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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마루 끝 햇살 Nov 16. 2020

가정환경조사 1

하완 작가가 쓴 책에 가정환경조사에 관한 글이 있었다. 읽으면서 나도 몇 가지 에피소드가 떠올랐다.


왜 그랬는지 모르겠지만 당시 학교에서는 학생들의 가정에 있는 가전제품의 종류와 주거하는 주택이 자가인지 아니면 전월세인지 여부, 그리고 학생들의 형제자매의 수를 매 학년 초에 심혈을 기울여 조사를 했다. 그때마다 형제자매가 많은 나 때문에 담임선생님이 골탕을 먹었다. 


"이제부터 여러분의 형제자매가 몇 명인지 조사를 할 거야. 해당되는 사람은 손을 들어. 자, 외동인 사람?"

"다음은 형제자매가 둘인 사람?"

"다음, 셋인 사람?"


이렇게 형제자매를 조사해 나가다 보면 7명쯤에는 손을 드는 학생이 거의 없다.


"다음 8명? 없구나."

"그래도 혹시 모르니까 9명?" 


혹시 모른다는 말에 아이들은 킥킥대고 웃는다. 선생님은 손을 드는 사람이 없는 걸 확인하고서 지금까지 센 학생 숫자를 계산하기 시작한다. 


"어? 이상하다. 계산이 안 맞네. 잘못 세었나 보다. 다시 한번 해보자."

"외동인 사람?"


이번에도 선생님은 9명까지 숫자를 센 다음 또 계산을 하는데 역시나 총합이 안 맞는다. 

당연한 결과다. 

왜냐고? 

내가 손을 안 들었기 때문이다. 선생님이 9명 다음을 물어보지 않았으므로. 

그렇게 숫자 세기를 서너 번 하고 나서 담임선생님은 지친 얼굴로 묻는다. 


"혹시 너희들 중에 손 안 든 사람 있니?"


 나는 그때 손을 든다.


"네."

"저는 10명이에요."


아이들은 깔깔대고, 선생님은 어이없다는 표정이 된다. 앞 학년에서 같은 반이던 아이들도 잊고 있다가 다시 한번 생각이 난 듯 깔깔대고, 졸지에 나는 반에서 제일 웃기는 애로 등극한다. 공부도 딸리고 지도력도 딸리니 반장 후보에는 못 들고, 무슨 오락부장 같은 후보에 들어간다. 나는 뒷자리에 앉아서 툭툭 시니컬한 표현이나 해댈 줄 알았지 오락으로 반을 들었다 놨다 하는 지도력은 없다. 게다가 그런 건 딴따라들이 하는 거라는 시답잖은 신념이 있었기 때문에 그런 추천이 참 반갑지 않았다(곧 그들이 지배하는 세상이 오는 줄도 모르고.....). 아무튼 내가 학년 초마다 오락부장 후보로 추천되었던 건 순전히 가정환경조사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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