 모두는 갸우뚱한다.


"이거 사랑하는 거 맞아?"
"어째 동물학대 같지?"
"큭큭큭"


까미는 과한 얼굴 마사지를 받고도 여전히 표정 변화 하나 없이 똑같은 모습이다. 그곳 농막은 오빠가 있어서 그리고 검둥개 까미가 있어서 늘 그립고 마음 따뜻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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