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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마루 끝 햇살 Jul 14. 2020

3-9. 아이의 감정을 바꾸려고 하지 않기


  우리는 자녀의 감정에 대해 이래라저래라 하는 말을 많이 합니다.      


 “그게 삐칠 일이니? 왜 그렇게 잘 삐치니?”

 “울지 마. 뚝 그쳐.”

 “넌 화내는 게 문제야. 화를 내면 사람들이 싫어한단다.”     


 울거나 삐치거나 화내는 일은 아이의 영역에 속한 감정이라 부모가 왈가왈부할 문제가 아니지만 우리는 부모님들이 그랬던 것처럼 자녀가 나타내는 감정을 바꾸려고 애씁니다. 그게 바로 가정교육이라고 생각하는 부모님들도 있습니다.

 

나 자신으로 산다는 것

 육아의 어려움을 겪다가 상담실에 찾아온 어떤 어머니는 어릴 때 엄마한테 혼나고 난 뒤 슬픔을 나타낼 수 없었다고 합니다. 방에 있다가도 얼마 후에 엄마가 부르면 얼굴에 드리운 우울을 싹 걷고 웃는 얼굴로 나가야만 했다고 합니다. 속이 썩어 문드러져도 엄마한테 혼이 나도 방긋 웃는 얼굴로 생활을 해야 했다고 합니다.


 울거나 화내거나 삐치는 걸 참으면 오히려 그게 문제가 됩니다. 울고 싶으면 울고, 화가 나면 화가 난다고 하고, 빈정 상했을 때엔 삐쳤다고 표현을 해야 건강하게 살 수 있습니다. 그래야 감정이 해소되고, 진실 어린 나를 만날 수 있고, 지금 여기에서의 나로 살아갈 수 있으며, 내가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알 수 있고, 타인과 진솔한 소통을 할 수 있습니다. 그럼에도 부모가 아이의 감정상태를 다른 것으로 변화시키고자 애쓴다면 아이는 이도 저도 아닌 사람으로 살아가게 됩니다. 슬퍼하면 안 되는데 자꾸만 슬퍼지는 나 자신과, 슬퍼하면 사랑해주지 않는 부모 사이에서 늘 잘못된 길을 가는 것 같은 어정쩡한 이방인으로 살아갑니다. 그것은 아이의 문제가 아니라 아이의 부정적 감정을 받아내지 못하는 부모에게서 파생된 문제입니다.


 아이가 삐친다면 그럴 만해서 삐친 것입니다. 아이가 울면 그럴 만해서 우는 것입니다. 아이가 화를 내는 일도 마찬가지입니다. 거기에 엄마의 기준으로 삐치거나 울만한 일이 아니라고 말하는 것은 아이에게 현실에서 벌어지는 일을 부정하면서 살라고 가르치는 일입니다. 감정도 부정하고 생각도 부정하고 상황도 부정하면 그게 과연 누구일까요?


흔들리며 피는 꽃

 흔들리지 않고 피는 꽃이 없다는 말처럼 아이는 울고 삐치고 화내면서 자랍니다. 아이뿐이 아닙니다. 어른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런 감정을 제지하려 하지 않고 수용해주는 소중한 타인이 곁에 있을 때 삶이 행복한 것처럼, 자신이 느끼는 감정을 바꾸려거나 제지하려거나 혼내지 않고 삐치거나 울거나 화내는 모습을 그대로 받아주는 부모가 있을 때 아이의 삶은 빛이 납니다. (물론 감정을 받아주라는 의미지 그 감정으로 인한 행동을 모두 받아주라는 뜻은 아닙니다. 감정은 받아주지만 행동에는 경계가 있다는 것을 알려줘야 합니다.)


 부모가 아이의 부정적인 감정을 받아주지 못하는 이유는 부모 스스로가 부정적인 감정을 제지하는 가정에서 자라 그런 감정을 가져서는 안 된다는 무의식이 깔려있기 때문입니다. 부모가 보기에 아이가 부정적인 감정에 사로잡힌 것처럼 보여도, 아이가 타인 앞에서 좀생이처럼 보이고 울보로 보여도 아이가 품는 감정 때문에 아이를 야단쳐서는 안 됩니다. 아이는 어떤 상황에서도 충분히 존중받아야 하고 거기에는 아이가 느끼는 모든 감정이 포함됩니다. 아이의 슬픔, 삐침, 분노는 토론이나 설득 혹은 윽박으로 멈추게 할 수 없습니다. 혹은 다른 빤짝빤짝한 아이템으로 시선을 돌리게 해서도 안 됩니다. 그런 방식으로 감정을 다루면 자신의 감정이나 존재를 감추거나, 부인하거나, 회피하는 어른으로 성장할 가능성이 있습니다.


자녀의 어떠한 감정도 부모에게는 소중한 단서

 부모가 보기에 옳지 않은 감정을 자녀가 느낀다면 그것도 소중한 것입니다. 그 감정에 머물러 보고 이야기하고 생각을 나누어 볼 가치가 있습니다. 아이가 느끼는 감정이 부모를 힘들게 하더라도 그 감정을 없애려는 의도여서는 안됩니다. 아이가 느끼는 감정은 다 수용해주지만, 행동에는 제한이 있다는 것을 알려주고, 감정을 공감하면서 아이가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탐색하고, 해결책이 무엇인지 함께 찾아보며 아이 스스로 해결해나갈 수 있도록 도와줍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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