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회에 '부모가 절대로 하지 말아야 할 말들'이라는 글을 썼다.
자녀와 좋은 사이를 유지하기 위한 방법인데, 직장에서 혹은 친구들 사이에서도 쓸모 있는 팁이다. 이런 말만 안 해도 사람들과의 관계는 좋아진다.
아이가 들을 태세가 안 된 상태에서 하는 부모의 잔소리는 백해무익하다. 부모들은 말한다. 좋은 말, 인생에 도움되는 말을 빼면 무슨 말을 하나요? 할 수 있는 말이 하나도 없는데요?
아이가 하는 말에 대해 부모가 해도 되는 대답은 세 가지다. 나머지는 다 잔소리로 분류될 위험이 있다.
1. 그래?
2. 그랬구나.
3. 왜?
아이가 듣고 싶어 하고 아이에게 교육적으로 필요한 대답은 위의 세 가지뿐이다.
“엄마, 오늘 친구랑 싸웠어요.”
“그래?”
이 한 마디면 충분하다. 아이가 더 이야기하고 싶어 하면 이 말로도 충분히 다음 대화를 이끌어 낼 수 있다.
“엄마, 오늘 선생님한테 야단맞아서 기분이 상했어요.”
“그랬구나.”
이 반응 하나면 아이에게 필요한 모든 말을 다 한 거나 다름없다. ‘그러게 잘하지 그랬냐’, '까불 때 알아봤다', ‘야단맞으니 꼴좋다’ 등등의 말은 할 필요가 없다. 그저 “그랬구나.” 한 마디면 족하다.
여기에 만일 아이가 우물쭈물하고 싶은 말이 더 있는 것 같다면 한 마디 더 붙일 수는 있다.
“왜 그랬니?”
하지만 아이가 그 말에 왜 야단맞았는지 대답하기 싫어라 하면 더 이상 들을 방법은 없다. 다음 기회를 기다려야 한다. 지금 어떻게든 들어야겠다고 작정하고 아이에게 캐묻고 또 묻는 것은 역효과만 드러날 뿐이다. 부모가 묻지 않아도 말하고 싶어 질 때, 아이는 자세하게 말한다. 그때까지는 아이의 말할 자유 혹은 말하고 싶지 않은 자유, 그것을 존중해 주는 수밖에 없다.
나는 부모교육을 할 때 이 세 마디를 연습할 기회를 가진다.
“엄마, 내일 학교에 불을 싸지르고 말 거예요.”
이 말에 대한 대답은 “그래?” 밖에 없다. 하지만 부모님들은 그걸 알면서도 연습 상황에서 “그래?”라는 말하기를 어려워한다. 내가 내는 퀴즈의 답을 뻔히 알면서도 말을 안 하고 그저 웃기만 하시는 부모님도 있다.
“엄마, 학교 당장 때려치울 거예요. 내일부터 학교 안 갈 테니 그렇게 아세요.”
이 퀴즈의 정답도 물론 “그래?”다. 이 퀴즈에 답하기를 가장 어려워하는 그룹이 바로 학교 선생님들이다. 이분들은 내가 낸 퀴즈에 답을 못 하고 고개를 책상에 파묻고 웃기만 한다.
아이와 깊은 대화를 하고 싶다면 다른 말은 모두 줄이고 위 세 가지 말만 하면 된다.
그래?
그렇구나.
왜?
이 세 마디야 말로 아이와 소통하는 출발점이자 아이가 마음을 여는 시작이고 아이의 마음을 이해하는 열쇠다.
학부모와 만나는 자리에서 아이들이 하는 말에 “그래?”라고 답을 해야 한다고 하면 대부분의 어머니들이 이렇게 말한다.
“물론 그렇게 합니다. 일단 첫마디는 그래?라고 시작하지요. 그 뒤에 속사포처럼 자동적으로 나가는 말들이 있어요. ‘뭐가 되려고 그러니? 이놈아’ ‘네가 제정신이니?’부터 시작해서 자동적으로 나가는 말들이요.”
나도 참으려고 참는 게 아니라 잔소리를 안 하는 것이 가장 경제적이라서 말을 멈추는 것이다. 하고 싶은 말도 많고 입으로 뛰쳐나오려는 말을 참기가 힘들 때도 많다. 하지만 그런 말은 안 하는 게 백번 낫고, 했다 하면 그 후유증 해결하는 데에 그 말을 참느라고 들이는 노력의 몇십 배 더 들어가기 때문에 말을 멈추는 것이다. 배탈이 날 줄 뻔히 알면서 쉰밥을 먹을 필요가 뭐가 있겠는가? 참아보면 안다. 말을 못 했을 때의 후회보다 말을 하고 나서 하는 후회가 더 뼈아프다는 것을.
물론 그렇다고 해서 다 자란 청소년들이 학교에서 있었던 일을 미주알고주알 다 말하는 것이 바람직한 것은 아니다. 청소년은 부모를 떠나 독립할 준비를 해야 하고 그래서 정상적으로 자란 아이도 자신의 신상에 관한 이야기를 다 하지 않는다. 하지만 부모에게 하고 싶은 이야기가 있다. 학교를 안 간다거나, 학교가 정말 싫다거나, 친구랑 심각하게 싸웠다거나 하는 이야기들이다. 그런 혼란스러운 마음을 부모와 공유하고 싶어 한다. 그럼에도 말하지 않는 건 부모와 신뢰관계가 형성되지 않았다는 뜻이다. 말하게 하는 것보다 신뢰회복이 먼저다. 신뢰회복은 아이가 ‘부모님이 나를 존중하는구나!’라는 판단이 들 때 생기기 시작한다.
아이가 입을 벌리기 시작하는 시점은 일장연설도 아니고, 말을 하라고 지청구를 하는 때도 아니다. 그저 “그랬니?” “그랬구나!”라는 말로 아이를 받아들일 준비가 되었을 때 아이의 입은 터지기 시작한다.